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이어져 있어, 취향 공동체를 만들며 살아가는 기쁨
어디서 만날까? 뭐 할까? 이런 걸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좋아하는 마음을 만나기란 쉽지 않아서 '취향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그 자랑을 해보려고 한다.
방학을 맞아 대학 때 친구 H와 J를 만났다. 어디서 무엇을 할까 하다가 비건 레스토랑, 편지지 가게, 엽서 가게, 독립서점엘 가기로 했다. 비건인 H와 함께하면서 만날 때마다 채식 식당을 찾아가는 맛이 있다. 이탈리아, 레바논, 그리스 식 한 쟁반에 담긴 푸짐한 점심을 식전주와 함께 즐겼다. 편지지 가게는 몇 달 전에 J가 '편지 가게 글월'이란 소설을 읽고 알려준 곳인데 기억하고 있다가 가보자고 제안했다. 작은 가게였지만 탐하는 눈빛으로 편지지와 카드를 꼼꼼히 살폈다. 근처에 있는 엽서 가게 '포셋'도 찾아갔다. 작가별로 전시된 엽서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찾아간 독립서점은 영감의 창고 같았다. 유혹에 흠뻑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대학 1학년 때 같은 과에서 만나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고 전공이 나뉘고, 같은 직업을 갖고, 만나다가 말다가 하면서 어느덧 우리의 시간은 차곡차곡 쌓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를 잃고 다시 세우고 채우는 시간을 함께했다. 그 시간들 탓이리라, 우리가 서로의 취향을 알고 비슷한 결로 흐르게 된 건. 비건 레스토랑에 가는 일을 신나 하고, 편지나 엽서와 관련된 가게라면 다들 마음에 들어 할 거라고, 이 독립서점을 방문하는 일 또한 기뻐할 거라는 확신.
우리 세 사람은 각자의 집에서 같은 그림의 일력을 매일 본다. H의 연말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일력에 쓰인 문장들로 우리들의 안부는 채워진다. 친구들과 만나고 오는 내 가방엔 친구들이 선물한 향 좋은 비누와 핸드크림이 담겼다. 받고 부담스러운 선물이 아니라 딱 마음에 드는 것을 나누는 마음. 우리의 취향은 어쩌면 이럴까. 이쯤 되면 취향 공동체라 불러도 되겠지.
생각해 보면 나이가 들수록 취향 공동체를 만들면서 살고 있다. 글쓰기 모임 주수희가 결성된 지 삼 년째이며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만나나 자주 서로를 그리워한다.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책 이야기며 우리에게 연예인인 작가들 이야기를 꽃피운다. 이 년째 이어지는 독서모임에서 올해에는 글 쓰고 책을 만들자고 한다. 내 열정에 불을 지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름이 정해진 모임만 취향 공동체는 아니다. 최근 한 달 안에 동료들에게 엽서를 네 장이나 받았다. 내 주변에 이리도 다정한 사람이 많았나 다시 알았다. 나 없는 곳에서 나를 생각해 미리 써왔을 엽서라 감사의 마음이 컸다. 친구들과 갔던 '포셋'은 다정한 이가 엽서를 주면서 '여기 아세요? 언니가 좋아할 거예요'하며 소개해준 장소였다. 과연 근사한 공간이었다. 의외의 시공간에서 받은 엽서는 감동을 주었다. 일부러 고른 것 같지는 않은 엽서 뒷면에 자잘한 글씨로 전하는 진심이라니. 내가 전에 전했던 엽서를 오랜만에 발견하고 쓰기 시작했다는 메시지도 있었는데, 내가 먼저 시작한 릴레이 같기도 해서 뿌듯했다. 내가 좋아하는 엽서나 편지 쓰기를, 내 주변의 다정한 이들이 내게 전해주니 내 취향의 마을이 커지는 기분.
좋아하는 노래가 생각난다.
모로코 차를 끓여 나눠 마시고
공원 옆 작은 수풀 속의 고양이 사진도 찍고
느리게 걷는 동안 꽃은 얼마나 자라나
함박 웃고 있는 얼굴로 만나게 되는 토요일
네가 기쁘면 나도 기뻐져
우린 무료 카지노 게임
무료 카지노 게임 만화영화에 나오는 듯
우리들은 이어져 있어
저기를 봐, 마음에 파랑물들이는 스카이 라인
함께 지금 여기에 있어
언제 어디 누구 그런 건 잊어버리고
함께 지금 여기에 있어
네 어깨는 참 따스해
@ 이상은, <라임그린 시폰스카프, <<Romantopia
'우린 무료 카지노 게임 무료 카지노 게임 만화영화에 나오는 듯 우리들은 이어져 있어' 하는 부분이 들을 때마다 인상적이었던 노래다. 같은 만화 안에서는 등장인물들의 그림체가 비슷하곤 하니 정말 그렇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로 닮아가는 것일까? 나는 어떤 그림체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걸까. 모두들 느리게 걷고, 고양이를 발견하고, 같은 눈망울을 가진, 마주 보면 눈이 안 보이도록 함박 웃는 이들, 무척이나 다정한 이들일 거다. 눈빛만으로도 당신을 좋아합니다, 응원합니다, 하는 진심들을 전하는.
취향 공동체라고 여겨지는 친구들, 동료들을 떠올리니 그들과 비슷한 마음결로 주파수가 맞추어진 요건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겠다. 시간을 함께 보내며 페르소나 말고 나다운 나를 꺼내보여도 될지 알아보았고, 그렇게 안전한 이 사람들하고는 우리 바깥을 겉도는 이야기가 아닌 속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J와 H와 나는 이번에 자식 교육 얘기라든가 학교 동료나 관리자 얘기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목소리들을 꺼내어 놓고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이런 대화는 주수희 안에서 자주, 독서모임 안에서도 종종 이루어지는 일이다. 엽서를 주고받은 동료들과도 마찬가지여서 속 깊은 위로와 응원이 건네어졌다.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는 사람들.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느껴진 서로의 취향은 어느새 번져 서로의 색이 더해진 게 아닐까. 고유한 취향의 색깔이 얹혀 고운 수채화가 그려짐과 동시에 너와 나의 우주가 만나 우리의 세계 또한 커졌으리라. 이 우주의 팽창은 우정의 다른 이름. 우리의 세계는 *Romantopia.
*Romantopia 이상은 12집(2005) 제목에서 따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