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래여 Jan 03. 2025

카지노 게임 사이트 길

<단편소설. 1

카지노 게임 사이트 길


1.

“엄마는 특별한 줄 알지만 지극히 카지노 게임 사이트해”

딸이 팽 토라져 한마디 던진다. 순간, 행자는 뒤통수를 몽둥이로 탁 맞은 느낌이다. ‘그래, 평범하지. 지금은 평범한데 말이야. 예전에는 제법 끼 있다는 말도 들었단다. 남의 말에 우쭐하기도 하고 교만과 아집으로 똘똘 뭉쳤다는 말도 들었지, 욕망이란 전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이 엄마에게도 분명 있었단다. 너만 할 때는 참 당돌한 아가씨란 말도 들었고, 차갑고 이지적이란 말도 들었었지. 카리스마 넘친다는 말도 들었단다. 그 애들을 가슴에 묻고 지극히 평범한 어미로 살아온 지금 내 심장 소리를 네가 어찌 듣겠니.’ 순식간에 머릿속을 헤집고 가는 바람 한 줄기 서늘하다.

“평범하니까 너의 엄마겠지. 특별했어봐 너 같은 딸 뒀겠니.”

세상엔 카지노 게임 사이트하지 않은 것이 너무 많다. 불평등한 것이 정상인 세상을 사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안 그런 척 하지만 남의 이목에 좌지우지되면서 산다. 남의 말에 진짜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남의 말에 관심 없는 척하면서 남의 말이라면 귀를 곤두세우는 사람이 보통사람 아닐까. ‘저 사람 참 괜찮은 사람 같아.’ 자신을 평가하는 잣대가 그럴싸하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저 사람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자신을 평가하는 잣대가 부정적이면 속으로 상대방에 대한 미움이 생긴다. ‘치, 저는 얼마나 잘나서.’ 이렇게 모난 것이 사람이다.

“너의 엄마는 특별한 사람이야.”

엄마와 딸의 대화가 날카로워지자 운전대를 잡은 진성이 끼어든다.

“치, 아빠 눈에 낀 콩깍지는 언제 벗겨질까?”

카지노 게임 사이트 진성을 슬쩍 곁눈질해 본다. 유들유들한 얼굴이다. 여드름자국, 살짝 얽은 곰보자국에 개기름이 자르르 흐른다. 어쩜 저리 천연덕스러울까. 카지노 게임 사이트 역겹다. 겉과 속이 다른 진성의 두 얼굴에 황토라도 발라주고 싶다. 황토를 물에 개어 두껍게 발라놨다가 바짝 마른 후 떼어내면 본 얼굴이 나올까. 인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남의 본 얼굴을 알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내면의 숲에 무엇이 있는지 당사자도 모르는 것 같다.

“엄마는 좋겠수. 아빠가 특별하게 봐 주니.”

딸이 장난스럽게 쳐다봤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딸을 가만히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우리 딸, 지킬과 하이드를 다시 읽어야겠구나.”

“지킬과 하이드라니?”

딸은 생뚱맞다는 듯이 물었다.

“그냥. 인간은 누구나 이중성을 가졌다고 봐. 선과 악이 한 몸에 공존하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말에 진성이 끼어든다.

“엄마가 갑자기 심각해진 것 같다. 저기 휴게소에 들렀다 갈까?”

진성은 말보다 먼저 승용차를 나들목 휴게소로 진입시킨다. 남편은 늘 그랬다. 말보다 행동이 앞선다.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배려란 말을 생각한다.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생각을 우선 한다는 거다. 묻고 답하고 절충안을 찾는 것이 대화의 기본 아닌가. 상대방에게 ‘이렇게 한다. 저렇게 한다.’ 말하는 것은 이미 결정부터 해놓고 통보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안 돼’라고 말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대화법이다.

나들목 휴게소는 각종 차량과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지난 3년간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하면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했던 일상이 흔들렸다. 2020년 3월 세계 보건기구는 마침내 코로나 팬데믹을 선언했다. 사망자 수가 급증하고, 시신조차 거둘 자리가 없어지면서 세계는 바짝 긴장했고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안전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썼다. 그 흔했던 모임도 해체되었다. 특히 노년층은 더 심했다.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하고 집에 칩거하다시피 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너나없이 전염병에 걸려 죽기는 싫은 것이다. 자영업자, 소상공인과 하루벌이 저소득층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정부를 향해 ‘가난한 우리는 굶어 죽으란 말이냐. 살길을 열어 달라.’ 아우성을 쳤다.

사람은 살기 위해 먹는 거다. 단순한 생존본능이 가장 최우선 아닐까.

카지노 게임 사이트 한 달 전까지 요양보호사로 간병 일을 했었다. 하루에 세 집을 돌았다. 요양보호사란 혼자 사는 노인들의 말벗이 되어주고 병원에 모시고 다니고 반찬과 한 끼 식사를 챙겨주고 빨래와 청소를 해 준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 일을 십여 년 했다. 매달 받는 봉급으로 생활했다.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은 적이 없다. 목돈이 모일 새도 없었다. 딸의 학비와 생활비 조달만으로도 벅찼다. 진성은 행자가 밥벌이를 하러 나가면서 집안 살림에도 관심을 끊었다. 자기가 번 돈은 자기가 썼다. 딸의 생활비는 모르쇠 하면서 대학 등록금은 대줬다. 아비 노릇은 한다는 뜻이다.

그 딸이 올해 대학을 졸업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 같았다. 또한 걸리면 죽는다던 코로나에서 살아났다. 코로나 백신 접종도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사망자 수도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사람들 사이는 안정을 찾았다. 정부는 자국민을 꽉 조였던 끈을 조금씩 풀었다. 틈새에 대통령 선거전이 치열하게 치러졌다. 야당의 대통령 후보자는 현 대통령의 무능을 탓했다. 국민도 그랬다. 옳고 그름의 기준도 없다. 무조건 너는 좋고 너는 싫다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며 상대방 후보를 질타했다. 가족 간의 문제를 들먹였고, 서로를 이간질시키려고 혈안이 되었다.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식이다. 대통령 후보의 능력이나 인간성은 진작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린 민심이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진성이 선거운동 한다고 뛰어다니는 것을 바라보며 냉소를 머금었다. 된 사람을 밀어야지. 저 얼뜨기를 밀다니. 어리석은 사람 눈에는 어리석은 사람만 보이는 것 같네. 된 사람이 있기나 하나. 행자의 눈에는 대통령 출마자도, 도의원, 군 의원 출마자도 된 사람이 없었다. 그중에 괜찮아 보이는 후보자가 있긴 하지만 뒷배가 너무 빈약했다. 선거전은 돈 있고 뒷배가 든든한 사람이 유익하다. 아무리 선거법에 걸린다지만 음지에서 풀릴 건 다 풀린다. 깨끗한 척, 잘난 척해 봤자 본인만 손해 보는 것이 선거전이 아니던가.

“당신도 선거운동 좀 해라. 00 후보자 찍어달라고 해. 그 친구 괜찮은 친구야.”

“그 친구는 안 돼. 권력에 맛 들여서 꽝이야. 당신, 선거자금 얼마 줬어?”

진성은 입을 다문다. 선거자금 명목으로 돈줄을 댄 것은 차후에 당선되면 부탁 건이 있기 마련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오죽하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이나 소금 먹은 사람이 물켠다고 했겠나. 만원 한 장이라도 아껴 딸 뒷바라지 하고 싶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마음을 몰라주는 남자다. 결혼 몇 주년의 이벤트가 무슨 소용인가. 하루라도 마음 편하게 살면 그곳이 천국인 걸. 진성은 빈 수레다. 국가에서 주는 정책 자금을 받아 축산도 하고, 비닐하우스 특수 재배도 했지만 원금은 말아먹고 갚아야 할 대출금만 목구멍까지 찼다.

십 년 전, 카지노 게임 사이트 시름시름 앓았다. 이러다간 죽겠구나. 먹고살 길을 찾아야 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진성에게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이러다간 딸자식 하나 있는 것 공부도 못 시키겠다. 농사는 당신 혼자 지어. 나는 밥벌이 나갈 거야. 대출금 원금과 이자는 당신이 갚아내. 대신 생활에 필요한 것은 내가 해결해. 내가 번 돈은 당신에게 한 푼도 못 줘. 내 말대로 안 하겠다면 이혼장에 도장 찍어.”

“당신이 그 몸으로 돈벌이 간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이혼할래? 같이 살래? 대신 당신이 콩으로 죽을 쑤든 말든 상관 않겠어.”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혼 서류를 작성해서 진성 앞에 놓고 야멸치게 말했다.

“독한 여자, 당신 독한 거야 내가 잘 알지.”

그렇게 한 지붕 밑에서 각자도생을 했다.

2022년 새해가 됐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감기처럼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대통령 선거도 했다. 새로운 대통령이 뽑혔고 새 시대가 열렸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개표를 지켜보며 암담했다. 대통령 자질이 충분한 후보가 낙선되었다. 앞으로 5년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카지노 게임 사이트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빤히 보이는 인품인데도 사람들은 ‘바꾸자’에 열광했다. 대통령은 하늘이 낸다는 말을 믿어야 할까. 민심이 돌아섰다는 것을 믿어야 할까. ‘강 건너 불구경이나 하지 뭐. 풀뿌리 인생이 열내봤자 소용이 없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뉴스 보는 것을 접었다. 당연히 남편 진성이 밀었던 도의원도 탈락했다. 깨소금 맛이지만 보태준 선거자금이 아깝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사람들 마음을 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된다. 모두 제 앞가림에 급급한 인생이라 해도 그렇다. 옳고 그름의 잣대도 개인적이다. 각자도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인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은 진실인데도 공짜에 현혹되는 무리가 많다. 사기와 범죄가 판치는 세상이다. 믿음이 상실된 21세기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풀뿌리 근성이 이 사회를 지탱한다는 사실만 더 강하게 인식한다. 자의든 타의든 어떤 자리에 앉으면 열악한 노동력에 휘둘리면서도 먹고사는 일에 매진하고 가족 건사하다 종 치는 보통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이 사회를 지탱하는 실한 말뚝은 상위 1%의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3D업종 종사자다. 농민과 노동자가 없으면 나라가 존재할 수 없다. 탐욕은 탐욕을 부른다.

진성은 나들목 휴게소의 긴 의자가 놓인 공원 앞에 승용차를 주차시켰다. 행자는 딸의 손을 잡고 천천히 승용차에서 내렸다. ‘화장실’ 행자가 말하자 딸은 행자의 손을 잡고 걷는다. 딸의 손에 이끌려 휴게실 안으로 들어갔다. 지나치는 사람들은 거리 두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사람도 보였지만 대부분 마스크를 썼다. 3년 사이 마스크 쓰는 습관은 몸에 붙은 것 같다. 아이도 어른도 마스크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엄마, 마스크’ 딸은 화장실 문 앞에서 행자를 붙잡았다. 행자는 호주머니에서 마스크를 찾아 대충 썼다. 화장실은 젊은이들로 붐볐다. 코로나19가 전염병이 아니라 감기처럼 가볍게 앓고 나면 괜찮다는 말이 돌면서 젊은이들이 기지개를 켰다. 마음 놓고 여행에 나선 모습이다. 활기찬 젊은이들을 보니 눅눅했던 기분도 풀어진다. 행자도 그 대열에 끼었다는 것이 희열로 다가온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화장실을 나왔다.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리던 딸이 손을 잡았다.

“얘가 완전히 나를 환자 취급하네. 나 아직 안 죽었어.”

“엄마가 어리바리하니까 아빠가 마음을 못 놓잖아.”

“나 저거 사 먹어야 돼. 휴게소 들리면 꼭 먹고 가야 해.”

카지노 게임 사이트 딸의 손을 뿌리치고 즐비하게 늘어선 음식코너로 간다. 딸은 한숨을 쉬며 행자를 부축한다. 핫도그, 가래떡과 소시지 꽂이, 기름에 튀긴 감자, 어묵, 호떡 등등, 먹음직스러운 길거리 음식에 혹한다. 무엇을 먹어볼까. 입맛부터 다신다. 가래떡과 소시지 꽂이, 핫도그와 감자튀김을 주문한다.

“엄마는 몸에 안 좋은 것만 좋아해. 이런 거 먹으니 아픈 거야.”

딸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너, 이럴 때 완전 아빠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어리바리한 나를 안 닮고 똑똑한 아빠 닮아 좋겠다. 근데요. 따님, 선생 둘을 모시자니 저 혼자 힘드네요. 적당히 합시다. 따님!”

카지노 게임 사이트 사사건건 보호자를 자청하는 딸에게 살짝 눈을 흘기며 정말 내가 그렇게 어리 보긴가. 자문한다. 어리 바리에 대한 어원을 생각한다. 어리바리나 어리보기나 같은 말이다. 어리보기, 얼뜨기, 꺼벙이, 삐리하다. 이런 낱말과 상통한다. 어리바리란 성격이 야무지지 못하고 조금 모자라는 것을 뜻한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는 뜻으로도 쓴다. ‘내가 모자란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히 바보다. 행동이 굼뜨고, 대화 중에 엉뚱한 생각에 잠겼다가 덤 쥐어박는 소리도 잘한다. 항상 한 박자 늦다.

“아빠가 기다려. 빨리 가자.”

“따님, 아빠는 나를 독하다고 하잖아. 바늘로 찔러도 피도 안 나올 여자라데.”

“그런 점도 있지.”

딸은 행자의 팔을 잡아당겼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노란 소스를 묻힌 가래떡 하나를 뽑아 맛있게 먹는다. 딸의 손에 끌려가면서 머릿속으로 북채를 잡았다. 커다란 북을 앞섶에 달고 둥둥 두드렸다. 늘 한 박자 늦었다. 행자의 엇박자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은 사물놀이 강사뿐만 아니라 회원들 모두였다. 한때 가족 사물놀이를 배우러 다녔다. 동네별 사물놀이 경연대회가 있었다. 행자도 진성과 초등학생인 딸과 함께 참석했다. 장구를 멘 딸은 귀염을 독차지했다. 기량도 뛰어나서 주변사람들이 춤꾼으로 키우라는 조언을 했었다. 꽹과리를 잡은 진성도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문제는 행자였다. 늘 엇박자를 내는 바람에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결국 카지노 게임 사이트 중도 포기했다. 대의를 위해서.

대의를 위해서라니. 소가 하품할 일이다. 소의는 없는가. 생각해 보라. 작은 뜻이 모여 큰 뜻이 된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큰 것이 아니다. 첫출발은 언제나 미진하다. 첫출발이 거창하면 끝은 흐지부지 된다. 관공서에서 하는 일들이 그렇다. 거창한 문구, 거창한 광고를 플래카드에 걸고 행하는 행사 중 마무리가 잘 된 행사가 있던가. 생색내기 쇼를 관람하는 것도 재미라면 할 말 없지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 소시지 하나를 더 뽑아 먹으며 ‘살맛 나네. 맛있어.’ 가래떡과 소시지 꽂이를 치켜들자 난색을 표하는 딸의 표정이 더 재밌다.

“왜 혼자 실실 웃어? 울 엄마 진짜 어리바리야.”

“얘, 이래 봬도 엄마는 어려서 영재소리 들었다. 내가 엄청 똑똑한 줄 알았지.”

“아하! 엄마 같은 사람을 영재라고 하는구나. 처음 알았네.”

놀리는 딸의 표정이 귀여워서 또 웃는다.

마침 진성이 시동을 걸고 앉아있는 승용차 앞이다. 딸은 뛰어가 앞문을 연다. 행자는 조심스럽게 남편 옆에 앉아 손에 든 가래떡 꽂이를 내민다. 남편은 가래떡 하나를 뽑아 먹으며 ‘내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다. 뒷좌석에 앉은 딸은 ‘못 말리는 울 엄마’라며 팽 토라진 척한다. ‘창피해’라고 하지 않아 다행이다. ‘부뚜막에 올라앉은 고양이 같은 우리 엄마,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요.’ 철부지 어린애 같은 엄마를 둔 딸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용의주도함이 몸에 배었다. 언제부터 딸은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을까. 가슴 밑에 딱딱한 앙금으로 굳어있는 덩어리가 꿈틀 한다. 행자는 꿀꺽 마지막 가래떡을 목에 넘긴다.

“자, 출발한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