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다르게 유난히 환한 빛을 띠며 해가 떠오를 시간. 난 구름과 하늘을 섞어 놓은 듯한 색깔을 띤 12량 기차에 올랐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산 너머로 날아간 용의 자리에 뱀이 똬리를 틀었다. 뜨거운 울분과 분노가 뒤섞인 바깥과 다르게 기차 안은 차분하고 따뜻했다.
나는 창가 65번째에 자리를 잡았다.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늘 전체를 덮고 있던 시커먼 구름이 기차 출발소리에 놀라 조금씩 걷혔다. 구름 사이에 숨어있던 화력 좋은 해가 '쨍그랑' 소리를 내며 불쑥 솟아올랐다. 어제와 모양, 크기가 같은데도 유난히 눈이 부셨다. 난 얼굴을 찡그린 채 한참을 바라봤다. 내 가슴에 설렘을 던져주는 뜨거운 빛을 온몸으로 맞이했다.
이 기차가 종착역까지 무사하게 달리길 바라며 유리창에 하얗게 핀 성에꽃을 닦았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리는 뱀 닮은 기차 좌석이 흔들렸다. 리듬을 타듯 흔들림에 몸을 맡긴 난 무거운 피곤함에 눈을 감았다.
어제와 달리미치도록 화려한 해가 떠오르던 날이 지나고 카지노 게임에게 연락이 왔다. 뒤숭숭하고 흉흉해도 얼굴 한번 보자고. 장수로 귀촌 한 카지노 게임다. 눈이 펑펑 내리던 몇 년 전 그곳에서 보냈던 겨울이 떠올라 난 설렜다. 거실을 누비는 강아지 민트와 고양이 하루. 마당을 지키는 마루까지. 대가족인 카지노 게임는 군고구마와 포도주를 준비하겠다며 눈길 천천히 오라고 당부했다. 가슴을 짓누르던 울분과 분노로 가득했던 12월을 잠시 서랍장에 넣어두고 난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먼저 타고 있던 중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과 엄마에게 인사를 건넸다. 얼굴을 바라보며 아는척하는 엄마와 달리 남학생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고개만 끄덕였다.
난 거울로 눈을 돌렸다. 야리야리한 학생 엄마 모습 뒤로 어깨가 쩍 벌어진 두툼한 내가 보였다. 늘어진 턱살에 목은 덮여있고, 두꺼운 안경에 눌린 코는 오늘따라 더 낮아 보였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 난 슬쩍 거울 옆에 부쳐진 '카지노 게임제세동기' 위치를 확인했다. 숨을 깊이들이쉬고 내쉬다 보니 27, 26, 25…. 엘리베이터는 별일 없이 지하 2층 카지노 게임장으로 내려갔다.
난 그들보다 빠른 걸음으로 공동현관을 지나 주차장으로 갔다. 현관문 옆에 주차된 내 차 앞을 커다란 차가 막고 있었다. 난 이중 주차된 카지노 게임를 밀었다. 카지노 게임는 꿈적하지 않았다. 제법 무게가 나가는 내 상체는 카지노 게임 쪽으로 발은 뒤로 빠졌다. 마치 미끄럼틀을 타는 것처럼 발이 자꾸만 뒤로 미끄러졌다.
잠시 숨을 골랐다.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카지노 게임를 다시 미는데,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던 남학생이 내 뒤를 스치듯 지나갔다. 난 카지노 게임에서 손을 떼고 걸어가는 뒤통수를 잠깐 바라봤다. 두 손에 힘을 꽉 주며 다시 밀었다. 숨 고르기를 마친 깊은 호흡 덕분인지 뒤통수 덕분인지 이중 주차된 카지노 게임는 내 차 앞을 떠났다.
카지노 게임 시동을 켜고 룸미러를 봤다. 내 세상이 뿌옜다. 난 코를 짓누르던 안경을 벗어 닦았다. 오래전 마당에 물을 뿌리면 물줄기 사이로 보이던 무지개가 내 눈앞에 어른거렸다. 힘을 쏟았더니 땀과 눈물이 맺혔나 보다.
난 운전대를 꽉 잡고 달렸다. 어린이집 앞을 지났다. 문득 지난여름 물 분수대를 뛰어다니던 아이들과 종이로 만든 새를 정성으로 보살피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 아이들이 내 모습을 봤다면 어떻게 했을까. 내 손가락 크기만 한 손을 내밀며 서로서로 밀어주겠다고 했을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영하로 내려간 날씨와 머리카락으로 가린 이마 주름이 드러난 탓일 거라 위로했다.
완주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빙판길 조심하라는 교통방송을 들으며 규정 속도로 2차선 주행 도로를 달렸다. 멀리 지리산의 푸르름이 눈으로 덮여있다. 나무들이 흔들렸다. 바람이 유리창을 때렸다. 난 창문을 열어 추운 바람을 맞이했다. 차 속도와 같은 크기의 바람이 자동차 안을 들썩였다. 1월에 맞이한 바람이 나를 때리며 앞으론 이중주차가 힘든 곳으로만 주차하고. 평화로운 호숫가 마을에서 눈도 실컷 보면서 어제를 두고 오늘을 달리는 튼튼하고 안전한 기차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난 점심시간 전 친구 집에 도착했다. 아침에 내린 눈을 치우던 친구가 뛰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친구를 껴안았다. 이중카지노 게임된 차 때문에 힘들었다고 난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배고픔도 잊고 지독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듯 쏟아냈다. 한참을 밖에서 떠들고 있는데 마루가 짖었다. 날이 추우니 어서 집안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친구와 난 군고구마 냄새가 진동하는 따뜻한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거실 창에 붙어 밖을 바라보고 있던 하루와 민트가 우리들 곁으로 다가왔다. 친구는 간식을 줬고, 난 그들의 등을 쓰다듬었다. 신사 고양이 하루는 간식을 오물거리며 2층 계단으로 걸어갔다. 이발을 싫어해 털이 온몸을 휘감고 있는 몰티즈 민트는 내게 머리를 기댔다. 마루 집 지붕에 매달린 고드름이 반짝거렸다. 음악이 흐르고 맛있는 냄새가 친구와 나를 감싸는 포근한 시간. 1월 차가운 바람 탓에 빨갛게 달아오른 나는 살얼음 낀 호수를 바라보며 서서히 다가올 평화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