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CHO Sep 04. 2024

방콕, 인도 카레 속에서 찾은 문제 해결의 평범한 원칙

두 번째 목적지 방콕, 태국_1

미국에는 타이 음식점이 중국 음식점이나 베트남 음식점만큼 많다. 호야는 베트남 음식이나 인도 카레 등은 아주 좋아하면서도 이상하게 타이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다. 호야가 최애 요리로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음식이 베트남 쌀국수라 타이 요리에도 몇 번 도전해 보았는데, 영 시원치 않았다. 사실 방콕 보다 베트남 투어를 더 선호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어쩔 수 없이 베트남을 스쳐 지나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최대한 긍정적인 면만 생각하기로 했다.

호야의 특성상 분명 미국에서 자주 먹던 음식들을 먹겠다고 할 테니, 그중 한 두 번 정도는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 볼 좋은 기회다. 그리고 서울을 제외한 아시아 여행은 처음이니만큼 새로운 액티비티에도 도전해 보자. 날씨가 더운 동남아에서 관광을 하기에 인프라가 베트남보다 방콕이 더 낫다고 하니, 이 점도 우리에게는 더 나아 보인다. 호야가 땀을 엄청 흘리니 말야.. 여담이지만 호야가 고등학교 때 수영팀과 워터폴로팀에 들어간 이유도 아주 단순하잖아?. "물속에서는 땀이 안 나잖아요!"


카지노 게임나마스테~ 우리가 두번째로 묵었던 아난타라 호텔 입구의 꽃장식


방콕에서의 첫날, 느지막하게 일어난 나랑 호야는 호텔 맞은편에 있는 엠포리움 쇼핑몰 식품관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호텔에서 몰까지는 약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방콕의 더위를 각오한 터라 나는 괜찮았는데, 호야는 이 5분 걷는 것도 너무 힘들어했다. 날씨가 흐릿해 구름이 낀 건 줄 알았는데 나와보니 햇볕이 쨍쨍한 데다 꿉꿉하기까지 한 날씨다. 다행히 쇼핑몰 안에는 에어컨이 엄청 빵빵하게 틀어져 있었다. 한기가 들 정도로 세게 작동되고 있어 감기 걸리기 딱 좋겠다 싶었지만 호야는 시원하다며 너무 좋아했다. 초행길이라 물어물어 몰 위층에 있는 식품관으로 들어갔다.

카지노 게임엠포리움 몰 식당가에서

엠포리움 쇼핑몰은 바로 옆에 또 하나의 쇼핑몰인 엠쿼티어 몰을 지척에 두고 있는 종합 쇼핑몰로 명품 쇼핑에서부터 각종 위락 시설까지 다 갖춘 고급 몰이다. 그런 곳이니만큼 식품관도 상당히 수준이 높았는데, 무엇을 먹을지 알아보려고 일단 몰을 한 바퀴 돌았는데, 입점된 음식점이 미쉘린 구르마에서 높은 평점을 받은 곳들이 수두룩했다. 타이 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눈 돌아갈 지경이었고, 뭘 먹어야 할지 매우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이런 곳이라면 카지노 게임도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거야! 이런 기대를 품고 카지노 게임에게 무엇을 먹을지 물어보았다. 카지노 게임의 대답은 아주 심플했다.

나는 인도 카레!

무얼 먹든, 스스로 무엇을 먹을지 주변을 보고 선택했다는 것이 대견해서 카드를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카지노 게임, 이 카드로 네가 사고 싶은 음식을 사 봐.. 저기 바로 옆에 테이블 보이지? 거기서 엄마랑 만나는 거야. 엄마도 엄마 먹고 싶은 음식 사서 거기로 갈게.

내가 옆에 있으니, 자꾸 나보고 도와 달라고 하기도 하고, 어디 나 없이도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나 두고 보자.. 싶어 일부러 혼자 음식을 시키게 두었다. 만약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 전화를 할 것이니 괜찮을 거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어디까지 부대낄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나도 부랴부랴 음식을 주문해 나온 음식을 받아들고는 호야와 약속한 장소로 가려고 아까 호야와 헤어진 곳을 지나가려고 하는데, 어라? 호야가 아주 난감한 표정으로 카운터 앞에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었다. 순간,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싶어 심장이 마구 뛰었다. 급하게 아이에게 다가가서 '왜 이러고 서 있느냐'라고 물었다. 호야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 여기는 카레를 시키면 밥이 같이 안 나온대요. 밥 먹고 싶으면 따로 사라는데, 무슨 돈으로 사야할지 몰라 고민하던 중이었어요. 근데 여기는 왜 밥이 같이 안 나와요?

엄마가 준 카드로 사면 되지! 이 답을 카지노 게임는 못 찾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는 인도 카레와 의례 함께 나오던 밥이 없으니 밥을 먹고 싶으면 따로 사야 하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 평소 같았으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답도 찾지 못하고 얼어 있는거다.

예전 같았으면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하나도 제대로 못 시킨 아이가 실망스러워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9년 동안 이 아이와 보낸 시간은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아이가 느낄 감정 또한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나를 바꾸어 놓았다.문제 상황에서 바로 생각의 전환이 안 되니 자폐인거지. 생각을 전환시키는 것은 앞으로 더 연습하면 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호야, 여기는 방콕이야. 방콕에서는 카레랑 밥을 따로 주문해야 하나 봐. 그건 엄마도 몰랐어. 그러니 밥을 따로 주문하자. 너 많이 배고픈데 카레만 먹을 수는 없잖니..
우리가 앞으로 계속 여행을 하다 보면, 지금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계속 생길거야. 그럴 때는 당황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찬찬히 생각해 봐. 어떤 것이 더 나은 방법인지 모르겠으면, 지금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지 말고, 엄마한테 뭐가 문제인지 알려주면 엄마가 도와줄 수 있어.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아야 그 문제를 풀 수 있단다. 그러니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 그것부터 생각해 보는 연습을 해 보자.
카지노 게임
힘들게 오더한 인도 카레와 밥. 난도 시켜 먹었다. 위 오른쪽은 카지노 게임랑 같이 처음 도전해 본 디저트. 아래 두 사진은 내가 고른 바질 팟 씨위.

'무엇이 문제인가'를 파악하고 말하기. 문제 해결은 여기부터 시작이다.

우리는 방콕에서 좌충우돌했다.

BTS를 타고 다니기로 했는데, 티켓 사는 것부터 막혔다. 호야는 처음에는 왜 이 티켓 발매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느냐며 불평을 했고, 급기야는 엄마 때문에 BTS도 못 탄다며 짜증을 부렸다. 더워서 더더욱 짜증스러웠던 것은 이해하나, '엄마도 모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했다. 아니 이것을 호야가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미국의 호야 엄마는 호야에게는 슈퍼우먼이었얼지 몰라도 방콕과 앞으로 우리가 갈 여행지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 너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했다.

여기서 타이 밧트화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툭툭이를 탈 수 없다는 것, 다시 말해 툭툭이를 타려면 미국 달러나 한국 원화로 환전해야 한다는 것 또한 가르쳐야 했다.

라차담리 역에서 BTS 티켓 사느라 엄청 애먹었다(왼쪽) 왓포 가는 길. 갈때는 지하철역에서 툭툭이를 타고 갔는데, 올 때는 밧트화를 더 환전해야 했다.(오른쪽)


예전의 나였으면 이미 버럭 했을 테지만, 뭐가 문제인지 알려주고, 너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엄마를 도와주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하려고 했던 것들을 못 하게 된다는 것을 여러 번 설명하니 차츰 알아듣기 시작했다. 점차 BTS가 가는 방향이 제대로 가는지, 거꾸로 가는지 호야가 체크하고 내려야 할 곳도 호야가 챙기기 시작했다.

대부분 미국 카드로 긁었지만 현금을 써야 할 때가 있었다. 툭툭이를 탈 때, 사원에 들어갈 때 등이 바로 그런 경우였는데, 처음에는 카드를 안 받고 현금만 받는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더운데 툭툭이를 못 타고 걸어가야 한다니! 현금이 없어서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 못 했다. 돈에 대해 가르친 김에 아예 우리가 하루동안 쓴 돈을 기입하는 일을 카지노 게임에게 맡겼다. 그리고 오늘 쓴 돈이 달러로 얼마인지 환산하는 것도 맡겼다. 카지노 게임는 이 일을 퍽 좋아했다. 어쩌면 북키핑하는 일을 좋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돌아가면 관련 수업을 한 번 듣게 해 봐야겠다 생각했다.

카지노 게임가 작성한 7월 12일 지출내역서. 이 날은 미국에 가져갈 오르골을 선물로 사서 지출이 큰 날이었다.


여행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카지노 게임.

호야가 여행중에 가장 많이 성장한 부분은 이제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전에는 이것이 문제인 줄 조차 몰랐던 문제들도 많았다. 그러니 작동이 안 되거나 하면 화를 내며 집어 던지거나 깨물었다. 호야의 셀폰에 보호 유리를 씌우는 것은 필수다. 안 그러면 액정이 남아나질 않는다. 허나 이 여행 이후로 조금씩 스스로 문제 파악을 하고, 이것을 나에게 전달한다. 적어도 무엇이 문제인지 엄빠에게 이야기하면 엄빠가 도와줄 것이라는 신뢰가 생긴 듯 하다. 그 전에는 나빠진 결과에 대해 혼날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컸었던 아이다. 그 덕에 호야의 인스타가 해킹당했을 때도 초기에 파악할 수 있었고, 구글 계정에 할당된 메모리가 다 차 더 이상 구글닥으로 문서 작성이 안 된다는 것도 나에게 이야기했을 때 메모리가 큰 파일부터 지우라고 알려주었다. 이렇게 '문제를 파악'해 우리에게 '구두나 톡으로 알려주니' 호야의 폭력적이고 신경질적인 대응도 현저히 감소했다. 요즘은 한 발 더 나아가 스스로 해결책을 우리에게 제시하기도 한다. 그럴 때 마다 우리 부부는 정말 아낌없이 칭찬을 해 준다. 설령 그 해결책이 부실해 보일 때에도 말이다.



엠포리움 몰 밖에서 마사지 샵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더워더워'를 반복하면서도 신이 나 온갖 포즈를 다 취하고 있는 카지노 게임. 저 사진들 다 설정샷이다!


덥고 조금만 걸어도 지치는 날씨였지만 카지노 게임는 생각보다 군소리 없이 잘 따라다녔다. 어떤 면에서는 워낙 참을성이 있는 녀석이다. 잘 참는다고 계속 끌고 다니면 참을성의 끝나는 그 어느 순간 짜증 낼 것이므로 상황 봐서 적당히 시원한 곳에서 쉬다 나오고 또 투어를 하고를 반복했다. 나도 카지노 게임를 배려했고, 카지노 게임도 '아이고 더워'를 반복하면서도 연신 셀폰 카메라로 인스타에 올릴 사진들을 찍으며 신나게 나를 따라다녔다.


어쩌면 그동안 나의 가장 큰 문제는 '호야에 대한 배려 없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저렇게 인내심 있는 아이를 내 성질에 못이겨 내가 아이를 폭발하게 만든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반성도 했드. 내가 호야를 배려하니, 호야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여행 메이트였다. 역시 문제는 나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