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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수희 Apr 24. 2025

내가 누구게? 40

누가 미쳤게?

가영은 소득 없이 서울로돌아오는 길에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수련과의 첫 만남을 상기한다.

8년 전, 해괴하고도섬뜩한 굿판이 벌어진 그다음 날밤-

임가영은 자신의 지도교수 이자, 법정 보호자였던 강미영교수앞에서 그녀가 건넨 메모를 한참 들여다보다 겨우 입을 연다.


근데 교수님 저는 상담경력이….”


“그러니까 더더욱. 너도 알잖아. 학위 따려면 어차피 상담 경력은 필수라는 거. 내담자 집으로 직접 찾아가줘야겠어. 아주 드문 경우도 아니라서 특별할 없고,딱 하나만 명심하고 가.내담자는어린 시절사고 당일을 포함해, 그전 2년간의 기억을 잃었어. 역행성 기억상실이지. 굳이 무의식 어쩌고 하면서 끔찍한 기억을 되살려줄필요는 없겠지?.”


“사고요?.”


“사고 라 봐야지. 가해자가 실종 돼버렸으니까, 내담자는 고작 여덟 살이었고. 그 나이에 사랑을 알았겠어? 사고였겠지.”


손에쥔 메모에 적힌 '아동성폭행 피해자'라는 단어가 가영의 눈으로부터 심장까지 꿰뚫었다. 그 분노는 천천히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목젖까지말려 올라왔다.


‘사고라니? 성폭행을 사고라고 말하다니!

범죄라고 말해야지 강교수!.’

가영은 강교수의 이 얼굴이 익숙하다. 그녀 앞에서 만은 방심하고 꺼내놓는 차가운 도자기 같은 얼굴.. 번들거리고 허연 그 얼굴을 볼 때마다깨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가영은 살아남기 위해 강교수 곁을 택했다. 이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할 것이다.


반면 강교수는 가영을 언제든 구워삶을 수 있는 마시멜로우 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보드랍고 찢어지기 쉽고 언제 녹아버릴지 모르는….

늘 그런 나약한 존재로 가영을 바라봐왔다.

그러나 가영은 마시멜로우처럼 달콤하고 끈적하게 강교수에게 붙어있다 칼로리 폭탄을 던질 것이다.

때가 되면.


“교수님이 시키시면 해야죠. 언제 가면 될까요?.”

그제야 가영을 향해 입술만 쭉 찢어 미소를 덤으로 주고 명령하는 강교수.

“지금 바로. 여기서 택시로 십 분이면 가니까 지금 빨리 가봐.”


“네? 지금 자정이 넘었는데.”

“그러니까 빨리, 몽유병인가 봐. 증상이 나타났을 때 가서 살펴보는 게 제일 낫지 않겠어?.”


“아니…. 그렇게 심각한 상황에 왜 저를?.”


강교수는 아무렇지 않은 듯자기 할 일을 하며 준비된 대사를 늘어놓고 있다.


“그쪽 부모가 그걸 원해 정신과 치료받길 원하지 않고 상담 정도로 기록된다면 괜찮데. 이후 정신과로 넘기는 일 없도록 유념하고. 그런 판단은 기록하지 말고 너 혼자 하고 말아. 무슨말인지 알겠지? 다녀와. 빨리”


가영이 나가고 강교수는 흡족한 듯 웃었다.최창근 형사에게서 받은 전화는 그녀를 잠시 고민에 빠지게 했다. 그의 제안은 한 여학생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감시, 보고 하며 때가 되면 그녀를 아주 위험한 정신병자로 몰고 가는 개인 상담자의 역할이었다. 그에 따른 대가는 상당하였지만 강교수는 바보가 아니었다. 평범한 여고생을 가스라이팅 하는 것 치고는 너무 큰 액수였다.


'떡은 내가 먹을 테니 이 위험한 외줄은 네가 타라 가영아.'


****

문일은 언젠가 딸이 몽유병 증세가 있는 것 같다고 둘도 없는 파트너 최창근 형사에게 털어놨었다.

이사 오고부터 집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도어렵게꺼냈다.


집을 넘겨줬던 최형사는자기 탓도 있다며유명하고 영험하다는서천무당을 소개해 줬고. 그 굿판에서 딸이 실성할 지경에 이르렀다.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고 집에 돌아오고 딸은 멍하니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밤이 되고 잠든 줄 알았던 딸이 무서우리만치 이상해졌다. 문일은 일단 급한 대로 또 최 형사에게 강교수를 소개받았다. 그러나 문을 열고 새벽에 집을 찾아온 건 앳된 여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눈빛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단단하고 총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딸 방에서 나온 학생은 자신을 소개하고. 딸의 증상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청소년 시기의 대뇌피질은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수련이 같은 경우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밀려 들어온 거 같아요.

스스로 평소의 지녔던 감정들을 가지치기하는 정상적인 청소년기 뇌 활동입니다. 중2병이니, 우리 애가 갑자기 달라졌어요. 그런 얘기들이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다른 사람처럼 보일 수 있어요. 절대 빙의 현상 같은 건 아니에요.

한 번의 상담으로 나아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틀 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당당하게 말을 마치고 그 집을 나선 가영은 새벽 밤거리에 홀로 서서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쭈뼛 서고 온몸에 소름이 돋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수련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가영은 들을 수 있었다. 입안에서 혀를 튕기는 끌! 하는 익숙한 소리.


헉!가영은 심장이조여와숨도 쉬지 못하고 침대에 걸터앉아 자기를 올려다보는 한 소녀의 얼굴을 보고 저도 모르게 주저앉을 뻔했다.

하관을 비틀며 능글맞은 눈으로 가영의 온몸을 훑고 있는 여학생! 그러나 그 모습은 너무나 익숙했다.

‘임가영 정신 차려! 환시 환각. 눈앞에 내담자에게 집중해!.’


가영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씽긋 웃어 보이며 책상의자를 가져다 수련 앞에 앉았다.


“김수련이라고 들었어. 내 이름은..”


“딸내미 이름도 모를까 봐?.”


쏘아보는 수련의 검은 눈동자가 흐리멍덩한 잿빛 눈동자로 변했다.

심지어 가래 낀 쇳소리마저 자기가 죽인 의붓아버지와똑같았다.

가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입가에 미소를 다시 어색하나마 갖다 붙였다.


“그게 무슨 뜻일까?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들리네?.”


가영의 차분한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가영아, 그동안 비가 그립지 않든?.”


분명 처음 보는 소녀가 자기 이름을 불렀다. 죽은 그 남자의 말투로..환청까지 들려온 적은 없었다.가끔 그림자처럼 나타나는 그의 형태는 손으로 휘적거려 버리고 말정도로 별거 아닌 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이다.


수련의 눈동자가 빠른 속도로 흔들렸다. 눈알이 마치 고장 난 슬롯머신처럼 좌우 위아래로 미친 듯이 굴러다녔다.

가영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힘겹게 들어 올린 두 손으로 자기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으윽.. 저리 가! 가! 꺼져! 으윽.. 미안해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 사이로 눈물을 후두둑 쏟고 있었다 그러다 곧 그 눈물로 젖은 얼굴을 들어가영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다시금 제자리를 되찾은 깊고 고요한 검은 홍채가 맺혀 있었다.

마치 커다란 호수처럼, 짙고도 맑은 눈동자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가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서툴지만 조심스러운 손길로 앞에 있던 크리넥스 휴지를 통째로 수련에게 내밀었다.


“괜찮아, 울고 싶은 만큼 울어. 얘기는 그다음에 하자. 오늘 못하면 나중에 해도 돼.”


가영은 사실 그저빨리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손에 쥔 개인기록 지와 펜을 그러쥔 두 손에 땀이 흥건했다.

훌쩍이는 소리와 째깍거리는 소리만이 이들이 있는 작은 방을 규칙적으로 울리고 있었다.

체감상 삼십 분은 지난 거 같았지만 시계는 겨우 십 분이 지났을 뿐이다.


째깍째깍-수련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됐다는 걸 가영은 뒤늦게 깨달았다.


잠시 텅 빈 개인 기록지를 바라보다방심하고눈을 들어보니 수련이 아니었다. 그놈이 다시 나타났다!


어느새 둥글게 말았던 다리를 쩍 벌리고.비꼬듯 한쪽 눈썹을 추어올리며,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까딱대다하관을 비틀어대는여학생의 목에서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기분 나쁠 정도로 선명하고 날카롭게 들렸다.

가영이 그 모습을 유심히 보는 사이 수련이 혀를 입천장에 튕기며 다시 끌-하는 소리를 냈다.

순식간에 가영의 몸은 언제라도 튀어 나갈 준비를 하고 문 앞에 붙었다.


방금 전 만해도 부서질 것처럼 연약했던 소녀가 지금은 완전 그놈이 되어있다. 그놈이다!.


가영이 억지로 만들어낸 찌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지 않은 수련에게 묻는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제 다 울었어? 금방 씩씩해졌네. 이제야 인사할 수 있겠는데? 나는 가영이라고 해. 수련이가 자기소개해볼까?.”


가영이 처음 상담하는 것 치고는 꽤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수련을 리드했다. 그러나 수련의 다음 행동은 정말로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터진 입이라고 나더러 소개를 하라? 지애비도 못 알아보는 이런 멍청한 년을 봤나. 끌-.”

가영의몸이 덜덜 떨려왔다.


“배은망덕한 년 평생 고아로 뒤졌을 년을먹여주고 재워주고 길러줬더니제사 한 번을 안 지내? 품이 그립지 않았어?.”


작은 소녀의 능글거리는 표정을 보고 겁에 질려 하마터면 문 손잡이를 돌려 도망칠 뻔했다.

가영이 문 손잡이를 붙잡고 덜덜 떨고 있을 때 수련이 자기 머리통을 세게 내리치더니다시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아.. 제발.. 요.. 이러지 마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수련이 빌 듯이 울며불며 머리를 떨구고 훌쩍인다. 째깍째깍.. 다시 시계 소리만 들린다는 것을 또 가영이 알았을 때.

수련의 얼굴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침을 꼴깍 삼키고 겨우 수련을 바라봤다.

그제야 수련이 사슴 같은 눈망울로 가영을 바라보며 말한다.


“언니.. 저 좀 도와주세요. 제가 그런 게 아니에요 미안해요..”


가영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수련을 끌어안았다.


“응 괜찮아. 수련아.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질 거야 나도!.’


현재-그때를 회상하며 운전 중인 임가영


이번엔 전화벨이 울린다. 힐긋 쳐다보고는 피식 웃어버리고 운전에 집중하는 임가영. 발신인은 강미영교수였다.


맞아 카지노 게임 사이트와 나는 닮았어. 근데 강교수 당신이 모르는 것도 닮아있어.

나도 정상은 아니거든.

그 남자만 사라지면 될 줄 알았어. 그런데 그 남자가 죽고 나자 세상에 모든 남자가 그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어. 나에게 남자는 그 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거지. 또 다른 악마를 상대할 이유가 없잖아?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죽은 그 남자를 현실로 데려왔어.

그땐 진짜 스스로 정신병원에 걸어 들어가고 싶었지. 하지만 수련이 스스로 그를 밀어내는 거 같아 보였어. 싸워서 이겨내는 거 같았지.

그 악마 같은 놈을 쫓아내는 기분이었어. 그런 생각을 하는 나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도 정상은 아니지.

그래 우리 둘 다. 미쳤어.

나는 더 여성스럽게 보이기 위해 남들 앞에선 늘 하이힐을 신어. 하이힐은 여성성의 상징이지. 여자를 사랑하는 건 병이 아니지만 죽은 사람이 눈앞에 자꾸 나타난다는 건 환시. 망상? 그래서 나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 처럼 평범한 사람인 척 살려고 노력 중이야. 그리고 강교수 당신이 모르는 게 또 하나 있어.

나 역시 당신을 이용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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