매주 화요일 밤 9시, 우리는인기척도 들리지 않는 어둠 속을 뚫고 학교를 빠져나오곤 했다. 강의가 9시에 끝난 것이다.
야간 수업이냐고?
시간표대로라면 오후 4시 30분에 시작한 강의는 6시에 끝나야 했다. 하지만 6시에 끝난 적이 없고, 늘 밤 9시 가까이 되어야 마무리되곤 했다.
일본의 강의 특징을 살짝 소개하면 이렇다.
일본 대학은 3학년이 되면 진로를 결정하고, 한 교수님의 제미(ゼミ)를 선택해 수강하며 4학년에 졸업 논문을 집필하게 되어 있다. 제미는 우리나라의 세미나와 비슷한 형태로, 3학년부터 2년 동안 교수님과 함께 관심 분야를 동료 학생들과 탐구하는 '학습 서클' 같은 강의 방식이다.
우리 지도교수님의 경우는 석사 과정과 박사 과정의 통합 제미를 하고 있어서 선배들의 연구도 들을 수 있었고, 선후배 간의 교류가 자연스레 이루어져, 연구가 어떤 것인지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도 적지 않았다.
제미는 각자 연구 내용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한 주에 2명씩 발표했다. 발표 자료는 사전에 메일로 모두에게 보내지고, 강의 전에 읽고 들어간다. 교수님은 예외가 없었다. 언제나 그 누구보다도 꼼꼼히 읽으셨다.
4:30에 시작한 제미가 7시를 넘어서면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집중력을 잃고 자꾸 시계를 들여다본다. 7시 후연구 삼매인 건지도 교수님이시다.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는 박사 과정의 선배, 동료, 후배,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 교수님은 줄곧 이 제미가 일주일 강의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라 하셨다.
교수님은 배고플 것을 염려해 강의에 들어오실 때 아예 간식을 준비해 들어오셨다. 간식으로 준비해 오시는 건 수제 과자나 빵이었다. 허기를 못 버티는학생들도 먹을 걸 챙겨 오곤 했다. 4시 반부터 9시까지의 제미는 중간에 딱히 휴식 시간도 두지 않고 간식을 나눠 먹는 시간을 이용해 화장실에 갔다 올 정도였다.
9시. 우리는허기와 피로로뒤범벅이 되어 있고, 뇌는 거의 기능 상실된 상태이다.
뚜벅뚜벅걸어가다학교 앞 즐비서 있는 주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곤 했다.
"오늘은 딱 한잔만 해요" 교수님의 한 마디.
"네, 교수님!"
넘칠락 말락 하는한 잔의 생맥주를 들고,'건배!'
8명쯤의 학생들이 일제히 부재중이었던 영혼을 되찾아오는 순간이었다.
그 한 잔의 생맥주에는 허기와 피로를 단숨에 녹여 버리는 마법이 들어 있었다.
주점 입구에서"딱 한잔만"이라고 말씀하신 교수님도, "네"하고 대답한 우리도 까마득히 잊고 이야기의 보따리는 끝없이 펼쳐진다. 연구 이야기, 교수님들 얘기, 일상사, 술안주는 무한하다.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는 이야기를 터치하며 웃음이 끊기질 않는다. 그런 시간 속에서 우리는몸과 마음의피로와 긴장을씻어내고, 다시 1주일을 향해 충전을 하곤 했다.
시계의 바늘이12시를 가리키려 할 즈음, 막차에 놓칠 세라, 정신없이 가방 들고 신발 신고 역을 향해 총총걸음을 했었다.
지도교수님은학문적으로는 엄격하신 반면 인간미가 넘쳐흐르셨다.
언젠가후배로부터 들은 교수님의 일화이다. 한 학부생 자취방에 화재가 발생해 생활필수품이 불에 타버린 사실을 안 교수님은 그 학생을 위해 생활용품을 일일이손수 사서 보내주셨다고 한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밑에서 8년을 지낸 나로선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학부 3학년 때부터 박사 과정 총 8년간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보면서 남을 배려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하곤 했다. 학생들을 아끼며 보살펴 주셨지만,학생들이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몰래, 뒤에서 살짝 손길을 내밀어 주셨다.
주점에서 계산하실 때도 늘 당신이 거의 계산을 하시며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아주 쪼금만 돈을 걷으셨다. 학생들이 부담감을 느끼면 자주 가볍게 그런 즐거운 시간을 갖지 못할 거라 생각하셨으리라.
연구에 필요한 물품을 나눠주실 때에도 일본돈 10원씩 받으셨고, 매주 챙겨 오시는 수제 과자도 누가 준 거라며 우리들에게 나눠주셨다.
석사, 박사생들에게 일을 시킬 때도 공짜로 시키는 법이 없으셨다. 걸린 시간을 학생에게 물어보고 페이를 건네주시곤 하셨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길래 가능한 일이다.
그분은 자신의 연구에 대해서는 늘 겸손하셨다. 학계에서는 교수님의 연구 영역에서 제1인자라고 불리는 데도 말이다. 일본인이니까 그렇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교수님들이 주변에 많았다.
유학생들을 생활면에서 따뜻하게 보살피고 격려해 주시는 반면, 학문적으로 엄격한 그런교수님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했고 따랐다. 그러면서도, 8년간 그분 밑에 계속 있다 보니 익숙해진 면도 적지 않았다.
내가 교수가 되어 보니, 그분의 위대함을 한층 더 느끼게 된다.
교수라서매주 제미를 그렇게 운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에게 그렇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쏟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절감한다.
내가 대학원생이었을 때 그분은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다. 지금 나는 핑계 대며 안락함을 추구하려고 하는데, 똑같은 50대 중반의 그 여교수님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식을 줄 몰랐다.
연구를 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과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없다면 불가능할 일이며, 인품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광경들이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슬하에 자녀는 없으셨지만, 길러낸 제자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전염이 된다고들 한다. 그분의 학문에 대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탐구의 자세는 제자들인 우리들이 보고 어느 정도는 배웠겠지만, 그분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는 발꿈치도 못 따라간다.
대학 강단에 서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학생 지도 등의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라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까 하고 생각에 잠기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