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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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쾌주 Apr 26. 2025

처음엔 그냥 카지노 게임어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뜨겁지 않은 태양 아래에서 차가운 바람을 따라 걸었지. 네가 알려준 노래의 반주가 시작된 순간 내 귓볼이 빨갛게 달아올랐어. 현을 따라 노래를 불렀지. 기교없이 덤덤한 목소리가 더 슬펐어. 너는 왜 멀어지려 했을까. 그저 손을 잡고 웃으며 함께 걸을 수는 없었던 걸까. 무어라 말을 해야 했을까. 조금 더 당겨봐야했을까. 하지만 나는 부끄러웠는지도 몰라. 혹은 그저 거기까지였을지도 모르지.


"현재 음악을 반복합니다."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어. 조금은 큰 목소리로. 현이 울리며 작은 집 안을 가득 채웠지. 보석같은 눈을 가진 내 고양이는 내가 우는 것을 싫어해. 그래서 울진 않았어. 어릴 때는 술을 마시면 울기도 했지.너는 삐쩍 말라서 커다란 눈 밖에 안 보이는 아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게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무엇이든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지. 그래서 나는 더 울지 않으려고 했. 감정이 움직이는 순간 가장 먼저 반응하며 왈칵 하고 터져 나오는 눈물이 어찌나 원망스러웠는지. 하지만 너는 내가 울거나 말거나 차갑게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어. 그런 네가 너무 야속해서 나는 꺽꺽거리며 울다 비틀거렸고 그제서야 네가 나를 안아주었지. 그런 너를 나는 참 애늙은이같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보다 네가 더 어린애같았다 싶어. 최소한 나는 솔직했으니까. 솔직함이 무기가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좋을 때 좋다고 말했고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었을 때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니까. 이제 나는 예전보다는 덜 울어. 다만 불특정다수앞에서 잘 울게 되었지. 주로 버스 안이나 지하철 안에서. 내 고양이 앞에서 울면 안되니까.


"현재 음악을 반복합니다."


아직도 네가 꿈에 나와. 너는 어떨까.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너는 특별했으니까. 빌어먹게도.

너도, 너도, 너도, 너도 특별했어. 다 달랐고 그러면서도 같았지. 모두가. 다만 지금은 그 빛이 희미해졌을 뿐이야. 하지만 영원히 꺼지지 않고 이따금씩 깜박거리며 그 존재를 뽐내지. 내 삶 내내 그러하겠지.


나는 지금도 무당벌레처럼 빛을 향해 날아가.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가로등 아래에서 붕붕거리다 치지직 하고 타 버릴지, 뜨거운 태양빛에 녹아내려 추락할지. 그렇다 해도 나는 다시 빛 속에 있고 싶어. 네 손을 잡고 얼굴을 붉히고 싶어. 숨소리가 들릴만큼 가까이 다가가 할말이 있다고 할 거야. 너는 귀를 기울이겠지. 그러면 나는 네 귓볼에 후 하고 바람을 불어넣을 거야. 기겁하는 너를 보면서 웃고 싶어. 너를 삼켜버리고 싶어. 큰 웃음을 짓고 싶어. 너의 목에 입맞추고 싶어. 내 잇자국을 남기고 싶어. 엉망진창 계단식으로 난 내 치열을 네가 볼 수 없게.





추신. 사실 비는 오지 않았어. 노래 가사를 인용하느라 저렇게 적었을 뿐. 우리나라의 기후는 열대 기후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나의 이별 장면에선 단 한 번도 비가 온 적이 없어. 비가 오는 날엔 이별을 할 수 없으니까. 너와는 이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먼저 손을 내밀어주면 좋을 것 같아. 여기서 같다는 표현은 쑥스럽다는 뜻이야.

오늘도 너를 생각해. 다음에 만난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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