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고통으로만 남기지 않는 방법
춥고 하늘이 유독 새파란 1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안국역에서 내려 출구로 올라오니 바로 뺨이 차갑게 식는 게 느껴졌어요. 두텁고 긴 검은 패딩을 입고도 몸을 옹송그리며 걸었습니다. 5분쯤 걸었을까요? 안국역과 경복궁역 사이, 차량 진입이 통제된 도로에 종잡아 이삼백여명의 카지노 가입 쿠폰들이 앉아있는 게 보였어요. 저는 가방에서 준비해 간 등산매트를 꺼내 무리의 끝자락,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날, 그곳에서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추모 시민대회가 개최됐어요. 참사 이후 며칠간 마음이 괴롭던 차에 추모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카지노 가입 쿠폰들 사이에 어정쩡하게 앉아 진행자의 안내대로 묵념을 했어요. 묵념을 마치고 고개를 들었을 때, 푸르고 시린 하늘에 ‘한빛’이라는 단어가 펄럭였습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한빛센터)의 깃발이었어요.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당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당신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시간을 잠시 되감아야 합니다. 4년 전, 저는 책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을 쓰고 있었습니다. 한 방송사에서 당한 해고가 저를 책상 앞으로 이끌었어요. 그간 방송사에서 보고 들었던 불공정과 부조리가 몸속에 쌓여 출렁거렸습니다. 첫 글을 쓰며 어떤 느낌이 저를 사로잡았어요. 그건 제가 이 일들을 써내지 않고서는 생의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일종의 아득한 예감이었습니다.
저는 방송을 하며 겪었던 기쁨과 슬픔을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 편의 마침표는 다음 글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몇 달에 걸쳐 십수 편의 글을 썼어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글을 쓰고 자료를 조사할수록 저는 자꾸 작아졌습니다. 태산처럼 느껴졌던 저의 해고는 사실 엄청날 것도, 대수로울 것도 없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해고를 괴로워하며 글을 쓰던 바로 그 시간, A작가는 부당해고를 당한 뒤 거대한 방송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청주에서는 한 달 160만 원을 받던 14년 차 외주 PD 이재학 씨가 본인과 동료들의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당일 해고를 당한 뒤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들의 세계에 비하면 저는, 저의 세계는 너무나 협소하고 이기적이었습니다. 방송가엔 제 얘기보다 중요한 일들이 많았던 거예요.
카지노 가입 쿠폰과 한빛의 이야기 역시 그랬습니다. 카지노 가입 쿠폰의 아들인 한빛은 신입 드라마 PD였습니다. 꿈꾸던 일이었지만 방송 제작 현장은 그의 이상과 달랐습니다. 어제와 오늘의 경계가 불분명할 정도의 장시간 노동이 일상이었고, 촬영이 진행된 55일 동안 그가 쉰 날은 단 이틀에 불과했어요. 고강도, 장시간 노동보다 더 그를 힘들게 했던 건 비정규직 계약 해지 관련 업무였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해고된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선입금됐던 돈을 돌려받는 일은 한빛을 가장 괴롭게 했습니다. 월급 일부를 세월호, KTX 승무원 대책위등에 보낼 만큼 타자와 연대하는 그가 자기 일터에서는 노동자를 궁지로 내모는 역할을 해야 했으니까요. 결국 한빛은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한빛이 세상을 떠난 뒤 엄마인 카지노 가입 쿠폰은 애도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아들의, 형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진상 규명에 나섰습니다. 한빛의 사망을 둘러싼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소요됐어요. 결국 한빛이 세상을 떠나고 8개월이 지난 뒤, 방송사는 홈페이지에 사과의 글을 게시하고 제작 시스템 개선을 약속했습니다. 이와 함께 카지노 가입 쿠폰과 남편, 아들에게 위로금 지급 의사를 밝혔지만 카지노 가입 쿠폰과 가족들은 회사에 ‘역제안’을 했습니다. 방송 종사자들을 지원하는 재단을 만들자고. 그렇게 한빛센터가 세상에 나오게 됐어요.
그즈음 한빛과 카지노 가입 쿠폰의 삶이 저를 자꾸 불러 세웠습니다. 다시 한번, 저는 쓰기 시작했어요. 한빛에 대해, 카지노 가입 쿠폰에 대해, A작가에 대해. 제 이야기를 쓸 때보다 시간은 곱절이 들었고, 글의 완성도는 자신이 영 없었지만 그래도 썼습니다. 세상에 가느다란 질문이라도 던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그렇게 완성한 책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1쇄가 다 팔리지 않았지만, 카지노 가입 쿠폰에게는 고백하고 싶습니다. 그 책은 저의 긍지이자 동력이라고요.
책과 글이 인연이 되어 카지노 가입 쿠폰과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수년간 카지노 가입 쿠폰을 실제로 만나지는 못했어요.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이 연 전시회에서 지킴이를 한다는 카지노 가입 쿠폰을 만나고 싶어 전시회장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이미 다른 분이 자리를 지키고 계시더군요. 이름을 남길까 하다가 지레 머쓱해져 조용히 빠져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추모 시민대회에서 한빛센터의 깃발을 발견한 거예요. 어쩌면, 아니 확실히 카지노 가입 쿠폰이 거기에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카지노 가입 쿠폰은 가장 괴롭고 힘든 이들의 곁에 자리했으니까요. 산재 유가족의 지근거리에서, 방송 노동자의 곁에서 카지노 가입 쿠폰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태원 참사를 다룬 책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를 읽다가도 카지노 가입 쿠폰의 이름을 만났습니다.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 자주 들르던 카지노 가입 쿠폰을 유족 가운데 누군가 알아보았고, 그 인연으로 구술 기록단이 되어 책 집필에 참여했다고요. 카지노 가입 쿠폰다운 이야기입니다.
제주항공 참사 추모 시민대회의 가장 앞줄에는 세월호 천막, 이태원 천막, 그리고 한빛센터 깃발이 있었습니다. 먼저 아팠던 사람들이 추모의 가장 앞줄에 자리한 거예요. 참혹하게 슬픈 동시에 귀하게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고통은 고통으로만 남지 않습니다. 먼저 아팠던 이들이 내민 손은 슬퍼서 더 고귀합니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한빛센터 깃발 쪽으로 갔더니 단번에 당신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동그란 안경을 쓴, 짧은 머리의 당신을 저는 알아요. 당신 삶의 이야기가 궁금해 기사를 찾아본 적이 있거든요. 만난 적 없어도 잊을 수 없는 얼굴이 있는 법이잖아요. 조심스럽게 제 이름을 밝히자 당신은 활짝 저를 안아주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처음 만나는 자리가 참사 추모 대회라는 게 슬퍼 조금 울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은 반복되는 것일까요. 왜 앞서 아팠던 사람들이 제일 먼저 달려와 가장 늦게까지 남을까요. 왜 세상은 이렇게 참담하고도 고귀할까요. 당신은 그런 저를 보고 다시 한번, 아주 크게 안아주었지요. 길 위에서 당신에게 안겨 생각했습니다. 더 아픈 사람이 덜 아픈 사람을 안아주고 있다고요. 이건 정말이지, 잘 슬플 줄 아는 카지노 가입 쿠폰 포옹이라고요.
짧은 만남 며칠 뒤, 카지노 가입 쿠폰과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카지노 가입 쿠폰은 무안공항에 다녀 온 길이라고 했어요. 참사 현장에 다닐 때마다 아들인 한빛 생각이 나서 가슴이 미어지지만 그래도 간다고요. 날이 따스해지면 카지노 가입 쿠폰이 사는 도고에 훌쩍 다녀가라는 말도 보내주었지요.
자기 고통에 머무르지 않고 타자의 슬픔 속으로 걸어가는 당신 삶의 궤적은 제게 경탄입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더 알려지면 좋겠어요. 언제 어디서든 가장 먼저 ‘한빛 엄마’임을 밝히는 당신이지만, 이제 당신은 한빛 엄마이기만 한 건 아니에요. 아들 한빛의 엄마이자, 소외되고 아픈 사람들의 연대자 김혜영으로도 기억될 것입니다.
저는 그저 기회가 생기면 당신의 이야기를 이곳저곳에 많이 하려 합니다. 방송가에 한빛이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 카지노 가입 쿠폰 생은 이러했다고. 한빛이 세상을 떠난 뒤 당신이 생의 투사이자 슬픔의 연대인이 된 연유는 이렇다고. 그러니 김혜영이라는 사람이 쓰고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깊이 읽어달라고.
날이 풀리면 정말 도고에 가보고 싶네요. 카지노 가입 쿠폰 말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워 좋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카지노 가입 쿠폰과 마주 보고 앉아 웃을 수 있을 테니까요. 기억해 주세요. 다음에는 제가 카지노 가입 쿠폰을 꼭 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