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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희 Apr 05. 2025

한낮에 한 한낱 카지노 게임

갑자기 갑자기 그냥 그런 게 있다고 치고 들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왜 혹은 어떻게는 따질 수 없고 그냥 그런 규칙이 카지노 게임 거다. 그리고 그 규칙은 이러하다.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오로지 편지로만 소통할 수 있다. 한 번 보내진 편지는 정확히 일주일 후에 받아 볼 수 있다(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그러하다). 그리고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둘은 만날 수 없다. 서로 얼굴을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으며,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오로지 편지로만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이 규칙은 바뀌지 않는다. 평생. 이것이 규칙이다.

대신, 상대를 고를 수 카지노 게임 선택권이 내게 주어진다.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를 편지 파트너로 선택할 것인가?


말이 잘 통하는 사람? 생각과 감정의 결이 너무 비슷해서 이야기가 끊기지 않고 어떤 주제로도 몇 시간씩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기만 하면 힘들 것 같고 유머코드가 잘 맞아야겠다. 살짝 어이없는 개그에도 쉽게 웃어주는 사람으로. 일단 잘 들어주는 사람이어야 할 테고, 반대로 나도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게 흥미로울 만큼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서로 반말을 쓰는게 좋을까 아니면 계속해서 존대를 이어가는게 더 좋을까? 그냥 단순히 일상을 공유하는 편지를 넘어 긴밀한 대화까지도 편안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편지는 짧으면 서너 통, 길어도 열 통을 넘어가기 힘들지 않을까? 하지만 규칙이 그러하듯 평생 얼굴을 보지 못해도 괜찮은 사람이어야 한다. 평생 이야기를 이어갈 만큼 애정이 있지만 만나지 못해도 괜찮은 사람. 두 사람은 만날 수 없음에 애틋해질까 아니면 정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밑바닥까지 보여줄 수 있는 분신 같은 존재가 될까?


일요일 오후 두 시를 조금 넘긴 시간, 햇살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바깥 날씨.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다 뻗어나간 꽤나 진지하게 빠져든 카지노 게임. 도대체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살짝 무거워진 눈꺼풀과 반쯤 풀린 눈동자의 초점과 함께 논리도 목적도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 어딘가에서 떠오른 카지노 게임 하나. 문득 정신을 차리고 차라리 낮잠을 자고 그 꿈에 대해서 쓰는 편이 나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애초에 도달할 곳이 없었던 정말 '한낱' 같은 '한낮' 카지노 게임으로 몇십 분을 날려버릴 수 있었던 이 한가로움과 따분함속 고요함이 파고드는 오후의 틈. 그 순간, 문득 <상실의 시대에서 좋아하는 대목 하나가 떠올랐다.


‘세상엔 기차 시간표를 조사하는 게 좋아서 온종일 발착 시간표를 들여다보는 사람이 카지노 게임가 하면, 성냥개비를 이어서 길이 1미터나 되는 배 모형을 만드는 사람도 있지. 그런 것처럼 세상에 나오코를 이해하려는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도 이상할 게 없잖아?’


그래, 누구는 말도 안 되는 카지노 게임으로 혼자 골똘히 고민에 빠지는 사람도 있는 거지, 그래도 이상할 건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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