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들판이었으나 아직 끝을 보지 못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은 지 5년.
숱한 좌절 끝에, 드디어 내 글을 세상에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친구들과 만나 술과 밥을 먹으면서 세상사 한탄과 시답잖은 농담과 드립 치는 걸 좋아하고, 매주 극장에 가서 꼭 보고 싶은 카지노 게임를 챙겨본다. 음악을 들을 때면, 문득 어떤 카지노 게임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게 상상하고 연결 짓는 걸 좋아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내가 카지노 게임를 사랑하게 된 건, 어릴 적 큰누나 덕분이었다.
월급날이면 누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한 편씩 사다 주었고, 나는 그걸 품에 안고 날마다 돌려봤다.
매일 쾌청 테이프와 디즈니 비디오와 함께 했고, 어머니가 좋아하셔서 소장했던판관 포청천도 함께 보았다.
누나를 따라 비디오 대여점에 들르던 것도 일상이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카지노 게임’라는 세계를 만나게 됐다.
또래 친구들이 게임을 즐기던 시간, 나는 조용히 카지노 게임를 보며 꿈을 키워갔다.
지금의 카지노 게임광이 된 계기는 1999년 1월 1일, KBS 1 TV에서 방영해 줬던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다.
어릴 때 나는 극카지노 게임보다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하지만 작은 누나는 정말 좋은 카지노 게임라며 나를 설득했고, 결국 온 가족이 함께 보게 됐다. 그날, 처음으로 무언가가 마음 깊숙이 확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TV에서 하는 카지노 게임를 테이프 2개로 녹화까지 해서 계속 돌려보기도 했다.
그 이후로 누나들이 빌려오는 VHS 테이프와, TV에서 틀어주는 '주말의 명화'를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가 되었다.
문방구에서 팔던 카지노 게임 포스터가 들어간 엽서지, 그리고 누나들이 가져다준 카지노 게임 홍보 전단지, 그리고 누나들이 보고 준 카지노 게임 티켓까지. 그 모든 게 소중했다.
10대의 나는, 블록버스터와 공포 카지노 게임를 좋아하는 평범한 카지노 게임소년이었다. 커다란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폭발과 추격, 심장을 조이게 만드는 스릴에 푹 빠져 지냈다.
20대가 되자, 발길은 자연스레 독립카지노 게임와GV로 향했다.
조금은 서툴고 투박했지만, 그 안에 깃든 진심과 결을 찾아내는 재미에 눈을 떴다.또 일본 카지노 게임 특유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비주얼에도 마음을 빼앗겼다.조용하지만 강하게 스며드는 장면들, 말보다 감정이 먼저 전해지는 순간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30대의 나는모두가 느꼈겠지만코로나라는 터널을 지나왔다.문화적인 부분이 더디게 흐르거나 멈춘 시간 동안 카지노 게임들도 그전보다 더더욱 비슷해지고 익숙한 맛이었고,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반짝이는 카지노 게임를 발견하는 기쁨을 놓치지 않고 있다.익숙함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기발함을,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찾아 나선다.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혹은 '사도'처럼 익숙하지만 그 안의 다른 변주가 되는 것을 찾는 것처럼, 나 또한 그런 매력을 더더욱 찾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된다면 가장 먼저 내 마음속 보석함을 열어 보이고 싶었다. 오랫동안 나만 품어왔던 카지노 게임들, 나를 설레게 하고 지탱해 주었던 카지노 게임들을하나하나 꺼내어 조심스럽게 소개하고 싶었다.
그 마음을 담아, 처음 연재하는 작품은 오래오래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이어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