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의 내리사랑 치사랑.
돌아가신 나의 외할머니는 3살 때 홍역으로 잃은 첫딸, 그러니까 나의 큰 이모를제외하고 7남매를 남편 없이 홀로 키워내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을 정도다,그래서였을까?할머니는 억척스러움을 넘어 지독하셨다.
7남매를 모두 키워 서울로 상경시킨 외할머니는 큰삼촌이 직접 지었다는 전라도 깡촌 그 집에 혼자 남아계셨다. 남은 7남매 중 유일한 딸이었던 우리 엄마.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가 보고 싶어 기별도 없이 완행열차를 타고 시골집으로 내려가셨다.
카지노 게임는 그때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휑한 마당에 어느덧 시커멓게 어둠이 드리워져, 녹슨 대문은 마치누구를 기다리는 것처럼 활짝 열려 있었고그처럼열린 방문 사이로 불도 켜지지 않은 동굴 같은 방구석에 팔을 베고 등을 보인 채 누워 계신 할머니가 보였다고 했다.
그 모습이 너무 쓸쓸하고 가슴이 미어져서, 카지노 게임는 “엄마, 나 왔어.” 대신 이렇게 맺지도 못할 투정을 건넸다.
“카지노 게임... 왜 불도 안 켜고 그러고 있어...”
더는 말을 잇지 못하셨다. 목이 메어서.
선잠이 들었던 할머니 역시 연락도 없이 컴컴한 밤에 서울에서 내려온 딸 목소리를 듣고퍼뜩 일어나 돌아보시고는 이렇게 물으셨다고 한다.
"오메! 이 시간에 뭔 일이여? 니 뭔 일 있냐?."
모녀는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걱정했다. 카지노 게임는 보고 싶었던 할머니에게 달려가 안기는 대신 손에쥔 검은 비닐봉지를 떨구고 눈물도 떨구었다.
할머니도 반가움 보다 연락도 없이 찾아온 딸의 목소리를 듣고 염려가 앞서 맨발로 뛰어나와 엄마를 끌어안았다.
늘 무심했던 삼촌들을 탓하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지만, 나는 그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엄마와 딸의 사랑은 그렇게 유난스럽고 지독히도 가까운 거라고.
그날로 카지노 게임는 외할머니를 서울로 모셔왔다. 말이 모셔온 거지...
요즘 세대들은 모르겠지만 80년대에는 깡촌에서 서울의 꿈을 품고 무작정 상경한 이들이서울 구석구석에빼곡히 도 모여들었다.
첫째가 서울에 올라와 자리를 잡으면 둘째를,둘째도 자리를 잡으면 셋째를,그러다 온 가족이 고향을 등지고 이름만 서울인, 산을 깎아 만든 민둥산 끝자락 어디쯤, 슬레이트 지붕과 시멘트 가벽으로 뚝딱뚝딱 만든 집들이 엉켜있는 그런 곳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려 모두들 열심이었던 거다.
그곳에서 할머니를 반겼던 건 서울의 꿈도 자식들 품도 아니었다. 맞벌이하는 아들 딸손주 새끼들이 손가락만 빨고 줄줄이 앉아할머니만 보고 있던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카지노 게임는 할머니를 괜히 모시고 왔다고 후회가 된다 하셨다. 내 기억에도 할머니는 잠을 자는 시간 외엔 손과 발이 쉬는걸 본적이 없다.
나는 2대째 같은 말을 듣고 자랐다.
"지발시로 애미 팔자 물려받지 마라.."
지금 생각해 보면 입에 달고 사셨던 그 팔자.. 얼마나 지독히도 외롭고 괴로우셨으면.
얼마 전에 카지노 게임가 거금 오십만 원을 입금하셨다.
"엄마 이거 무슨 돈이야?."
"어제가 네 음력생일이더라."
“에이 뭐야, 언제 생일 챙겼다고. 이 돈 진짜 안 돌려받으면나 쓸데없는 반지나 팔찌 산다?”
그렇게 말하면 다시 받으실 줄 알았다.
"그 돈으로 귓볼수술이나 좀 해라. 엄마 닮아 칼귀라 그렇게 돈이 새고 복이 없나. 그리 낳아줘서 카지노 게임가 미안하다."
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목이 메어서..
그저 마음으로만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엄마 닮아서 이렇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잘살고 있는데, 엄마 딸이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데.. 카지노 게임가 내 엄마여서 얼마나 든든한데.. '
하고 싶은 말은 끝도 없었지만, 외할머니와 카지노 게임가 그랬듯 우리도 마음을주고받는 데에 서툴렀다.
그저 “알겠어.”라고만 했다.
지금 들려줄 이야기는, 아직 할머니가 우리를 위해 밥을 차려주실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이 있으셨던 조금 오래전 이야기다.
그 염병할 동네는 할머니에겐 제2의 고향이었겠지만, 나에겐 제1의 고향이었다. 그 동네엔여사촌 둘, 남사촌 둘, 그 외에도 나와 비슷한 또래들이 몰려 살았고, 그중 나는 유독 할머니를 잘 따랐다. 할머니만 보면 그렇게끌어안고입술에 뽀뽀를 해댔다.
그러나 그렇게바지런했던 그분도 작은 방에서 겨우 몸을 가눌 정도로 쇠약해지셨고 할머니집에서는 퀘퀘한 냄새가 쌓여갔다. 쿰쿰하고 주름지고, 그런 할머니에게나는 예전만큼부벼대며 뽀뽀하지 못했다.
그저오며 가며 '만나면 반갑다고, 헤어질 땐 또 만나요 뽀뽀뽀' 라며 볼뽀뽀를 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그때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웃으셨다.
"아직도 뽀뽀하는 건 너밖에 없다. 내 새끼"
그래도 할머니의 진짜 새끼는 역시 우리 엄마였다. 내가 엄마 속을 뒤집을 때면, 할머니는 세상에 모든신박한 욕을 총동원해 나에게 퍼부으셨다. 밥을 차려주실 때도 카지노 게임가 좋아하는 반찬을 챙기셨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엄마와 나는 시장에서 할머니가 좋아할 만한 과일을 사 들고 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는 늘 그렇듯 밥상을 먼저 차리셨다.
"엄마! 수희 국 없으면 밥 안 먹는 거 몰라? 국이 없으면 어떡해?."
조금 격앙된 카지노 게임의 목소리. 할머니가 어쩌지? 하시니카지노 게임는 찬물에 김을 풀고 참기름과 간장으로 간을 한 김국을 금방 만들어 주셨다.
그런데 밥이 콩밥이었다.
"할미 나 콩은 안 먹어."
"그럼 빼놔 내가 먹게."
그렇게 콩을 하나씩 할머니 밥 위에 얹다가, 어느 한술에 콩이 들어갔던 모양이다.
“에이, 할미 이거 내 입에서 나온 거니까 먹지 마.”
하고는 콩을 밥상에 뱉어 올려놨다.
그러자 우리 욕쟁이 할머니가 불쑥 튀어나왔다.
"으미 이 아까 분 것을! 처먹지도 않을 거 뱉어부냐? 이 썩을 년아!."
난 할머니의 욕이 익숙했기 때문에 방실방실 웃으며 그저 긁적거렸다 그런데 그때.
-탁!-
카지노 게임가젓가락을 밥상에 세게 내려놓으셨다. 거의 패대기치듯이. 그리고 씩씩대며 할머니에게 대들었다.
"엄마! 우리 딸이 콩을 못 먹을 수도 있지 무슨 그렇게 험한 욕을 해?."
그때 철없던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우와~ 우리 엄마 너무 멋지다. 날 위해 할머니한테까지 저렇게 말하다니.’
스므살을 훌쩍 넘긴 딸이반찬투정을 해도 마냥 내편인 카지노 게임가 그렇게좋았다. 그러나 그때 할머니가 낮게 중얼거리신 소리를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랑께 내리사랑이 치사랑보다 위인겨. 키워놔 봤자 소용없당께."
나는 엄마의 사랑을 안다. 카지노 게임는 뼈와 살과 피를 나눠 자식을 낳는다.그런 자식은 엄마의 일부분이다. 나도 그런 엄마의 사랑을 그냥 저절로 알았다.
자식이 없는 나는 치사랑 밖에 모른다. 내 온 우주가 엄마고 내 인생이 엄마이며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엄마이다. 세상 어떤 말로도 엄마를 향한 내 사랑을 다 담을 수 없다.있다면 단 한 줄
- 카지노 게임가 죽으면 나도 죽어.-
감동도 없고아름답지도 않은 나의 담백한 진심이다.
카지노 게임 없는 세상에선 살 수 없을 거 같다.
아! 돌아오는 엄마 목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염병하네."
그만큼 나와 카지노 게임는 아직 탯줄이 끊어지지 않은 것처럼 애타게 서로를 염려하고 사랑한다.
열 달 동안 카지노 게임 뱃속에서 무전취식을 해서 그런가, 아니면 태어나면서 들은 가장 큰 소리가 카지노 게임의 찢어지는 비명소리여서 그런 걸까?
여하튼 모녀간의 사랑은 특별하다. 강력한 유대감이 존재한다.
내 우주를 낳아주신 우리 할미에게-
절대로 노동이란 존재하지 않는 평안한 그곳에서 쉬고 계신 우리 할미! 손녀가, 할미 딸한테, 할미가 못주고 간 사랑 많이 줄게. 걱정하지 말고 그 좋은 세상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말고 푹 쉬어! 뽀뽀!
작가의 말-참고로 귓볼에 필러를 넣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저렴하게. 본인은 아주 만족하는 바입니다.
※시술 정보는 댓글로 문의주세용~안알랴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