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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OB Jan 01. 2025


눈이 쏟아진다. 온 세상을 새하얗게 물들이려고 하늘에서 눈이 쏟아진다. 커피에 눈 돌린 그사이 새하얀 눈은 숨이 죽은 잎사귀 위에도, 잿빛 건물 위에도, 길가의 모퉁이에도, 사람들의 머리 위에도 사뿐히 내려앉았다. 새하얗게 덮인 세상을 보니 설렘과 함께 감정이 고양되지 않을 수 없었다. 왜인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왜인지 희망과 용기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왜인지 모든 것이 괜찮을 것만 같은 느낌. 새하얀 눈이 온 세상을 새하얗게 덮었다.


얼마쯤 바라봤을까, 집 안에 있는 것이 아쉬워 부츠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내 새하얗게 덮인 줄로만 알았던 세상을 뚜렷이 마주했다. 새하얀 눈은 세상의 모든 것을 관대히 덮어주는 것 같으면서도 드러내야 할 것을 생생히 드러냈다. 하늘에서 내려왔던 깨끗한 눈과는 달리 땅에서 묻어난 눈은 발을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인간의 추악한 손때와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의 발자국들이 밟고 난 후의 눈을 보자니, 세상을 새하얗게 만들어 줄 것만 같은 깨끗한 눈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얼룩덜룩 인간의 탐욕과 이기, 흉악과 부패만이 묻어난 검고 질척한 눈만이 곳곳에 만연했다. 어디 내 발자취라고 달랐을까. 새하얀 눈 위에 찍힌 내 발자국은 내가 애써 감춰놓았던 속 때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하늘에서 내린 새하얀 눈을 보고 느꼈던 감정의 고양은 내 손과 발에서 묻어 나온 거무튀튀한 눈을 보고는 꼬리를 죽였다.


세차게 내리던 눈이 그치고, 쌓였던 눈이 이곳저곳에 치여 바스러질 때, 나는 미안한 감정을 담아 눈에게 속삭였다. 우리의 추악한 손때, 우리의 검은 발자취, 우리 문명이 만든 거대한 탐욕을 모두 짊어지고 함께 산산이 바스러져 달라고. 모두 짊어지고 함께 장렬히 녹아내려 달라고. 그래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래서 희망과 용기를이야기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래서 모든 것이 괜찮을 거라 말해달라고. 새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었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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