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습까지 일주일 남았다. 캐비닛 안쪽을 뒤져 겨우 찾아낸 수영복은 만지는 순간 버석한 소리가 났다. “제발 날 버려줘” 수영복이 읍소했다. 그러고 보니 이 수영복을 마지막으로 입은 게 8년 전이다.
강습용 수영복은 주로 탄탄하고 내구성이 좋은 폴리에스테르 재질을 입는데, 이를 ’탄탄이‘라고 부른다(공식 용어는 아닌데 우리나라 수영복 사이트에서는 공용어처럼 쓰인다)
수영복 선택지가 상당히 다양해서 처음 샌드위치 전문점 ‘서브웨이’에 갔을 때의 기분이 들었다. 일단 가슴선의 높이, 다리 쪽 커팅라인, 등 쪽의 끈 모양 이 세 가지를 결정해야 한다. 내겐 수영복을 입는 것 자체가 일생일대의 노출이라 내려올 건(다리 쪽 커팅라인) 최대한 내려가고 올라갈 건(가슴선) 가급적 올라가서 몸을 효과적으로 가려줄 수영복이 필요했다. 그 결과 수영장의 교복이라 불리는 검은색 나이키 레이서백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나중에 미국 수영복 사이트를 구경해보니 커팅라인이 로우컷 제품은 거의 없고 보통 미들컷부터 시작이다. 한국 수영복 사이트엔 다리가 덜 파인 로우컷 제품이 많다. 계속 보다 보니 미국 사이트 수영복 모델들이 인상적이다. 체형이 수영 선수와 유사하다. 어깨가 넓고 등과 허벅지 근육이 도드라져 수영인을 모델로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백발 노년 여성, 큰 체격의 여성, 단단한 팔 근육이 돋보이는 여성 등 모델의 연령대와 체형, 피부색이 다양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2030 백인 여성만 수영하는 게 아닐테니 그 모습을 반영한 것 같다.
한국 수영복 사이트는 대체로 44반에서 55사이즈만 입는 여리여리한 젊은 여성이 모델이고 어떤 곳은 한국 브랜드인데도 온통 백인 여성을 모델로 쓴다. 수영은 날씬한 여성, 젊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획일화된 하나의 이상적인 몸을 정해놓고 노출하면서 그것을 좇으라는 메시지로 들리기도 한다. 다양한 체형의 모델이 수영복을 입고 있으면 좋겠다. '이걸 입으면 예뻐 보일 거예요'가 아닌, '어떤 몸도 잘 어울려요'로 각자의 몸을 긍정해줄 수 있지 않을까.
달리기처럼 갖고 있는 걸 활용하면 시작비용이 0에 수렴하는 운동도 있으나, 수영은 어쨌든 수영복, 수모, 수경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처음엔 수영이 내게 잘 맞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고가 제품을 사기 보단 저렴한 것으로 체험판 기간을 보낸다고 하면 총 10만 원 이하로 구입할 수 있다(세일 품목 구입 시 5만원 내외로도 가능) 무엇보다 집 근처에 지자체 수영장이 있는 ‘수세권’에 산다면 이 특권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구립이나 시립 수영장은 기본적인 관리도 되고 강습료도 저렴하다. 물론 랜선 경쟁자들을 제치고 수강신청에 성공하는 난이도가 극상인 미션에만 성공하면 말이다.
입수 전 다 같이 물 밖에서 준비운동을 할 때 둘러보면 어두운 색의 무늬 없는 로우컷 수영복이나 엉덩이를 전부 가리는 1부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은 대부분 초급반으로 간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화려한 무늬, 조명을 킨 듯 톡톡 튀는 색감, 브라질리언 왁싱을 했을 법한 하이컷수영복을 입은 분은 대부분 상급반 회원이다. 초급이어도 화려한 무늬나 하이컷을 입을 수 있는데 1년 동안 지켜보면 다들 예상했던 레인으로 흩어진다. 다리 움직임이 더 자유로워져서 수영 고수들은 하이컷을 선호한다는데 중급반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엄두가 나지 않는 걸 보면 내 안에 유교걸이 아직 건재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