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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자의 서랍 Apr 14. 2025

벚꽃 핀 온라인 카지노 게임천에서..

오랜만에 제 자리로.



한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


이곳에 글을 안 쓴 지도 2년 여가 되는 듯싶다. 워낙 게으른 데다 꼭 해야 할 일이 딱히 없으니 움직임이 더 없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아무 가치도 없는 나무토막이나 그냥 고장 나 쓸모 없어진 장난감처럼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건너다보니 절터더라'라는 식의 짐작이 뻔한 하루하루를 지루하게 살아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나를 힘들게 했다.


가슴속에 은밀하고 작은'비상구'를 품고 여차하면 그곳으로 도망치는 상상을 잠들기 전까지 했다. 언제라도 갈 곳이 있다는 그것이 동안그렇게 위안이 될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이었다.


암에 걸린 젊은 엄마가 어린 쌍둥이 딸들이 커서 엄마를 기억할 수 있도록 '병상 브이로그'를 찍고 있었다. 더도 말고 아이들이 자라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보는 것이 지금 자신의 유일한 소원이라는 말도 했다.


늙고 아파 '요양원'에 있는 어떤 할머니가 인터뷰에서 '이렇게라도 오래 살아서 자식들에게 버팀목이 되어 줘야 할 텐데..'라고 자신이 하루하루 좋아지는 것을 한탄해 눈물 흘리며 말하는 것을 보았다.


고도 비만인 데다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은 남자가 이렇게라도 안 하면 살 수 없다면서 손바닥에 한 움큼 약을 꺼내 삼키는 것도 보았다.


공자는 나이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하여 세상일에 현혹되어 갈팡질팡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여 자신의 길을 가는 나이라 말했다. 내 나이 이미 예순을 훨씬 넘으니 판단이 성숙하고도 남을 때다. 그런데 이렇듯 주변자극들에 자꾸 흔들리는 것은 어떤 까닭일까?






어제 원성동에 갔었다.


나는 행복하지 않던 어린 시절 대부분을 원성동에서 보냈다. 이사를 몇 번 다니기는 했지만 기억 속 원성동은 커다란 개천과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와 큰 마당이라 부르던 공터와 혜란이 이모가 하던'만홧가게'로 남아있다.

동네에는 소와 돼지 내장을 다라이에 이고 다니면서 팔던 아주머니도 살았고, 술을 입에 댔다 하면 며칠이고 밥을 먹지 않았던 술 주정뱅이 기영이 아버지도 있었다. 구석방에 혼자 살면서 항상 자전거 뒤에 작업할 때 쓰는 연장을 묶어 매달고 다니던 막일을 하던 아저씨도 살았다.

날씨가 좋은 가을날이면 개천에는 유량동에서 도토리를 우려내는 진한 갈색 물이 한동안 흘러내렸다. 지나가던 어른들이 한 마디씩 했다.

"벌써 묵 할 때가 되았구먼~"





이제는 천안에서 아름다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볼 수 있는 몇 군데 추천 장소 중에 그곳이 있다. 내 기억 속엔 없지만언제 누가 저렇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심어 놓았을까?


"이모, 사진 이쁘게 찍어 줄 테니까 이걸로 프사(프로필사진)해놔!"


내 불행한 원성동 시절을 알지 못하는, 딸처럼 이쁘고 살가운 조카가 그날 찍어준 사진이다. 나이 먹은 지금도 여전히 멀대같이 키만 크고 마르고 못생겼다. 찍히는 게 어색해서 차렷하고 있었지만 지금 내 카카오톡 프사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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