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개구멍 카지노 게임
가끔 숙소 사장님과 카지노 게임을 나선다. 가치관과 중요한 게 비슷하고 유머코드가 맞는 데다 하루 한 끼 점심밥을 매일 같이 먹다 보니 친해질 수밖에 없어 어느 틈에 언니 동생 먹어버렸다. 사실은 한 살 차이 밖에 나질 않아 그냥 친구 같다. 두 다리가 튼튼하고 웬만하면 걸어서 지치지 않는다. 어려워도 지지궁상하지 않고 유쾌하고 낙천적이다. 말을 할 때는 재밌고 침묵할 때 불편하지 않다. 걷는 속도가 비슷한 우리는 발맞추기가 딱이다. 뒤 편백과 삼나무 숲을 거닐 땐 느긋한 발걸음으로 숲을 호흡하지만 세 갈래길을 카지노 게임할 때와 긴 길에서우리는 씩씩한 걸음으로 나아간다. 짧은 카지노 게임 긴 카지노 게임은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어제는 '언니, 우리 개구멍으로 좀 긴 카지노 게임을 할까요?' 하는 물음에 바로 OK. 두 번째 개구멍 카지노 게임이었다.
사장님은 탐험가 기질을 갖고 있는 남편 덕에 근방 안 가본 데가 없단다. 하도 여기저기 다녀봐서 빠삭하게 꿰고 있다. 여기에 산 세월이 10년이라니...
지역민만이 아는 좋은 곳이 곳곳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개구멍! 홍성에 사는 우리는 수덕사를 통하지 않는 개구멍을 알고 있고 해남에 살던 작은올케 언니는 대흥사로 가는 지역민들만의 개구멍을 알고 있다.(사찰 통행이 무료가 된 지금엔 의미가 없긴 하다만.) 우린 멍멍이가 아니지만 살짝 뚫고 나가 신천지를 경험하는 신비한 입구, 개구멍을 좋아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쏘옥 빠져 들어가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 고런 개구멍으로 카지노 게임하자는 상콤한 제안에 기꺼이 꼬여 들어간다.
어제 간 곳이 그런 곳이다. 사려니숲에는 자동차 줄이 대체로 길게 서 있고 가다 보면 마주 오가는 이들에 치일 정도지만 우리가 가는 카지노 게임길은 인적이 드물다. 우리처럼 걷는 이를 만나는 일은 뻥 좀 보태면 번개 맞을 확률만큼이나 적다. 어제도 두 시간 카지노 게임길에 기껏 두 명 만났을 뿐 조용한 카지노 게임길을 전세내고 걸어 다녔다. 고불고불 카지노 게임길을 걷다 보면 나무줄기가 늘씬늘씬하고 사랑스레 뻗은 나무들도 만나고 아름드리 삼나무와 활엽수, 그 덩치만큼 우람하고 수세 좋은 뿌리도 만난다. 드물게 대나무밭도 만나고 이파리 서걱임을 협연으로 듣는다. 우연히 마주친 동백은 겉으로만 수줍고 볼 빨간 얼굴 당돌하게 들고 빤히 바라본다. 어딜 그리 가시나요? 물으며. 늘 곁에 있는 듯해도 동그랗게 벌린 그 붉은 입술에 입맞춤은 못 해도 마음 맞춤을 잊는다면 동백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개구멍에서 계곡 숲을 가로질러 다시 들어간 길 양편으론 넓게 벚꽃 무리가 반긴다. 혹시나 하고 발을 멈춰 올려다보면 하늘 아래 한 두 송이 이른 꽃망울이 터져 하늘거린다. 누군가 무얼 위해 심어두었을지 모르나 올려다보고 즐기는 이 순간 그 벚꽃 주인은 우리다. 내일이면 팝콘 튀겨지듯 팡팡 터져 나오리라 짐작된다. 일 년을 기다려온 시간일 테니 꽃 피는 순간 그 찬란함을 함께 맞이하고프다. 어이, 딱 기다리시게!
숨차게 언덕을 오르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여기서 찍었어? 싶은 광활한 푸르름이 펼쳐진다. 이곳은 사장님이 최고로 사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너~~~무 좋죠?를 연발한다. 과연! 가만히만 있어도 숨이 탁 트이는 초록 언덕이 발아래 드넓다. 간간히 구멍 난 카지노 게임 돌멩이로 둘러싸인 무덤들이 있고 저 멀리로 산능선이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양팔을 펼치고 어깨춤을 추듯 교차해 누워 있다. 초록 위를 데굴데굴 구르는 마음으로 걸음은 다시 사뿐해진다. 죽을 때가 된다면 기꺼이 떠올리고 간직하고픈 장면, 죽어도 좋을 장면이 이곳이다. 그림을 그리고 앞으로 꿈이 그림 그리는 사람인 사장님은 그 초원 위에 말을 그려 넣겠단다. 그 말은 자유로움이라는 날개 단 그미의 마음이리라.
신나게 카지노 게임을 하다가 문득문득 곁에서 외친다. 언니야! 저기 달래 있다. 저기도 저기도! 나무와 하늘을 바라보며 걷던 나도 덩달아 고개 숙여 발 앞을 살피게 된다. 자잘한 달래는 패스하고 제법 굵어진 놈들이 보이면 어영차 살살 뿌릴 흔들어 캐다가 똑똑 끊겨도 신난다. 자꾸 멈춰지는 길에서 이제 그만! 낼 아예 호미 들고 와서 뿌리째 캐자고 약속한다. 그러다가 달래를 발견하면 서로 번갈아 달래로 달려가 무릎을 접는다. 깔깔대며 놀려대고 고만고만을 외치며 말로 등허릴 잡아 챈다. 한 달 치 웃음을 몰아 웃는다.
돌아오니 6시 반이 가까워 온다. 저녁밥은 각자 알아서 챙겨 먹는다. 공유부엌으로 들어가니 앞방 언니가 저녁을 준비하신다. 오라버니가 오늘부턴 언니더러 저녁준비하라 하셨다고. 쑥을 한 봉지 캐온 언니는 쑥국을 준비한다. 내가 사둔 다시마를 언니께 건네 된장국에 탐방 집어넣는다. 언니가 콩나물 데친 물에 나는 앞마당에서 사장님과 뜯어온 푸르고 싱그러운 돌갓을 마저 데친다. 쫑쫑 썰려다 귀찮아 가위로 잘라 소금과 들기름만으로 조물조물 무친다. 언니는 콩나물을 나눠주시고 나는 갓나물을 건넨다. 덥혀 따끈한 밥 위에 콩나물과 갓나물을 덜고 만사형통 만능 달래 양념장을 얹는다. 언니가 끓인 쑥국을 덜어 맨으로 구워놨던 김을 들고 오니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만찬이다. 헉! 그러나 갓은 그새 엄청 매콤해졌다. 비벼서 한 입 뜨고 나면 하아하아~ 입을 벌려 매운 내를 빼야 다음 수저가 들어간다. 질깃한 쑥과 가늘어도 맛있는 달래장, 게다가 매콤한 갓, 삼합이 다 향기로 말하는 봄이다. 한 입 뜨자 와르르 밀려드는 봄 향기,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저녁 만찬이다.
봄향기를 삼킨 우리,
향기 나는 사람 되는 거지?!
얏호, 내일도 개구멍 카지노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