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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따사로워서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수수꽃다리의 연한 보랏빛 향기가 살랑 들어와 코끝을 스친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어여쁜 소리가 밖에서 들려오는가 싶더니 “어머, 얘들아, 저기 야옹이다. 야옹아 안녕”하는 소리가 들렸다. 창틀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고양이들을 보고 하는 소리인 것 같아 창가로 갔다.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 선생님과 아이들이 산카지노 쿠폰 나온 모양이었다. 그때 선생님이 “하성이 할머니 아니세요?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였다. 자세히 보니 삼 년 전 손자의 세 살 때 담임이다. 우리는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아이들이 재잘대던 자리는 날갯짓하는 작은 새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랬다. 큰 카지노 쿠폰는 고추바람이 몹시 불던 섣달 그믐날 밤 할미 집으로 보내졌다. 생후 17개월이 되었을 때였다. 동생이 태어나고 석 달 만에 하성이는 엄마 아빠를 떠나 할미 집 살이가 시작되었고 나는 손주 육아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기였을 때부터 할미의 자장가 소리나 어부바에 익숙했던 카지노 쿠폰는 우리 집에 와서도 울지 않고 잘 지냈다. 밤이 되면 엄마를 찾아 울 법도 한데 잘 놀고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선물처럼 나에게 온 카지노 쿠폰는 기쁨과 행복을 주는 존재였다. 솜이불처럼 폭신폭신하고 따뜻한 할미가 되어 주고 싶었다.
손자는 세 살이 되던 봄,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에 입학했다. 하원 하면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했다. 모름지기 몸이 튼튼해야 마음도 튼튼한 법이다. 저녁을 먹고 물놀이 겸 목욕이 끝나면 말하지 않아도 읽고 싶은 카지노 쿠폰 가져와 소파에 앉아 할미를 기다린다. 할미의 생동감 넘치는 책 읽기에 흠뻑 빠진 아이는 새까만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려 가며 집중해서 듣는다. 서너 권은 읽고 나야 성에 찼는지 자석처럼 내 등에 찰싹 달라붙는다. 업어 달라는 것이다.
추운 겨울이든 더운 여름이든 심지어 비가 오는 날에도 어부바를 하고 바깥에 나가야 한다. 산책로를 돌며 동요를 불러주면 스르르 꿈나라로 간다. 그제야 달님도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다.
별빛 반짝이는 밤하늘을 보며 어부바 산책을 할 때 항성과 행성 그리고 위성에 대해서 넌지시 해 주었다. 태양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고 우리에게 빛을 보내주는 항성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별이 여덟 개 있는데 그걸 행성이라고 부른다며 이야기하듯 건넸다. 하성이를 자꾸 따라오는 저 달은 위성이라고도 알려 주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별빛 밤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아주머니가 나를 한 번 쳐다보고 이내 등에 업힌 아이를 보더니 씨익 웃어 보였다. ‘애가 알아듣기는 할까’하는 표정이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할머니, 행성은 수금지화목토천해잖아” 그걸 기억하다니 깜짝 놀랐다. 우주의 신비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 인터넷을 검색하여 ‘나의 첫 번째 행성 이야기’책과 태양계 행성 모형을 사 주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책을 읽어 달라고 하였다. 행성의 영어 이름도 술술 외우고 행성 밖에도 작은 행성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는 그렇게 우주에 빠지게 되었다.
아이 엄마 집에 있는 직업 동화 ‘우주비행사가 될래요’ 책도 읽어주었다. 우주에는 더위나 추위를 조절해주는 공기가 없어 두꺼운 우주복을 입어야 하고 중력이 없어 우주 공간을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책을 읽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긴 닐 암스트롱 이야기를 곁들여 줄 때는 이미 우주를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그 무렵 “할머니, 나는 우주비행사가 될 거야. 달에 발자국도 남기고 화성에도 가 보고 우주도 탐험할 거야” 네 살 아이가 꿈을 이야기하는 걸 듣고 내심 놀라웠다. 할미가 무심코 했던 말에 등에 업힌 손자는 그렇게 큰 꿈을 꾸게 되었나 보다. 네 살 때 가진 꿈이 여섯 살이 된 카지노 쿠폰도 변함없이 똑같다.
주말을 엄마 집에서 보내고 온 손자가 엄마 집 책에는 명왕성도 행성이라고 되어 있는데 왜 그런지 묻는다. “명왕성은 원래 행성으로 분류되어서 처음에는 아홉 개의 행성이었어. 하지만 천문학자들이 명왕성과 크기가 비슷한 에리스, 하우메아, 마케마케를 발견하면서 네 개는 왜행성倭行星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만들어 주었대”라고 설명해주니 그제야 고개를 연신 끄덕끄덕한다.
삼십여 년 전 도립 도서관 주부독서회에 가입하여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금오산 자락이 내려앉은 도서관 한 켠에 주부들이 모여 시를 낭송하고 독서토론회를 펼치는 모임이었다. 아이들의 독서 지도를 하며 매일 동화책만 읽기에는 무료해서 수소문해서 찾아간 곳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집에서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느라 잘 읽을 수가 없던 터였다. 약간의 강제성이 있더라도 성취감을 맛보고 싶었다. 매월 <버지니아 울프, 그리운 사람 <빠빠라기 <오래된 미래 등 선정 도서들을 읽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토론하는 그 시간은 새로운 자유였다.
스무 명 남짓 주부들이 시, 수필, 소설 등 분야별로 창작 활동은 물론 독서 토론을 하기도 하고 강사 초청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회원 중에는 매일 여성 한글 백일장에 나가 입상하기도 했고 독후감 대회에서는 단체상과 개인상을 받기도 했다. 어떤 이는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단편소설로 근로문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매년 회원들의 작품을 담은 문집도 펴낼 만큼 열정이 뜨거웠던 독서모임이었다.
몇 년을 몸담으며 책도 읽고 글도 쓰던 무렵, 사업장이 확장 이전되면서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독서회와는 아쉬운 이별을 하게 되고 사업에 신경 쓸 일이 많아지면서 책과도 자연스레 거리 두기를 하게 되었다.
사업장을 정리하고 오롯이 주부로만 삼 년을 살아오다가 여섯 달 전부터 글쓰기 교실에 나가게 되었다. 친구의 그림 전시회에 다녀온 뒤부터 마음속에 뜨거운 뭔가가 꿈틀거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찬찬히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바로 글쓰기였다.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다양하게 읽어야 했다. 운 좋게도 아파트 단지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일주일에 두 권씩 좋아하는 책을 빌려 읽는다. 글쓰기 선생님이 추천한 책은 꼭 사서 읽어 보려고 노력한다. 책을 읽으면 잡념은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조금씩 움트는 싹처럼 마음이 기지개를 켠다. 끄적이기 좋아하는 나는 글감도 생각나면 구애받지 않고 쓰게 되었다. 누가 봐 주지 않더라도 내가 나에게 주는 만족감이다. 매일 읽고 쓰기를 반복한다. 식탁 위에도, 탁자 위에도, 가방 속에도 책들은 나와 눈 맞춤을 기대하고 있다.
녀석은 카지노 쿠폰 정말 좋아한다. 공룡, 바다생물, 곤충, 명작동화, 전래동화, 위인전 등 가리는 것 없이 골고루 카지노 쿠폰 읽는다. 어떤 날은 나를 아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카지노 쿠폰 읽어 달라며 꺼내 오는데 한두 권이 아니다. 그 날은 명작 그림 동화를 읽고 싶었는지 스무 권 전집을 통째로 가져와서는 다 읽어 달란다. 읽다가 보면 중간에서 멈추려니 하는 생각으로 읽어주기 시작했다. 다섯 권을 읽고 나서 그만 읽자고 어르고 달래 봤지만 계속, 더 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두 눈은 책에 머물러 있었다. 두 시간여에 걸쳐 이솝 이야기부터 알라딘과 요술 램프까지 전집을 다 읽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 만큼 손자는 책벌레다. 아마 그 날 밤 꿈에서는 어린 왕자도 만나고 네로와 파트라슈도 만나지 않았을까?
네 살까지 할미 집에서 살다가 다섯 살이 되는 해에 엄마 품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아들 집으로 출퇴근하며 손자들을 돌보아주고 있다. 연년생 손자들은 서로 할미에게 책을 읽어달라며 채근을 한다. 잠자기 전 삼십 분은 책 읽는 시간이다. 딱히 정해 놓은 건 아니지만 큰 손자가 나랑 있으면서 몸에 밴 아주 좋은 습관이다. 할미랑 정이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지 당최 떨어지지를 않으려는 바람에 재워 놓고 나서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자라는 사이 내 마음의 키도 한 뼘 자랐다. 카지노 쿠폰도 여전히 자라고 있다.
나는 손자들이 밝고 올바르게 자라길 바란다. 카지노 쿠폰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서 책 속에서 꿈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책 속에 길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