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1파트 연주자: 아, 이러다가 ‘제 떼’를 제 때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요
나 : 그럼 저랑 같이 만나서 연습하실래요?
1파트 연주자 : 그러실래요? 그럼 명절 지내시고 저의 샵으로 오세요.
나 : (핸폰을 꺼내며) 일단 연락처를 교환하시죠!
제 떼란 Je te veux, 프랑스어로 ‘난 너를 원해’라는 뜻의 곡의 앞 두 단어를 우리식으로 발음해서 우리끼리 부르는 말이다. 프랑스 발음을 잘 모르는 카지노 가입 쿠폰 선생님이 ‘제 떼’라고 발음하자 멤버들은 모두 에릭 사티의 ‘쥬뜨 붸’ 라는 곡을 제떼라고 부른다. 이 곡을 며칠 전 카지노 가입 쿠폰 합주 연습 두 번째 날에 연습하면서 카지노 가입 쿠폰 친구를 한 명 사귀었다. 첼루미너스라는 이름의 앙상블의 멤버 중 한 명이다. 그들은 서로 잘 알고 지내는 것으로 보여서 합주 연습하러 간 첫날 나는 좀 뻘쭘했다. 나는 개인 레슨을 받기 때문에 앙상블 멤버를 전혀 모른다. 혹시 내가 제일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있었고,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연습을 하니 그 소리가 너무나 시끄러워서 정신이 없었다. 뇌와 귀와 눈의 대혼란이었다.
Je te veux는 3파트로 구성되어 1파트와 2파트가 서로 멜로디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연주가 된다.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낸 노부부의 두런두런 조용한 대화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운 곡이다. 멜로디 파트는 혼자 연주하다가 흥에 겨워 마구 빨라지면서 감상에 젖어들어 선생님한테 박자 주의 경고를 많이 들었다. 이 곡은 3박자의 왈츠곡인데 첫 박자는 쉬고 두 번째 박자에 들어가는 부분이 많이 있어서 박자를 매우 조심해야 한다. 지뢰밭처럼. 1파트 친구와 2파트를 맡은 나는 서로 박자를 맞추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3파트의 멤버는 매우 무표정하게 연주하고 있었다. 멜로디가 거의 없는 3파트는 좀 지루하긴 하지만, 표정까지 무표정하니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선생님의 박자 맞추라는 소리가 연습실 천정을 찌르고 있었다. 선생님의 하나, 둘, 셋 박자 세는 소리가 저렇게 커도 헤매고 있으니 진땀이 났다. 2달쯤 지나면 연주회인데, 갑자기 청중들의 눈이 떠오르자 오금이 저렸다. 수능 시험장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 오금이 저리던 고3 때와 비슷하다. 평소에 집에서 잘 되던 부분도 버벅거리고 버벅거리는 만큼 손도 떨려왔다. 혼자서도 잘하는 건 소용없고 셋이서 잘해야 한다.
1시간가량의 연습이 끝나고 1파트 친구는 ‘제 때’를 연주일에 맞추어 제 때 잘 할 수 있겠냐면서 농담을 했고 나는 같이 연습하자고 제안했다. 제안하고 보니 설 연휴가 코앞에 닥쳤다. 그녀는 피부 관리샵을 경영하는데 설 명절 지나고 자신의 샵에서 만나자고 했다. 어쩐지! 피부관리샵 사장님이라 저렇게 예쁘구나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같이 연주하려고 1파트와 3파트 연주자 사이에 앉았을 때 단박에 1파트 연주자의 패션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 가죽 롱스커트에 진분홍색 니트가 강렬했고 진분홍 니트 위에는 금색 단추가 반짝였다. 긴머리는 웨이브가 물결치고 화장도 곱게 하고 있었다. 손가락에는 금색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고 아무튼 50대 아름다운 중년의 여성의 모습이었다. 저 반짝이는 금색 옷은 명품 옷일까, 저분의 카지노 가입 쿠폰는 내 것보다 훨씬 비싼 것일까 등등의 생각이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카지노 가입 쿠폰의 색이 은은하고 나의 선생님 카지노 가입 쿠폰와 비슷한 거로 봐서 아주 비싼 걸 것이라는 상상도 하고 앉아 있었다.
이런 쓰잘데없는 상상은 너와 내가 다르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옷, 가방, 자동차 등으로 상대의 재력을 판단하려 드는 내 버릇은 카지노 가입 쿠폰를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게 했다. 몇 등인지, 몇 등급인지, 몇 점인지에 매달려 살아온 과외선생의 습관인지도 모른다. 카지노 가입 쿠폰를 합주하는 자리에서 누구 카지노 가입 쿠폰가, 누구 카지노 가입 쿠폰 케이스가 제일 비싼 건지 비교하는 것은 정말 쓰잘데없는 생각이다. 카지노 가입 쿠폰는 서로 다르지만 우리는 카지노 가입 쿠폰를 연주하는 사람이라는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는 생각이다. 카지노 가입 쿠폰는 달라도 우리는 모두 카지노 가입 쿠폰인.
작년 12월에 과외수업을 마무리하며 나는 진정한 카지노 가입 쿠폰인이 될 준비를 마쳤다. 예산에서 13년 동안 고마운 학생들이 나와 함께 공부했으니, 올해 한 해는 안식년으로 내게 주기로 했다. 말은 안식년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했지만 실제로 은퇴를 하고 싶은 마음이다. 검정고시반 아이들 수업과 캘리그라피 수업처럼 부담이 없는 수업만 남기고 입시 관련 수업은 그만하기로 마음먹었다. 예산을 떠나 아산 주말주택으로 이사를 하는 것을 빌미로 나는 학생들에게 이별을 선언했다. 내 집이 아닌 다른 장소로 바꿔서 수업을 이어 가려고 했지만, 학생들은 도보로 올 수 없는 곳에서 수업을 원하지 않았다. 고2 고3이 되는 학생들에게는 인터넷 강의를 소개해 주고, 기숙학원을 가라고 권하면서 이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학생들은 정리가 되고 2025년 안식년이 시작되었다.
은퇴자로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카지노 가입 쿠폰를 잘 배우고 연주하는 것인데, 카지노 가입 쿠폰 가격의 이질성보다는 카지노 가입 쿠폰인이라는 동질성에 집중할 때 악기 연주의 즐거움이 커질 거라 믿는다. 1파트 친구와 같이 연습하면 그녀의 출중한 외모나 비싸 보이는 카지노 가입 쿠폰에 주눅이 들지 않을 것이고 연습이 더 즐거워질 것이라 기대가 된다. 카지노 가입 쿠폰 선생님께 3파트를 연주해 달라고 한 후 녹음을 해서 3파트를 틀어 놓고 연습할 수 있게 준비하려고 한다. 그녀에게 첼루미너스 앙상블에 관해 물어보고, 나도 가입할 수 있으면 앙상블 멤버가 될 요량이다. 첼루미너스에 있는 분들은 50대 60대 여성이고 수년간 앙상블 활동을 해 온 것을 보면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인 것 같다.
영어로 정체성은 identity. 이 명사의 동사는 ‘동일화하다’라는 의미의 identify이다.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정체성이 생긴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도 한국인과 함께 있을 때 생기듯 카지노 가입 쿠폰인들과 함께 연습하고 연주하면서 카지노 가입 쿠폰인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꾸준한 연습은 은퇴자니까 가능할 것 같다.
요즘은 웰비잉 well being 에서 웰 에이징 well aging, 더 나아가 웰다잉 well dying을 생각하는 시대이다. 건강하게 사는 것만큼이나, 잘 늙어가고 잘 죽는 법을 아는 것이 큰 과업이다. 연명치료라는 의료행위가 웰다잉을 막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웰다잉에 대한 생각으로 헨리 나우웬 신부님의<죽음, 가장 큰 선물이라는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2008년에 산 먼지 가득한 책의 먼지를 털고 다시 읽어보았다. 나우웬 신부님의 친구가 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는데 프랑스 루르드 성지순례를 갔고 신부님은 그 친구가 기적을 경험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픈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만 예외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이 상처받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 그 가운데 속하고 싶은 바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왔어요. 그래서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그 사람들과 일치를 이룸으로써 이 병을 견딜 은총을 간구했어요.”
다른 사람들과 이제는 같아지기를 바라면서 고난을 이길 힘을 간구했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은퇴자로서 나는 다른 사람들을 구별하고 비교하고 판단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많이 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음악은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해 주고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탁월한 연주와 박수갈채가 아니라, 제 때 Je te veux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멜로디의 사랑스러운 대화를 공유하는 친구를 사귈 수 있다면, 나이가 들어 머리가 백발이 되어도 죽음이 가까이 있어도 음악으로 일치를 이루는 친구들이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일치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힘을 기울일 수 있는 은퇴자는 복이 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