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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운 Feb 15. 2025

무료 카지노 게임 알게 된 기쁨과 슬픔

<현재의 역사가 미셸 무료 카지노 게임와 <미셸 무료 카지노 게임

지난 12월 3일 이후 잔잔한 우울감에 휩싸여있다. 만사 의욕이 없다. 그 전에는, 그 전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전에는, 기본적으로 평균 이상의 활력을 갖고 지내는 편이었다. 물론 간혹 무기력해 지기도 하고, 때때로 우울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금새 회복했고, 푹 자고 일어나면, 맛있는 걸 먹고 나면, 다시 활력이 충전 되곤 했다. 그런데, 계엄날 밤 몸을 일으키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히 방전된 활력이 두달 반이 넘어가도록 도무지 충전되지 않는다. 기분이 가라앉은 채로 일어나고, 먹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뭘 먹어도 소화가 잘 안된다. 잠들기 전 책을 보던 습관이 겨우 자리를 잡으려던 차였는데 망했다. 밤마다 다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다 잠든다. 악순환이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즈음 미셸 무료 카지노 게임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푸코는 근래 내가 접한 그 어떤 텍스트들보다 흥미로웠고, 푸코의 말에 따라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일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희열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책에서 눈을 떼고 세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다시 한번 무기력에 빠졌다. 그리고 푸코를 읽으면 무기력은 두배가 되었다. 모든 게 뒤엉켜 서서히 회의주의자가 되어 가는 중이다. 별로 익숙하지 않은 잔잔한 우울감과 평생 함께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 전으로 돌아가겠냐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가장 낯선 곳을 여행하며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만큼이나 푸코를 읽는 일은 나에게 짜릿한 경험이니까. 한번 눈을 뜨고 그 맛을 본 이상 돌아갈 수는 없다. 새로운 세상이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푸코에 대한 글을 써야 할 지, 책에 대한 독후감을 써야 할 지, 실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사실 어디까지가 푸코이고 어디까지가 사라 밀스의 말인 지도 완전히 구분하지 못한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 지에 대한 의심이다. 이제 겨우 푸코에 입문한 사람으로서, 일부분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클텐데 이런 채로 독후감을 써도 될까. 그럼에도 약간 무모한 심정으로 지금 이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나중에 이 글을 다시 읽기 위해서이다. 무료 카지노 게임 찍먹한 지금의 나는 무료 카지노 게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어떻게 오해하고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이건 지금에만 쓸 수 있는 글 일지도 모른다. (꾸준히 공부하겠다는 결심이다)



처음 읽은 푸코 책은 프레데릭 그로가 쓴 ‘미셸 무료 카지노 게임’로, 푸코가 출간한 책과 강연을 따라가며 푸코의 사상을 연대기로 정리한 교과서 같은 책이다. 처음 읽을 땐 문장 하나하나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쉬울 거라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문맹이 된 기분으로 덤불 속을 헤매다 드문드문 눈에 들어오는 문장에 밑줄을 쳤고. 한 챕터를 읽은 후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었다. 이 반복으로 알게 된 것은 읽고 읽고 다시 읽다보면 아무튼 조금은 이해하게 되고 내 것이 한 줌 생긴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독서는 나에게 여가였는데 이제는 노동이 되었고, 이 머리가 뻐근한 기분이 썩 좋았다. 책 한 권이 밑줄 투성이가 되자, 뿌듯한 마음마저 든다. 미셸 무료 카지노 게임의 매력에 조금 빠져들고 있을 때 즈음 ‘현재의 역사가 미셸 무료 카지노 게임’를 읽게 되었다.



‘현재의 역사가 미셸 무료 카지노 게임’는 놀랍게도 비교적 술술 읽혔다. 내가 푸코를 예습해서인지! 아니면, 사라 밀스의 글이 어렵지 않게 쓰여졌는 지. 아마 둘다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 책이 부드럽게 잘 읽힌 이유는, 사라 밀스가 나의 입장과 비슷한 방향에 서서 복잡하고 난해한 푸코를 내가 이해하고 싶은 방식으로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피인용율 1위라는 푸코. 어쩌면 나도 세상을 해석하는데, 조만간 푸코를 인용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 이 책이 아니었다면 푸코를 이해하기를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미셸 무료 카지노 게임’를 먼저 읽고 ‘현재의 역사가 미셸 무료 카지노 게임’를 읽은 건 꽤 잘한 선택 같다.


무료 카지노 게임 접하게 된 후, 내가 있는 어항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우리는 어항 속에 있고, 결코 어항 밖에서 우리를 볼 순 없다. 내가 어떤 어항 속에 있는 지 결코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어항 속에 있다는 걸 안다는 것. 어항을 깨부술 순 없지만, 어항에 대해 생각하는 일만으로도, 세상을 좀더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보게 된다. 글쓰기 수업을 듣고, 무료 카지노 게임 공부하기로 한 건, 내가 보는 세상이 지루해서 였다. 그 세상 안에서 내가 쓴 글이 지겨워서였다. 지금까지 봤던 세상을 다시 본다. 지루하게 지나온 세상이 온통 낯설다. 의심스럽다. 이게 요즘 나의 유일한 기쁨이지만 동시에 커다란 슬픔이다. 그래, 그렇다면 이 다음에 어디로 가야할 지 잘 모르겠다. 무료 카지노 게임 계속 공부하다보면 알게 될까.


계엄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그 이야기로 끝을 맺자면, 탄핵이 인용되고, 정권이 교체되면 좋은 세상이 올 거라고 믿었다. 예전의 나는 그랬다. 하지만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것 같다. 미국에선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고, 온갖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에 사인을 한다. 세계 곳곳에서 이와 흡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투표로 대통령 하나를 바꾼다고 해서 이 시대가 더 좋아질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 힘이 빠진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손을 놓고 있겠단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무튼 희망을 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은 딱 하나뿐인 것 같다. 공부. 그게 희망이고, 절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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