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문 Mar 31. 2025

온라인 카지노 게임 어덜트들에게 찬사를?

김연수(2012). 온라인 카지노 게임보이. 문학동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지난 건 언제든 슬프다. 지났기 때문이다. 지났기에 어찌할 수 없으니까. 어찌할 수 없는 건 어찌할 수 없으니 슬픈 것이다. 봄이 오는 오늘, 슬픈 건 김연수가 쓴 원더보이(2012) 때문이었다. 소설이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198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랬더니 마음 한구석부터 채워지는 감정이 심상찮았다. 이런 감정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체념, 포기, 달관, 무기력, 어쩔 수 없음에 대한 절망? 시간이 그랬다. 돌이킬 수 없으니. 돌릴 수 없으니. 가버린 그건 내가 곧 유한한다는 명징한 증거이지 않던가.


"결국 사람은 없어져도 모든 건 그대로 남아있네요."


2012년 1판 1쇄가 나왔는데 소설의 주 배경이 1984년에서 1987년에 이르는 기간이다. 작가가 살아온 기간이지만 그걸 의식하면서 컸을 시간은 아닌데, 그가 대학에 들어간 건 1990년대 아니던가? 그런 그가 정확히 그 나이였을 때로 돌아가 소설을 쓴 것 같은 기분이다. 15살의 소년 정훈이 살아간 1984년과 1987년을 한참 지난 2012년에 쓴 이야기. 그가 글을 쓴 내용도 지난 이야기이고 지난 이야기를 읽고 있는 독자도 그때를 살았던 사람으로 그때 있었던 일들이 대상이다 보니 그냥 허탈해진 거였다. 어쩔 수 없구나!


작가가 배경으로 쓴 그때 그 시절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소설로나마 기억하게 만들었으니, 누군가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 그것이 허구라도 울림이 작지 않음에 다시금 소설은"힘"이 세다는 걸 알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뭐가 있지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40여 년 전 벌어졌던 일들이 다시 반복되는 기시감으로 허탈해졌었나 보다. 이건 봄이 오는 소리라고 믿고 싶지만, 봄은 이렇게 오는 걸 모르지 않지만, 지난 건 그걸 과거라고 부르기에, 그건 돌이킬 수 없음에도 왜 자꾸만 유령처럼 반복되는지. 혹은 떠도는지. 인간이란 그런 것일까?


소설은 1980년대에 벌어졌던, 얼굴만 바꿔 더 세련된 오늘날에도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아서 더 슬픈, 참혹한 시대에 정훈이 등장한다. 트럭에 과일을 싣고 팔러 다니는 아버지가 사고로 마지막이 되는 걸 본 것으로 그는 의식을 거둔다. 졸지에 아버지를 잃었는데 상대방 차량이 남파 간첩이 탔었나 보다. 소가 뒷걸음치다 잡았는데 그건 쥐가 아니었다. 혼수상태. 그 후 깨어나니 그는 옛날 정훈이가 아니었다. 그 이후 그는 사람 마음을 읽는 원더보이가 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읽는 건 사람의 마음뿐인데, 이걸 이용하는 이가 있었다. 권 대령이라고 그가 정훈이를 고문실에 끌려갔던 사람들 마음을 읽는데 이용한다. 말이 좋아서 재능개발실이란 곳. 운동권(?) 잔당들을 색출하는 임무라니!


엄마는 자기를 낳다가 죽은 줄 알았다. 사고 이후부터 엄마의 존재가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그가 만나고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달라진다. 세상에서 화염병을 제일 잘 던진다는 선재 형, 남장했을 때는 강토라는 이름으로 자기 때문에 첫사랑이 죽었다고 믿는 희선 누나, 스스로 농장을 꾸려 살아가는 무공 아저씨, 해직언론인이면서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재진 아저씨. 이들이 살아간 1980년대는 그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상처를 힘겹게 이겨내며 살아온 시간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데. 손을 뻗으면 어둡고 암담한 시간들이 손으로 잡힐 것 같은 시대를 정훈 또한 살아가며 점차 어른이 된다.


열다섯 소년이 파란만장했던 시대를 살아가며 커가는 이야기로 보면 성장소설 같지만, 어떻게든 어른으로 성장한 진짜 어른들도 잘 모르는 그때 이야기들. 아니면, 외면했던 그때 그 시절을 원더보이 시선으로 그리니 가슴이 더 아린 건 왜일까? 마음이 울적해서 그냥 슬프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건,우주에 그렇게 많은 별들이 있음에도 우리의 밤이 여전히 어두웠기 때문이다."우리의 우주가 아직은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기에 희망처럼 느껴지다가도 "그때 우리가 아직은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기에 희망을 다시 갖고 싶다가도, 지금 아니 오늘을 사는 작가나 나나 주인공 정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슬픔이 슬픔을 만나면 그건 슬픔이 아니어야 하는데, 소설은 그랬건만, 소설 밖 현실은 위로가 되기는커녕 슬픔이 슬픔을 만나면 변질될 수도 있음에 하루하루 원더보이가 버텨낸 것이 신기했다. 그랬기에 원더~~~ 지만.


소설에선 1986년 종로 한복판에서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건 눈치가 보이는 행동이었듯이, 오늘날은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 눈치가 보이는 행동이 된 것처럼 세상은 변하는 건 맞는데, 그랬기에 하늘에 그 많은 별들이 반짝여도 어두운 이유를 알아가는 것이 마치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그 많은 통과의례들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원더보이는 세상을 받아들여 하루가 다르게 커가며, 엄마의 숨결을 알게 되는 기쁨이라도 누리련만. 나중에 원더보이는 원더 어덜트가 되기나 할 수 있는지. 당신은 원더 어덜트?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는 어덜트들이 원더인 것 자체가 원더지만, 소년은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마냥 기쁘기만 하지 않았던 건. 세상을 버텨내 어른이 된 건 원더지만, 그러면서 많은 걸 잃지는 않았는지. 뭐, 꿈이라든지 희망이라든지 생명이라든지...... 원더는 어쩌면 그냥 무덤덤해진 걸 말하는 것이 같아서 슬퍼졌던 것 같다. 봄이 오는 오늘. 나아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니. 하다 보니 이렇게 된걸, 돌아가자니 돌아갈 수도 없으니. 그래서 위로라도 해야겠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어덜트가 된 당신에게 찬사를 축복을 행복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