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무시할 수 카지노 쿠폰 산술적인 시점”은 무엇일까? 금동현은 <하녀의 흥행비결을 두고서, 관객은 자신의 사회적 경험과 동일시할만한 구석을 발견하고 싶어한다는 점을 언급한다. 이를 따르면 <하녀는 세 가지 시점이 혼재되어 있어 대부분의 당시 관객이 공감할 수 있었으리라 추측 가능하다(p.100). 이 언급의 요점은 영화에 ‘서사’가 도입됨으로써 관객이 자신의 ‘사회적 경험’을 투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험이 곧 영화에서의 서사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란 서사와 ‘~하기’의 조합이기도 하므로, 일종의 ‘삶’이라 불러야 할까? 이건 영화에 관한 일반론에 불과하지만 <하녀에서의 언급은 조금 다른 듯하다. 금동현을 이를 “내화를 조직하는 내러티브적 시점의 다중화”(p.98)라고 말한다. <하녀는 세 개의 삶이 한 데 모인 양자 얽힘 비스름한 무언가이며, 다양한 것이 한데 어우러져 초점을 맺는 곳이 바로 스크린이었다.
<하녀에 관한 흥미로운 상상이 여기서 시작된다. 김기영은 자신의 영화를 두고서 “찢어서 속을 보여주는 것”이라거나 “인간의 본능을 해부하면 검은 피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p.90). 공교롭게도 이 언급은 하스미 시게히코의 책 이름인 『영화의 맨살』을 떠오르게 한다. 이를테면 하스미는 평소 영화에서 가능한 건 수평적 움직임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따라 영화에서 위에서 아래, 혹은 그 반대방향의 이동은 지양됐는데 실례로 사용될 경우에는 그만한 충격을 주곤 했다. 오즈 야스지로의 <바람 속의 암닭처럼 계단을 따라 굴러떨어지는 아내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하녀도 이와 비슷한 경우로 볼 수 있을 테다. 강덕구는 영화는 이런 ‘어색함’을 안정화하고 표현하고자 스스로 제도화되기를 택했다고 말한다. 마치 인류가 야만을 숨기고자 문명을 이루었듯, 영화는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머지 흐린 곳을 숨기려고 스크린을 창조했다.
이따금 영화는 숨길 수 없는 원초성을 드러낸다. 인간이 사회화의 결과물인 것만큼이나 영화 또한 제도화의 산물일 뿐이다. 김소영이 『근대의 원초경』에서 이 부분을 잘 지적하고 있다. 김소영은 조선영화의 초기를 연구하는 자신의 작업이 프로이트가 말하는 ‘원초’를 찾아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무의식을 알기 위해 충격 경험을 톺아본다는 이 말을 금동현 또한 인용한다. “김기영의 유령도 한국영화를 떠돌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들은 모두 우연이 아니다(p.17). 한국 사회가 근대화를 이륙하는 과정에서 저버린 것을 떠올려보자.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은 올림픽 개최 과정의 ‘여담’을 다룬다. 정부는 외국인이 보기에 좋지 않은 ‘그림’이라는 점을 근거삼아 속칭 ‘판자촌’ 철거를 집행했다. 전 세계의 시선이 올림픽 경기장에 집중됐지만, 흐린 눈을 뜨고 보면 이런저런 외화가 있다.
금동현에 따르면 <하녀는 이런 원초성을 표면에 드러낸다. “문으로 가두고 있던 <하녀의 세계를 밖으로 내보내기 위함”이라는 설명은 여러 외화를 한데 모아 맺음질해 만들어진 존재로서의 ‘하녀’에 의해 뒷받침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하녀는 여러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진 존재다. 하지만 영화가 숏을 통해 제4의 벽을 깨는 순간 관객은 영화를 흐린 눈으로 보게 된다. “자신이 가상 세계의 인물임을 깨닫는 동식의 모습”(p.88)이란, 카메라의 초점이 자신에서 외부로 옮겨감을 자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초점이 맺는 곳이 곧 가상세계다. 아즈마 히로키 또한 자신의 ‘정치’에 관해서 이런 말을 남긴 바 있다. “나는 오히려 정치가 정치일 수 있는 것은, 그 바깥에 정치가 아닌 영역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이렇게도 바꾸어 생각할 수 있다. “영화가 영화인 것은, 그 바깥에 영화가 아닌 영역이 있어서다.” 금동현이 말한 카메라의 기능은 아니라 그곳을 현실의 ‘매듭’으로 만드는 것이다.
금동현은 <하녀의 해소되지 않는 비밀을 알고 싶어 ‘외부’에 해당하는 다른 시나리오 판본 등을 참고했다고 밝힌다(p.19). 말하자면 “기억의 내면성을 극복하는 외부성”(p.75)이라고나 할까. <하녀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깊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김기영은 이 ‘필름적 현실’(하스미)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했다. 김기영은 ‘가상적 세계에 있음’을 인지한 동식처럼 관객이 어딘가로 빠져나가기를 바랐던 것 같다. 만약 카지노 쿠폰가 현실의 원초경이라면, 카지노 쿠폰의 맨살을 파헤치는 일에서 중요한 건 몸짓과 운동이다. 이를 따라 금동현은 <하녀의 카메라가 안과 밖을 구분함으로써 현실에 거리를 두는 일종의 ‘소격효과’가 있다고 언급한다. 이는 “따라 하지 마세요.”라는 교훈적인 결말로 이어지면서 일종의 ‘검열’을 염두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산다. 그러나 바꾸어 말해 이는 “카지노 쿠폰에 따라잡히지 말라는 소리”기도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