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 -- 일을 해 주기로 하고 미리 받아 쓰는 빚
고지(명사).... 논 한 마지기에 값을 정하여 모내기부터 마지막 김매기까지의 일을 해 주기로 하고 미리 받아 쓰는 삯. 또는 그 일
"나는 뭐 '고지'라도 쓴 줄 안다니?"
어렸을 적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자주 듣던 말이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자기 멋대로였다. 그렇게 안 될 때는 짜증을 냈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겨울이면 어둠이 채 걷히지 않아 대문을 열고 나가는 아버지 뒷모습은 자전거와 함께 마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듯 보였었다. 엄마는 일찍 출근하는 아버지 밥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다. 아침잠이 많아 일찍 못 일어난다는 것이 이유였다. 겨울이면 유독 그랬다.
아침이면 아버지는 부엌문을 닫고 석유곤로에 불을 켜고 기름때가 켜켜이 앉은 검은색 프라이팬을 꺼내 달걀을 깨고 찬밥을 볶아 부뚜막에 놓고 쪼그려 앉아 먹었다. 엄마는 개의치 않았지만 아버지는 다른 집이 알까 봐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리고 출근하기 전에 아침밥을 하라고 나를 깨우러 왔다. 창호지 한장 바른 문으로 내 방으로 오는 아버지의 기척이 느껴졌다.
"경자야! 일어나라!"
연탄아궁이에서 올라오는 온기에 의지해 이불을 얼굴 끝까지 뒤집어쓰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혹독한 겨울 추위와 그것을 막아내기에 형편없이 엉성한 집이었다. 아버지는 방문을 활짝 열고 내가 덮고 있는 이불을 홀랑 걷어냈다. 겨울바람이 성난 황소처럼 내 온몸으로 달려들었다.
그렇게 깨워진 나는 밥을 했다. 부엌은 한 데나 다름없었다. 마당에 묻은 김치를 꺼내오면서 물 묻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쩍 하고 달라붙는 겨울이었다. 내가 밥을 하지 않으면 오빠와 동생은 밥을 먹고 학교에 가지 못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연탄아궁이 불길로 장판이 까맣게 타버린 안방 아랫목에서 늦게까지 잠을 잤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쌀생산이 부족하자 쌀 소비량을 줄이기 위한 일환으로 '혼분식 장려운동'을 했었다. 학교에 싸가는 도시락에는 30퍼센트 정도 잡곡이 들어가야 했고, 점심시간이면 선생님이나 반장이 검사를 했다. 그렇게 도시락 뚜껑을 열어 잡곡이 섞인 정도를 확인받은 다음 밥을 먹었다. 하얀 쌀밥을 싸간 사람은 손바닥까지 맞고 점심도 굶어야 했다. 엄마들은 도시락 위에만 잡곡밥을 살짝 얹어 눈속임을 하기도 했다.
잡곡밥을 싫어하는 엄마는 가난한 살림에도 항상 쌀밥을 했다. 성의 없이 싸주던 도시락 반찬과는 달리 모서리가 희끗희끗하게 벗겨진 낡은 노란색 양은 도시락에는 언제나 하얀 쌀밥이 들어있었다. 오빠와 나는 그 도시락을 가지고 가지 못했다. 어차피 가지고 가도 먹을 수 없었다. 도시락 없이 대문을 나서는 우리 뒤통수에 대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말했다.
"맘대루 해라~ 도시락 안 갖구 가믄 니덜 배고프지 내 배고프다니?"
어느 날부터인가, 옆집 사는 순옥이엄마가 도시락을 싸는 날 아침이면 거뭇하고 푸실한 보리밥을 한 사발 퍼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우리 도시락 뚜껑을 열고 퍼온 보리밥을 위에 올려 주었다. 국민학교 고학년이던 오빠와 나는 순옥이 엄마 덕분에 한참 동안 점심을 굶지 않고 부실한 반찬이지만 학교에서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말했다.
"나는 뭐 남편이나 자식한티 '고지'썼남? 나 싫은 거 억지루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