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목일 생명과 자연을 돌보는 마음
그 카지노 게임 사이트 여전히 꽃을 심는다.
어릴 적 식목일이 되면, 학교에서는 나무를 심으라고 권장했다. 지방의 학교들은 아예 산에 올라가 나무 심기를 했다.
식목일날 학교에서 모종삽을 들고 흙을 파며 친구들과 나무를 심었다. 아이들은 수업하지 않고 밖으로 나오니 들뜬 모습이었다. 하지만 장난을 좋아하던 남자아이들은 까불며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그중 한 아이는 심하게 장난을 쳐 옆에서 나무를 심던 아이가 넘어져 무릎이 까져 피가 나는 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당시에는 선생님이 ‘사랑의 매’라며 체벌을 하시곤 했다.
우리는 심은 나무에 물을 주며 “내가 심은 나무가 더 많이 자랐어!” “잎이 나왔어!”라며 자랑하곤 했다. 흙 묻은 손과 웃음 속에, 생명을 돌보는 기쁨이 있었다. 비록 요즘은 땅에 나무를 심는 일이 드물지만, 그 마음만큼은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고 느낀다.
얼마 전 산불로 울창한 숲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는 뉴스를 봤다. 기후변화의 경고 같기도 했다. 한때 나무를 심던 그 작은 손길이 이제는 더욱 절실해진 것 같다. 그렇게 작은 삽 하나 들고 흙을 만지던 그 시절을 돌아보게 된다. 나무는 단지 풍경이 아니었다.
내가 살던 옛집에는 넓은 마당 한쪽에 화단이 있었다. 장미, 라일락, 철쭉, 그리고 매화나무가 있었다. 아버지는 유독 매화나무를 좋아하셨다. 어느 날, 매화나무를 심으시며 말씀하셨다.
“나 죽거든 매화나무 밑에 묻어다오.”
그러나 그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나무는 집의 일부였고, 삶의 정취였다. 어쩌면 아버지의 마음 한 자락이기도 했다
얼마 전만 해도 식목일은 공휴일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공휴일이 사라졌다. 초등학교에서 나무 심지를 않지만, 유치원에서는 작은 꽃씨를 심고, 직접 키운 화분을 집으로 가져온다. 손녀도 자기 화분을 받아 와서는 물을 주고, 햇볕 잘 드는 창가에 올려놓는다. 며칠 지나 싹이 올라오고 꽃이 피었다. 그 조그만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내 화분이야!” 하며 다른 형제들 손이 닿지 않게 꼭 안고 다닌다.
나무를 심던 내 어릴 적 식목일과 화분 하나를 소중히 키우는 손녀의 식목일이 다른 점이 있지만, 그 마음은 닮았다. 세월이 흘러도, 땅을 아끼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렇게 다시 피어나고 있다.
작은 화분 하나와 고사리손의 물뿌리개, 그리고 “내 거야!” 하며 품에 꼭 안는 아이의 마음속에서, 나는 오래전 나무를 심던 내 모습을 다시 본다. 시간은 흘렀고 풍경도 바뀌었지만, 흙을 만지며 생명을 돌보는 그 마음은 여전히 우리 안에 숨 쉬고 있다. 그 마음 하나하나가 모여, 다시 숲이 되고, 다시 사람이 되고, 다시 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