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성 소설집 해설욕망의 리듬과 윤리의 스텝- 문신 문학평론가,
골드가 실린 저의 첫 소설집 <보스를 아십니까에 대한 해설집 전문을 싣습니다. 저의 소설의 맥을 잘 집은 해설입니다. 그 한 가운데, 그동안 연재한 <골드가 있습니다. 저의 소설 골드와 함께 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질문이 있는 작품으로또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만성 소설집 해설
욕망의 리듬과 윤리의 스텝
문신(문학평론가, 우석대 교수)
1.당신의 자본주의는 안녕하십니까?
새로운 소설가의 탄생을 두고 까마득한 밤하늘에 새로운 별 하나가 반짝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면 과장일까? 게오르크 루카치의 통찰을 믿는다면, 밤하늘의 별과 소설가를 하나로 바라보는 일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삶이 풍요로웠던 시절, 우리는 얼마나 자주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던가! 게다가 그 별을 헤아려 삶의 지표로 삼고, 그 별의 이야기를 상상해보던 우리의 가슴은 얼마나 서늘했던가! 그 별빛 아래 밤새워 소설을 읽던 날들이 까마득하게 여겨지는 지금, 새로운 소설가의 소설을 읽는다.
김만성의 소설에 등장하는 문제적 개인은 대체로 남자다. 이 경우 남자는 생물학적 존재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부유하는 욕망의 기호에 가깝다. 그런 까닭에 소설에서 남자들은 한순간 뜨거운 심장처럼 자기 삶을 분출해낸다. 이렇게 말하면 김만성의 소설이 남자들‘의’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직하게 말하자면 김만성의 소설은 남자들‘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충만해 있는 남자들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김만성의 소설은 여기에 한 겹의 서사를 덧붙여놓고 있다. 그건 남자를 넘어서고 초과하고 초월한 세계, 다시 말해 남자의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자본주의적 세계에 관한 작가 개인의 경험적 통찰이다. 그 통찰은 ‘남자에 관한’에서 ‘남자’를 괄호 안에 은폐해버리고 남은 세계이다. 그럴 때 ‘~에 관한’이 지시하는 세계는 남자가 소거된 공백의 세계다. 그러니까 김만성의 소설은 두 겹으로 읽어야 한다. 하나는 남자의 이야기로, 다른 하나는 남자가 빠진 이야기로. 이렇게 김만성의 소설을 읽는 이유는 그의 소설이 남자를 다루면서도 남자를 제외한 자본주의적 세계에 대해 들려주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세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이자 소설이 다루고 있는 세계 말이다. 별이 반짝이려면 캄캄한 어둠의 세계가 필요하듯, 김만성의 소설에서도 남자를 존재하게 하는 자본주의라는 세계가 있다. 그의 소설에서 자본주의는 욕망을 충동질하는 심장 박동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자본주의의 심장에서 수혈한 피로 뜨거운 숨을 내쉰다. 그러나 알다시피 “자본시장은 흔히 탐욕과 공포가 공존하는 곳”(「청바지」, 00쪽)이다. 김만성의 소설은 그러한 자본주의의 탐욕과 공포를 우리 시대의 욕망으로 표출해낸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의 욕망이 어떻게 이 세계에 탐욕과 욕망이라는 자기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지 확인하게 해준다.
그리고 강렬한 골드 색상! 화이트나 블랙, 기껏해야 실버톤이 전부였던 국산차에 비해 눈부시게 아우라를 내뿜는 골드 빛 광택은 한 순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내 안무료 카지노 게임 뭔가가 꿈틀거렸다. 1등의 색깔, 귀족의 색깔, 부와 명예의 상징인줄만 알았던 골드 색이 내면으로 파고드니 다른 색으로 변했다. 폭발하는 느낌이었다. 응축되었던 것이 발산하고, 무한정 퍼져 나갔다.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싶었고, 다른 색의 가치를 높이고 싶었다. 골드 색이 그렇게 나를 유혹했다.
질주하는 S자동차의 황금빛 세단이 TV광고에 자주 나왔다. 나는 광고를 볼 때마다 내 육체무료 카지노 게임 영혼이 이탈하여 TV광고 속의 번쩍거리는 세단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환상에 빠졌다. 내가 운전하는 차는 눈부신 광채를 발산하며 빠른 속도로 질주해 태양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무수한 빛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 것이 광고의 힘이라면 나는 포로가 된 셈이었다. 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구매를 결정했다. 2002년 월드컵이 시작된 7월에 내 인생의 첫 차인 골드 색상의 세단을 인도받았다.(「골드」, 00쪽)
인용한 부분은 김만성의 소설에서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골드 색”으로 기호화된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나를 유혹”한다. 그 유혹은 “눈부신 광채를 발산”하고, “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구매를 결정”해버린다. 그럴 때 ‘골드’는 “1등의 색깔, 귀족의 색깔, 부와 명예의 상징”이면서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한 개인의 욕망을 “폭발”하게 한다. 이렇게 정교하게 기획된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개인의 자율 의지는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자본주의는 욕망의 환상과 환각과 환희를 보여줌으로써 개인의 의지를 무력화해버린다. 그래서 모든 개인은 자본주의의 “포로”일 수밖에 없다.
소설 「골드」에는 그러한 자본주의적 환상에 사로잡힌 남녀가 등장한다. ‘나’는 S그룹 계열사 직원으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첫 승진 케이스에서 덜컥 대리”로 승진하고, 그로 인해 일명 ‘골드’로 불리는 자동차를 산다. “눈부신 아우라를 내뿜는 골드 빛 광택”에 한순간에 사로잡힌 그는 그렇게 자본주의라는 환상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런데 그곳에는 “소위 사내에서 퀸카로 소문난 8년차 가영 대리”가 있다. 이 소설에서 ‘가영 대리’는 인간 내면에 잠재해 있는 욕망의 파괴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고 나아가 그러한 욕망을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아는 인물이다. 그녀가 ‘나’에게 “믿을 만한 사람 명의로 통장을 하나 만”(00쪽)들라고 조언하는 일은 소설 속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나’는 선뜻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가영 대리의 말에 따르면 ‘나’는 “사람이 꽉 막혔”(00쪽)기 때문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나’에게는 폭주하는 자본주의에 맞서는 개인의 윤리가 아직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킷브레이커」에서 ‘나’는 철저하게 자본주의화 되어 있다. ‘나’에게 자본시장은 “24인치 모니터 4개가 깜박거”(00쪽)리는 “제로섬게임의 잔혹한”(00쪽) 세계이다. 그곳에서 ‘나’는 시시각각 오르내리는 주가 그래프를 바라보며 “한판 멋지게 살다 가면 그만인 것이 인생이지 않은가”(00쪽)라고 생각한다. 「골드」에서 가영 대리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투자라는 달콤한 환상에 중독된 채로 불나방처럼 고요한 모니터의 세상”(00쪽)에서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심박동이 빨라”(00쪽)진다. 물론 ‘나’의 그러한 맹목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나’에게 성공적인 투자원칙을 전수해 준 스승은 “고요한 듯하지만 폭풍전야의 바다 같은 욕망의 각축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첫째도 욕심, 둘째도 욕심, 마지막도 욕심이다. 욕심을 버리면 얻을 수 있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원칙이야.”(00쪽) 그러나 알다시피, 자본주의라는 세계는 인간의 욕망을 충동질하고 그 욕망의 찌꺼기를 먹고 살아가는 괴물과 같다. 그런 세계에서 자기 욕망을 버릴 수 있는 인간이 많지 않다. 「서킷브레이커」는 그러한 인간의 욕망을 교묘하게 파고든다. 그리하여 “박 여사는 돈에 굶주린 사람을 자동으로 잉태하는 커다란 자궁과 같은 자본주의의 적자” 같은 인식을 통해 자본주의의 속성을 낱낱이 드러낸 후, 자본주의가 낳은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드라마틱하게 형상화한다. 그럴 때 허위 정보를 활용하여 주식 시장을 교란하면서 그러한 행위를 “개인이 한번쯤은 정보를 만들어 내는 게 뭐 그리 나쁜가”(00쪽)라고 묻는 ‘나’와 그런 행위를 ‘사기’가 아니라 ‘스킬’이라는 말로 정당화하는 ‘나’는 분명 자본주의의 적자임에 틀림없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김만성은 인간의 욕망은 규칙이라는 고삐로 통제할 수 없는 변종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2.우리에게 윤리가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개인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법이나 규칙처럼 외부의 힘을 작동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가끔 개인 내면의 윤리에 기대어 폭발하는 욕망을 적절하게 제어하기도 한다. 앞의 경우가 강제성을 띤 방법이라면, 드물지만 윤리에 기대는 건 인간의 선한 자율 의지를 믿는 방식이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는 법이나 규칙을 동원하여 인간 욕망의 무한 증식을 강제로 억제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서킷브레이커」의 경우처럼 종종 변종적인 욕망을 잉태하기도 한다. 그건 한 개인의 윤리 감각보다 자본주의 세계가 보여주는 환상과 유혹의 힘이 훨씬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은 견고하게 보이는 세계를 향해 분투하는 문제적 개인의 도전을 다루는 장르다. 소설에서 문제적 개인은 강력한 힘과 부딪치고 상처 입고 좌절하다가 각성하기도 한다. 세계의 힘이 완강할수록 분투하는 개인은 아름답게 보인다. 물론 소설 속 인물이 세계와 전면적으로 투쟁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골드」에서 ‘가영 대리’나 「서킷브레이커」에서의 ‘나’는 자본주의라는 세계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스스로 자본주의라는 강력한 세계가 되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에 도전하는 인물을 예외적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김만성의 소설은 그러한 예외적 인물이 세계와 맞서는 순간을 선택적으로 부조(浮彫)하는 일에 특별한 감각을 발휘한다. 세계와 마주한 개인에게 주어진 건 세계와 부딪칠 것인가 세계에 흡수될 것인가의 선택지다. 그 선택의 순간에 작동하는 내적 메커니즘은 윤리다. 윤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자기 욕망을 반영하고, 그러한 삶의 목표가 세계와 어떤 거리 감각을 발생시키는지 측정하게 한다. 「골드」에서 ‘나’가 ‘가영 대리’의 횡령 사실을 폭로하는 일이나, 「서킷브레이커」에서 ‘나’가 스승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서킷브레이커를 발동시켜 자기 욕망을 실현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윤리적 선택의 결과다. 그럴 때 개인의 선택을 공동체의 윤리로 재단하는 건 무의미하다. 개인의 윤리는 주체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성과 무관하지 않고, 공동체의 윤리는 때로 개인의 윤리를 충분히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스를 아십니까」는 이렇게 개인의 윤리가 자본주의 세계와 첨예하게 충돌하는 현장을 이야기한다. 51년째 구둣방을 운영 중인 ‘나’는 신문에 “이색 후계자 공개 모집-50년 구두닦이, 외길로 번 돈 40억 원 어떻게 쓸 것인지 면접!”(00쪽) 광고를 낸다.
그동안 스물다섯 명이 면접을 치렀다. 연령층도 다양했다. 40억 원의 잔고가 찍힌 통장을 내걸고 구둣방의 후계자를 구한다는 광고를 신문에 낸 지 한 달이 지났다. 처음에는 장난 전화가 걸려오다가 신문에 기사가 나가자 면접자가 몰려들었다.
후계자 면접과는 별개로 40억 원을 어떻게 벌었냐며 비결을 묻는 이도 많았다. 지원자 중무료 카지노 게임는 40억 원으로 빌딩임대업을 해서 자산을 늘리겠다는 치들이 다수였다. 구둣방무료 카지노 게임 구두를 직접 닦는다는 한 사내는 동종업계의 경험이 중요하지 않겠느냐며 자기를 후계자로 뽑아달라고 말했다. 그 사이 내 호칭은 고 씨나 아저씨무료 카지노 게임 사장님으로 바뀌더니 어느 사이엔가 회장으로 승격이 돼 있었다. 회장님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지만 그만큼 씁쓸했다.(「보스를 아십니까」, 00쪽)
신문광고는 “구둣방의 후계자를 구”하는 일이지만, 광고를 접한 사람들의 시선에 신문광고는 “40억 원의 잔고가 찍힌 통장”의 변형된 모습으로 비친다. 그 첫 번째 증거는 “40억 원으로” “자산을 늘리겠다”라고 줄을 선 면접자들의 욕망에서 확인된다. 자본으로 자본을 증식하겠다는 욕망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신문광고와 40억 원이 동일시되는 두 번째 증거다. 고 씨에서 사장님으로, 또다시 회장님으로 ‘나’의 위상이 달라지는 일은 인간 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의 실체를 확인하게 해준다. 그래서 “그만큼 씁쓸”한 일이다. 씁쓸함의 이유는 뻔하다. 돈이 인간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 김만성의 소설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욕망을 밀도 있게 다루면서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의 내면을 통해 인간의 윤리가 한 줌의 재에 불과한 사실을 압도적으로 각인시킨다. 그러므로 ‘나’는 후계자를 찾지 못해도 상관없다. 대신 ‘나’는 자문한다. 도대체 “돈 말고 물려줄 것이 나에게 있을까”. 이 지점에서 ‘나’는 자기에게 구두 닦는 방법을 전수해주고, 구둣방까지 물려주었던 ‘보스’를 떠올린다. 보스는 ‘나’와 다른 방식으로 구둣방의 후계자를 구했다. ‘나’가 40억 원을 내걸었던 반면, 보스는 어떤 조건도 없이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짐으로써 구둣방의 후계자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대비는 오래전, 보스와 ‘나’의 대화에서 확인된다. 구둣방 안에서 보스와 단둘이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대목에서 삶을 대하는 두 사람의 윤리가 충돌한다. “지는 배 부르는 기 좋심더.”라는 ‘나’의 말에 보스는 이렇게 충고한다. “인마야. 배 부르는 기는 암 것도 아닌 기라. 구두닦이가 마 광에 살고 광에 죽겠다는 맴이 없으면 이 짓 마 절대 못한다. 니는 마 고만 처먹고 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그라.”(00쪽) 소설은 후계자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의 구두를 말없이 닦아주는 ‘나’를 보여줌으로써 자연스럽게 보스에게서 물려받은 ‘광’의 윤리를 드러낸다. ‘나’는 보스가 말했던 것처럼 ‘광’을 알아보는 사람을 찾으려는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 소설은 40억 원이라는 자본주의 세계의 욕망이 아닌 ‘광’을 알아보는 인간적 윤리에 다가가고자 한다.
욕망과 윤리가 충돌하는 모습은 「NLL」에서도 확인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리해방 선장’은 “으뜸어선으로 선정되면 받게 될 영웅호칭에 더 욕심을 내”(00쪽)는 인물이다. 그는 꽃게잡이철이 되었음에도 어선출입항관리소에서 출항허가를 계속해서 미루는 게 못마땅하다. 반면 “블루패션 사장” ‘김수복‘은 “개성공업지구에서 최고로 북남협력의 모범적인 회사를 만들겠다고 주먹을 쥐어 보이”(00쪽)는 사람이다. 이들 사이에는 리해방 선장의 아내이자 블루패션에서 일하고 있는 ‘림순영’이 있다. 소설은 이들이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 자본화된 세계를 돌파해 가는 각자의 방식을 선명한 대비를 통해 보여준다.
리 선장은 서서히 해방호의 속도를 줄이면서 그물이 천천히 바다 속으로 펼쳐지게 했다. 그물이 슬슬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서 리 선장은 그저 퍼덕이는 꽃게가 낭창낭창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것만을 상상했다. 위대한 장군님의 공훈패와 으뜸어선으로 뽑혀 영웅으로 환대받는 모습을 그렸다. 그때였다. 무선무료 카지노 게임 예기치 않는 주파수가 잡히면서 경고음이 흘러나왔다.(00쪽)
수화기 너머무료 카지노 게임 무어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지만 수복은 애써 외면한 채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밖무료 카지노 게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민족이 하나 되는 쪽에 서라던 아버지의 권고가 무슨 뜻이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참았던 눈물이 가슴 밑바닥무료 카지노 게임부터 차고 오르더니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왔다.(00쪽)
위에 인용한 부분은 NLL 남측구역을 침범한 리해방 선장의 배가 남측 경비정의 경고를 받는 장면이다. 그러나 리해방 선장에게 그런 경고는 “위대한 장군님의 공훈패와 으뜸어선으로 뽑”히는 것을 방해하지 못한다. 결국 포성이 울리고 리해방 선장의 배가 피격된다. 그 와중에도 리해방 선장이 바라보는 건 찢어진 그물코 가득 “통통하게 살이 오른 꽃게가 걸려 대롱거리”는 모습이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끝내는 “리 선장의 몸뚱이가 몇 마리 꽃게와 함께 하늘로 솟구”치고 만다. 리해방 선장을 통해 김만성은 자본주의적 욕망이 개인을 어떻게 존재론적으로 파멸시키는지를 설득해낸다.
수화기 너머에서 전해지는 우려의 목소리를 차단하기는 김수복 사장도 마찬가지다. 남북관계가 여의치 않게 되면서 개성공단 출입이 불가능해지자 김수복 사장은 중국을 통해 개성공단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치적 이슈와는 무관하게 (…중략…) 모든 통상과 무역, 아울러 남측노동자의 안전과 북측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00쪽)하라고 촉구한다. 김수복 사장이 당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으로 들어간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처럼 바닥부터 쌓아 올린 신뢰를 한순간에 이리 내팽개칠 수는 없”(00쪽)었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민족이 하나 되는 쪽에 서라던 아버지의 권고”가 있다. 그럴 때 김수복 사장에게 개성공단은 자본주의적 세계를 견고하게 하는 욕망의 거점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윤리를 민족적 윤리로 확장하는 장소가 된다.
3.흔들리는 존재의 스텝이 삶의 리듬을 만든다
이렇게 자본주의 세계는 개인의 욕망과 윤리가 충돌하는 세계다. 김만성 소설의 인물들은 언제나 그 충돌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래서 그들은 흔들린다. 흔들리면서 조금씩 자기 삶의 리듬을 만들어간다. 때로는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자기 욕망의 크기를 가늠해보기도 하고, 가끔은 그런 자기를 메타적으로 인식하면서 희미한 삶의 윤리를 더듬어보기도 한다. 이렇게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내면이야말로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스텝이 아닐까? “권투는 힘으로만 하는 운동이 아니야. 스텝이 중요하지. 상대방의 힘을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해”(「물어라 쉭」, 00쪽)라고 말할 때, ‘상대방의 힘을 이용할 줄’ 아는 스텝을 인생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물어라 쉭」은 독특한 스텝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형’에 관한 이야기다. “형은 일단 행동하는 사람”(00쪽)이었고, “불같이 화를 내다가도 웃을 일이 생기면 잇몸을 다 드러내고 활짝 웃”(00쪽)는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형은 자기만의 스텝으로 세상과 싸우는 ‘쌈짱’이었고, 그것으로는 부족했는지 “집무료 카지노 게임 키우던 셰퍼드를 킹”이라고 부르면서 세상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존재였다. 반면에 ‘나’는 계속해서 승진에 실패하는 인물이면서 연구소의 일을 도맡아 하는 ‘호구’다.
“사실, 많이 섭섭합니다. 또 다음이라뇨. 제가 이 연구소에는 호구입니까? 며칠 쉬면서 생각을 좀 해야겠습니다.”
나는 애써 담담하게 말하려 했지만 자꾸 뜨거운 기운이 명치끝무료 카지노 게임 솟구쳐 올라와 목소리가 높아졌다. 소장이 일순 당황한 듯 헛기침을 했다. 소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형을 찾아보라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지만 처음부터 휴가를 낼 작정은 아니었다. 주말에 형의 행적을 찾아도 충분했다. 하지만 한 번 우습게 보이면 영원히 만만하게 본다는 아버지의 말이 소장의 붉어진 얼굴을 보면서 떠올랐다. 어쩌면 만년 대리 꼬리표를 떼지 못한 것은 아내의 말처럼 내가 소장에게 살갑게 굴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 목소리를 분명하게 내지 못해서인 것 같았다. 나는 모바일로 휴가원을 내겠다고 말하고 급히 연구소장의 앞을 벗어났다.(00쪽)
“내가 만년 대리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호구 취급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 번 우습게 보이면 영원히 만만하게 본다는 아버지의 말”처럼 “내 목소리를 분명하게 내지 못해서”이다. 그러므로 「물어라 쉭」무료 카지노 게임 내가 사라져버린 형을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은 그동안 억눌려 있다가 “명치끝무료 카지노 게임 솟구쳐 올라”오는 내면의 목소리에 좀 더 진실해지기 위해서다. 이렇게 ‘나’가 내면의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제가 이 연구소에는 호구입니까?”라는 존재론적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존재에 대한 물음을 통해 ‘나’는 비로소 내면이라는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자기 물음을 통해 ‘나’의 진심을 알아가는 일이 존재의 내적 스텝이라고 한다면, 형의 행적을 찾아가는 과정무료 카지노 게임 “저돌적으로 달려들”고, “한번 물면 끝까지 놓지 않”는 킹처럼 살고 싶었던 형을 떠올리는 건 존재의 외적 스텝에 해당한다. 「물어라 쉭」은 ‘나’가 존재의 내적 스텝을 외적 스텝으로 전환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리하여 형의 스텝을 ‘나’의 삶과 포개어놓음으로써 형이 “가끔 나에게도 킹처럼 살라고 주문했”(00쪽)던 이유에 도달하게 된다. 그 결과 “물어라 쉭!”하고 “단호한 음성으로 절도 있게 명령을 내”리는 발화를 통해 킹처럼, 아니 킹으로 살고자 했던 형의 스텝을 ‘나’의 삶에 일치시키게 된다. 결국 ‘나’는 일명 ‘호구’무료 카지노 게임 한번 물면 놓지 않는 ‘킹’으로 존재론적 전환을 이루어낸 것이다.
「화장실에서 나를 보다」도 존재의 흔들림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발견해가는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나’는 화장실 좌변기에 앉아 있는 “나만의 시간 십분! 문득 내면에서 나를 향한 질문”을 던진다. 질문의 핵심은 “#그런데 나는?”(00쪽)이라는 존재론적 의문이다. 그렇다면 ‘나’가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이유는 뭘까? 그건 이 소설의 구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나’는 강 대리, 최 과장, 김 과장 등과 자본주의라는 세계를 공유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그들과 다른 세계를 감추고 있다. 그 세계는 인간의 내밀하고 은밀한 욕망을 배출하는 화장실이다. 그 화장실에서 ‘나’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눈여겨볼 것은 강 대리를 비롯한 회사 사람들의 상징성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나’의 내면에 은폐된 욕망을 대리하는 존재다. 강 대리를 “나와 같은 지방출신”(00쪽)으로 설정한 것은 강 대리를 통해 ‘나’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전략이다.(강 대리는 「골드」의 ‘가영 대리’와 정확하게 그 역할이 일치한다. 그리고 「골드」에서 가영 대리는 ‘나’의 욕망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내적 분신으로 기능한다.) 최 과장과 김 과장도 마찬가지다. 조직 내에서 승진을 둘러싼 그들의 경쟁 구도는 자본주의 세계를 살아가는 개인의 은폐된 욕망을 사물적으로 재현해낸다. “내가 자신의 가까운 추종자”(00쪽)이기를 원하는 김 과장이나, “직장 내에서는 누구나 추종하고 싶은 롤 모델”(00쪽)인 최 과장의 존재는 ‘나’의 내부에서 갈등하고 있는 욕망의 서로 다른 표정이다. 그러니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다. 선택할 수 없으면 그 선택의 순간에서 이탈하는 게 최선이다. 결국 “감사팀에 익명의 투서”(00쪽)를 함으로써 ‘나’는 자본주의 세계가 부추기는 욕망에서 해방되고자 한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그런데 나는?’이 제기했던 자기 존재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다. “욕망을 비운 나의 심벌이 몇 번 끄덕거리더니 이내 사그라졌다.”(00쪽)라고. 그러나 ‘나’의 욕망이 해소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좀 더 근본적인 지점, 즉 ‘나’의 내적 세계를 재현하는 강 대리, 최 과장 등의 욕망도 해소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해방인 “맘껏 싸질러라 프로젝트”(00쪽)를 성공시킬 수 있다. 이 마지막 작업을 위해 ‘나’는 다시 화장실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강 대리가 건넸던 ‘연극 초대권’을 조각조각 찢어버린다. 그 행위는 그동안의 삶이 자본주의 세계에서 벌어졌던 한 편의 연극이었던 것을 깨닫고, 더는 그러한 연극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될 것이다. 소설은 강 대리를 비롯하여 부장과 최 과장 모두를 화장실로 초대하겠다고 생각하면서 마무리된다.
이렇게 「화장실에서 나를 보다」는 ‘나’와 ‘나’의 외부 세계를 이중으로 설정한 후, 외부 세계야말로 ‘나’가 감추고 있는 은밀한 내면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러한 구성 방식은 김만성 소설에서 발견되는 특징적인 미학이다. 그의 소설은 ‘나’라는 화자의 존재론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심도 있게 포착해내는데, 그때 은폐되어 있던 ‘나’의 내면이 폭로되는 방식은 ‘나’를 소외시킨 자본주의 세계를 통해서다. 부연하자면, 자본주의 세계의 욕망과 개인적 윤리 사이에서 고뇌하는 ‘나’의 존재론적 질문이 ‘나’의 외부 세계―가영 대리나 강 대리처럼 ‘나’의 욕망을 대리하면서 자본주의 세계와 밀착해 있는 인물들―를 통해 해명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김만성의 소설집 �보스를 아십니까�는 자본주의라는 우리 시대의 음화(陰畫)를 폭로하면서 흔들리는 예외적 개인에게 윤리적 방향성을 제공하는 서사를 견고하게 구축해냈다. 그리고 이야기의 밀도나 자본주의적 세계 인식, 인물의 내적 고뇌를 재현하는 방식에서 보여준 작가의 역량은 우리 시대의 서사적 미덕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본주의 세계에 피랍된 문제적 개인을 발견해내는 통찰과 그런 개인의 내밀한 욕망을 윤리적 저울추로 가늠해낼 줄 아는 작가의 미의식도 믿음직스럽다. 이만하면 첫 소설집의 성취가 꽤 단단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저 깊고 아득한 창공 가득 펼쳐놓기를 기대하고 또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