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쓰지 않아도 죽진 않지만
25년 2월 1일 토요일.
하루 종일 비가 내렸고 나는 숙소 밖을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오늘은 뒹굴이 모드.
어제 사장님과 지인 부부와 만나 머체왓 숲길~소롱콧길을 3시간 반쯤 걸었다. 걷고 나서 머체왓식당서 고등어구이와 성게미역국을 사장님이 사 주셔서 먹고 와서부터 다리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냥 쉬다 눕다 책 보다 뒹굴거렸다. 어제 낮에 점심 먹고 나서 남원포구에 있는 사장님 빌라를 보고 오다 호떡 하나씩 사서 4시쯤 먹고는 땡 쳤더니 오늘은 새벽부터 깨서 배가 고팠다. 사 온 빵 두 쪽에 땅콩버터와 요구르트 조금 양배추 조금 썰어 넣고 목련꽃차랑 먹었다. 10시 반쯤 복도에서 발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공유부엌이 시끄럽다. 무슨 일 있나 나가봤더니 아래층 손님들이 올라와 점심 준비를 한다. 비가 오니 아이와 무료 카지노 게임이랑 같이 먹을 부침개를 부칠 모양이다. 인사만 하고 내 살림을 얼른 치우고 들어왔다. 비 오는 날 고소한 기름내 나는 부침개라... 딱인걸.
아무래도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니 신경이 많이 쓰이긴 하다. 여기서 얼마동안 지낼 수 있을까? 나의 고요가 한정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약간 불안, 초조가 한 1%는 있다. 인연 따라왔으니 상황 따라 움직이면 된다. 이젠 뭐에도 구애받지 않을 거 같은 배짱과 자신감이 차오른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미루겠다는 것은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은유 샘의 <쓰기의 말들에 나오는 소제목이다. 단호하다.
단호함만큼 뜨끔하다.
‘자기가 쓴 이상한 글을 봐야 하는 형벌을 면하려면 계속 다음 문장을 쓰는 수밖에 없다. (...) 종내는 폐기될 이 엉성한 잡문을 게워 내야 단단한 문장이 끌려 나온다. (...)그러므로 나에게 그 카페는 글쓰기 작업에 최적화된 장소라기보다 글쓰기를 미루고 싶을 때 글쓰기로 들어가는 가장 빠른 입구다. 방해 없는 시간으로 열린 틈서리다.’(<쓰기의 말들 중)
사실 나도 어제 쓴 종잡을 수 없이 오리무중으로 빠지는 글을 결국은 버렸다. 나는 지금 내 생애 한 달이 될지 일 년이 될지 모를 틈새를 크레인으로 벌리고 있다. 이 소중한 시간을 붙잡고도 가끔 딴청을 한다. 유튭을 보거나 지드래곤에 감탄하며 빠지기도 한다. 다행히 그토록 다시 보고 싶었던 모래시계가 넷플에 떴는데 집중이 되질 않는다. 광주에 대해 처음 다뤘던 충격으로 몰두해 봤던 그 시기에서 멀리 나와 있어서인가보다. 고요하고 집중된 시간을 찾아 나선 나의 먼 길을 되짚어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시간이다. 네가 그토록 원해서 찾아온 거 아닌가? 질타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총기를 난사하진 않지만 직무유기를 마냥 내버려 둘 수도 없다.
글을 쓰기 위해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몸을 만들어야 가능하다.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면 나같이 해찰하기 좋아하는 무료 카지노 게임 엉덩이 진득하게 붙이고 쓸 수 있겠나?
‘글을 쓰고 싶다는 이들에게 일상의 구조 조정을 권’하는 은유 샘 말을 듣길 잘했다. ‘글쓰기에 투신할 최소 시간 확보하기’ 이게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다. 집에서는 안 되냐? 안 되는 건 아닌데 뭔가 성에 차질 않는다. 이어지지도 않고. 쓰지 않으면 죽냐? 물론 그렇진 않다. 써도 죽고 안 써도 죽는다. 하지만 불행하지 않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하고 싶은 걸 할 때 행복까지는 아니어도 비로소 행복으로 가는 티켓을 예매하는 행위다, 내게는. 예매하고 행복을 만지러 가기까지 나는 시지프스처럼 그냥 굴려 올리고 내려가면 또 굴려 올리는 일을 반복하듯 쓸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25년 4월 11일 금요일 아침
그제와 어제 나는 서울을 다녀왔다. 갈 때는 혼자였으나 올 때는 무료 카지노 게임 껌딱지를 붙이고서. 무려3개월 만에 상봉.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다. 오빠네서 하룻밤 자고 제주로 내려와 4박 5일함께 지낼 예정.
어제 환한 오후, 사려니숲길에 주차를 해 놓고 버스를 타고 갔으니 그곳으로 돌아와 숲길을 무료 카지노 게임과 잠시 걷고 집으로 돌아왔다. 숙소가 아닌 나의 집!이 되어버린 공간으로.
엊저녁 나와 엇갈려 떠나신 앞방 오라버니가 한 달 살이 식구들과 드시고 우리 몫으로 넉넉히 남겨두신 말고기를 처음으로 구워 먹었다. 비건은 아니어도 소여물 먹듯 고기보다 야채를 좋아하는 나지만 어울려 먹을 때 눈에 나게 고기를 피해가진 않는다. 좋아하지 않을 뿐이지. 헌데 말고기는 풀을 노다지 먹고 자라 그런가 전혀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어젠 오라버니 부부를 생각하며 뜻하지 않게 말고기를 구워 집에서 꾸러미에 보내줬던 쌈이랑 무료 카지노 게임과 맛있게 먹었다. 멋지게 갈기 휘날리던 녀석을 먹다니... 나는 갈기 휘날리며 다그닥거리는 말이, 아님 망아지라도 되려나?
무료 카지노 게임, 그동안 내가 너무나 그리웠단다. 대화다운 대화, 살로 만나는 대화도 없이 외롭고 적적했던 무료 카지노 게임은 자칫하면 사리 생길 뻔. 볼을 부비고 모처럼 진한 키스를 나누고 몸이 있어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밤은 따뜻하게 녹아내렸다.사랑을 나누고 깊은 이야기를 하고 무거운 내 왼쪽 종아리를 아무렇지 않게 허물없이 주물러주는 무료 카지노 게임이 있다는 게 기적 아닐까.검은 머리 파뿌리되도록 30년을 살았으니 소닭 보듯(한 세월도 있었지) 할 만한데 이상하게 떨어진 세월만큼 다정해진다.
황반변성이 있어 두 달에 한 번 서울 가서 눈알에 주사를 맞고 오니 꾸러미 하랴, 눈알 주사 맞으랴 쌓인 피로와 가뒀던 그리움을 두리두리 펼친 밤을 보낸 무료 카지노 게임은 고단했으리라. 아침에 간단히 누룽지 끓인 걸 먹고 나서 한숨 곤하게 자고 있다. 아들과 둘이 고생했을 3개월이 애틋하다. 잠은 참 순결하구나 싶다. 편안하게 가슴 위에 두 손 깍지껴 올리고 낮은 코를 고는 무료 카지노 게임, 일어나기 직전이다. 오늘도 미루지 말고 잠시라도 적는다. 쓰지 않아도 죽진 않지만.
우도를 함께 자전거로 여행할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