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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가은 Apr 10. 2025

카지노 쿠폰 습격사건


고구마가 고딩 때의 일이다. 92년생 들은 이때부터 스마트폰을 만졌다. 그전에는 폴더폰을 썼고, 이후에는 슬라이드 폰이 나왔다. 학교에서는 전날 누가누가 더 예쁜 폰을 샀는지 매일 대결이 펼쳐졌다. 초콜릿 폰, 아이스크림폰, 롤리팝 폰.... 내가 마지막에 썼던 건 사이언의 오렌지 컬러폰2다. 학사반 기숙사 베개 아래에 숨겨둔 내 폰이 지구과학 선생님께 발각된 후로는 볼 수 없었다.


폰과 MP3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던 기기는 바로 PMP다. 사교육으로 인터넷 강의가 박 터지던 시절대부분의 인문계 고등학생들은 PMP를 갖고 있었다.학교 수업만으로는 인문계에서 좋은 내신을 받긴 어려웠고. 나 역시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시간에 메가스터디, 이투스, EBS 강의를 PMP로 들으며 공부하곤 했다. 사실 인터넷 강의는 내겐 없어선 안될 존재였다. 당시 반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차지할 수 있었던 건 8할이 인터넷 강의 덕분이었다. 큰 노력하지 않아도 귀와 뇌에 때려 박아주는 원리 설명과 트릭 섞인 심층 문제까지 술술 풀리게 알려주는 스타강사님들은 내 수험생활 메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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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쿠폰에 치열하던 어느 날.갑자기 전교에 <PMP 금지령이 내려졌다.사유는 학생들의 PMP에서 부적절한 콘텐츠 (성인 영화)가 발견되거나 야자 시간에 드라마 같은 콘텐츠를 본다는 이유에서였다. 석식을 먹고 나면 4시간 남짓을 인강쌤들 없이 혼자서 공부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설마 이렇게 수능까지...?' 진도는 나가야 하는데, 이러면 야자 시간이 끝나고 집에 간 11시부터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건 가뜩이나 잠을 쪼개며 공부하던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왜 소수의 인원 때문에 전교생 1,2,3학년이 다 피해를 봐야 하는 거지?'반 게시판에 붙은 공지문을 본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옆에서 이 공지를 본 친구도 이건 부당하다 말했다. 하지만 담임쌤은 어쩔 수 없다며 오늘부터 PMP는 금지야- 하고 쿨하게 뒤돌아갔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나는 친구랑 계획을 세웠다. 담임을 설득해 봤자 전교 공지사항을 바꿀 리 없을 터.우리는 카지노 쿠폰선생님을 설득하겠다는 당돌한 마음을 먹었다.친구는 같이 가줄 수는 있지만 말은 네가 하라고 했다. 나는 너무나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2교시가 끝난 후 우린 1층 계단 끝에 있는 교장실로 내려갔다. 한 번도 들어가 본 적도, 1:1로 대화해 본 적도 없는 학교 대빵 남자 어르신에게 17살짜리가 반기를 들러 문 앞에 선 것이다. 노크를 할 때는 심장이 살짝 쫄렸던 것 같다.


똑똑똑- 꽤나 힘차게 카지노 쿠폰 문을 두들겼다. 안에서 누구세요?라는 말소리에 나는 빼꼼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_ _) 저는 1학년 8년 고구마입니다. 카지노 쿠폰 선생님께 꼭 논의 드릴 사항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카지노 쿠폰 선생님은 흔쾌히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으라고 한다. 차가운 갈색 가죽 소파에, 카지노 쿠폰선생님을 중심으로 양측 소파에 친구와 나란히 앉았다.


어 그래. 무슨 일로 왔니?

아 저 선생님, 오늘 오전에 전교에 PMP 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

아 그거 알고 있단다.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아 그런데요. 선생님. 사실 PMP가 등장하게 된 건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개발된 거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 반에는 PMP로 공부하는 학생이 90%이고요. 그중 PMP로 다른 콘텐츠를 보는 친구는 거의 없습니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1~2명의 소수가 혼자서 조용히 드라마를 보지. 옆 친구의 면학 분위기를 해치면서 시끄럽게 하지도 않습니다. 감독관 선생님들도 계시고요.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PMP 기기의 주된 사용자가 '카지노 쿠폰를 더 열심히 하고자 하는, 조금이라도 쉬는 시간에 시간을 쪼개서 카지노 쿠폰를 더 하려고 하는, 야자 시간에도 선생님들의 교육을 받으려고 하는 학생들'이지 않습니까? 그 몇 명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이 학교에서 공부를 더 하고자 하는 많은 학생들이 공부 방식과 시간을 침해받고 있습니다.현재 가이드는 카지노 쿠폰를 열심히 하려는 학생들을 더 잘하게 만드는 방향이 아니라, 안 하려고 하는 아이들을 단순히 기기 제한으로 일시적인 조치만 취하는 방법입니다. 즉 상향 평준화 방법이 아니라 하향평준화 방법이라는 것이죠.드라마나 부적절한 콘텐츠를 보는 친구들이 기기 제한을 한다고 대단히 공부에 열을 올리지 않겠지만, 야자 시간에 시간을 쪼개어 전투적으로 공부하고 있던 친구들은 미리 예습이나 추가 학습을 못 하게 막으시는 겁니다. 그럼 그 친구들은 야자 시간에 제대로 된 공부를 못하게 되고 학교에서 바라는 '면학 분위기 조성으로 더 학습 성과가 좋은 학생'이 배출되는 것에 지장을 주게 되는 것이죠. PMP 기기 자체를 금지할 것이 아니라, 콘텐츠 가이드를 줌으로써 제재할 것은 하되 공부하고자 하는 친구들은 그대로 활용하여 더 공부하게끔 만드셔야 한다고 생각...(중략)


대충 이렇게 긴 시간 혼자 연설을 하며 카지노 쿠폰 선생님께 이 가이드가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설명했다. 카지노 쿠폰 선생님은 내 말을 끝까지 다 들으시고는"이 내용을 대본도 없이 이렇게 논리정연하게 말을 하는 학생이라면 확실히 카지노 쿠폰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겠군요"속으로 안도의 숨을 잠깐 내쉬자마자"그럼 고구마 학생의 성적을 한번 봐야겠네요"라고하더니 엄청나게 큰 전지에 빼곡하게 적힌 <전교생 중간고사 성적 결과표를 자리에서 꺼내 오셨다. 그때 약간 현실을 깨닫게 된 고구마였다.내 말에 설득력이 있으려면, 뭐든 잘하고 봐야 하는구나.그게 성적이든, 학점이든, 공모전 수상 결과든, 업무 성과든 말이다. "1학년 ... 8반... 고구마... 성적이... 흠" 손끝으로 쭈욱 성적을 따라 눈을 굴리던 카지노 쿠폰선생님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여셨다.


"그래. 정말 카지노 쿠폰를 꽤 하는 친구군요. PMP 금지는 하지 않을 테니 오늘부터 하던 대로 편하게 카지노 쿠폰하세요. 공지는 내일 바로 띄우겠습니다. 카지노 쿠폰 열심히 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신 외치고 그날 야자 시간에 늘 그랬던 대로 PMP로 수업을 듣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오른쪽 이어폰을 뺏어든다. 담임이다. "금지라고 했을 텐데~" 고구마는 당당하게 말했다. "저 오늘 카지노 쿠폰 선생님 찾아가서 PMP 금지 풀어달라고 얘기했어요. 공부하는 학생들은 그냥 봐도 된대요. 내일 공지 띄우신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얼탱이 없는 표정의 담임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최악이다.내가 데리고 있는 학급 학생이, 내 직장에서 나보다 상급자 중 최고 상급자를 찾아가 공지에 대한 건의사항을 했다는 거 아닌가. 담임 선생님은 기가 찰 노릇이다. "그.. 그래.." 하고 뒤돌아 가던 쌤의 모습이 생각난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다음 날 전교 학급 게시판에다시 공지사항이 붙었다. <PMP 허용 / 단, 학습 외의 콘텐츠 시청 금지.고구마는 씨익 웃는다. 제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17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스스로가 똑똑하다고 여기는, 그런 허무맹랑 고구마였다.


후일담으로 학교에서 학부모 행사가 있어서 엄마가 교장선생님과 잠시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고 했다.

"아 저 1학년 8반 고구마 엄마입니다." 라고 소개하자 카지노 쿠폰 선생님은

"똑똑한 아이를 자녀로 두셨더라고요." 라고 웃으며 얘기하셨다고 했다.


태생부터 싹수가 노란 고구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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