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오늘은 갑자기 생각이 나네. 주말에 와. 맛있는 밥 차려줄게"
카지노 게임에게 전화가 왔다.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는 몇 번이나 "카지노 게임,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라고 되물었다. 평소 카지노 게임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전화를 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경상도 집안의 무언의 룰—전화는 꼭 용건이 있을 때만 거는 것—을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배워왔다. 게다가 카지노 게임 집은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다. 가까이 있어 언제든 갈 수 있는 것도 오히려 전화를 덜 하게 만든다.
얼마나 연락을 안 했으면, 가끔 카지노 게임는 "이 무정한 년아, 니는 우째 이리 정이 없노. 카지노 게임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걱정도 안 되나?" 하고 전화기 너머로 고함을 지르신다. 그러면 나는 늘 "카지노 게임 미안해요, 앞으로 자주 전화할게요"라고 말하고는 며칠 동안 매일 전화한다. 그 며칠이 지나면 다시 조용해진다.
카지노 게임가 전화를 거는 것은 무슨 일이 생겼을 때다. "너거 아부지가 바람이 난 것 같다"로 시작되는 전화를 받았을 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너거 아부지가 춤바람이 났다. 웬 여자랑 돌아다니는 걸 봤단다"는 말에 이어, 쉴 새 없이 아버지 욕을 쏟아내셨다. 카지노 게임 집에 찾아가면 상황은 더 심각했다. 나를 방에 앉혀놓고 몇 시간이고 아버지를 험담했다. 정작 아버지에겐 말 한마디 못하면서, 그 모든 분노를 나에게 퍼부었다.
카지노 게임와의 대화는 늘 두려움이었다. 그녀의 입을 통해 듣는 아버지 이야기는 나를 증오로 몰아넣었다. 어린 나는 카지노 게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고, 아버지가 형편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사실 부모님이 사이좋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는 좋은 기억은 말하지 않았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아버지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의 이미지는 모두 카지노 게임의 말로 형성됐다. 그렇게 내 안에 남은 건, 나쁜 아버지의 그림자뿐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카지노 게임의 말이 전부 진실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절반은 과장된 상상이었고, 절반은 감정이 만들어낸 각색된 이야기였다.
나의 학창 시절 내내 카지노 게임는 노름에 빠져 있었다. 살림은 제쳐두고 매일 하우스에 다녔다. 나름 타짜라고 말했지만, 그런 곳에서 돈을 벌 수는 없다. 돈을 따면 주변 사람들에게 한턱 쏘고, 잃으면 그 자리에서 빚을 지게 된다. 노름방에서는 끝없이 사채를 빌려준다. 카지노 게임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부모님의 싸움도 점점 격해졌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카지노 게임의 부재와 싸움 소리 속에 늘 불안했다.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그 돈은 고스란히 카지노 게임의 빚으로 흘러갔다. 첫 월급은 1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지만, 나는 매달 꼬박꼬박 적금을 부었다. 만기도 되기 전에 카지노 게임가 울며 찾아왔다. 빚쟁이들이 문 앞에까지 왔다며, 적금을 깨달라고 애원했다. 마지막일 거라 믿으며 은행에서 적금을 해약해 드렸다. 그러나 그게 시작이었다. 해마다 몇 번씩 반복된 노름빚 애원. 나는 적금뿐 아니라 대출까지 내며 카지노 게임의 빚을 갚았다. 카지노 게임에게서 오는 전화는 항상 울고 불며 절박하게 돈을 애걸하는 전화였다. 카지노 게임의 전화가 무서웠다.
몇 년간의 빚잔치가 끝난 후, 다시 카지노 게임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거 아부지가 춤바람이 났다"는 말로 시작된 전화였다. 긴 욕설을 듣고 나면, 나는 마치 온몸을 두드려 맞은 것처럼 녹초가 되었다. 너무 지긋지긋해서 어느 날은 이렇게 쏘아붙였다. "카지노 게임는 아버지를 아직도 사랑하나? 춤 좀 추면 어떻고, 바람 좀 나면 어때요?" 나는 카지노 게임의 욕받이였고 카지노 게임 목소리는 고통의 신호였다.
이제 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집에만 누워 계신다. 댄스클럽은커녕 외출도 어렵다. 카지노 게임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이제 와서 산책이라도 하라, 춤이라도 다시 추라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교댄스 덕분에 아버지는 몇 년간 건강을 유지했었다.
지금도 카지노 게임의 전화가 오면 나는 심장이 먼저 뛴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일까' 싶어 숨부터 죽인다. 사랑을 담은 전화가 어색하다. 카지노 게임는 자신이 하나뿐인 딸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왜 카지노 게임에게 자주 전화를 하지 않는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무정한 년이라 말할 뿐이다.
지난 주말, 카지노 게임 집에 갔다. 카지노 게임는 나를 꼭 안고 말했다. "딸아, 사랑한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고마웠다. 카지노 게임에게 받았던 고통과 불안이, 그 말 한마디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카지노 게임, 사랑해요." 카지노 게임를 꼭 안았다.
카지노 게임는 두릅, 응개나물, 머구잎, 미나리 등 다양한 봄나물로 한상을 차려 주셨다. 허리띠를 풀고 봄나물과 카지노 게임 밥을 마음껏 먹었다. 다 먹지 못한 반찬은 전부 싸주셨다. 카지노 게임는 음식을 통해 대화한다. 미안함도, 섭섭함도, 고마움도 다 음식에 담는다. 나물 하나하나에 카지노 게임의 마음이 무쳐져 있고, 생선 한 토막에도 세월이 절여져 있다. 배가 미어터질 만큼 카지노 게임의 사랑을 씹으며 카지노 게임를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한다.
그토록 피하고 싶던 카지노 게임의 전화는 사실, '보고 싶다'는 오래된 말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는 너무 늦게 그 말을 알아들었다. 이제야 카지노 게임가 아닌 나 자신도 조금씩 용서하게 되었다.
말보다 먼저 위로가 되는 건 늘 따뜻한 밥 한 끼였다.
씹고 삼키는 동안 오래된 상처는 조금씩 녹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해하게 된다.
그 모든 사랑이 서툴렀지만
그럼에도, 사랑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