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감기와 같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이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우울증도 적절한 치료와 대응을 통해 완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울증이 단순히 개인의 부주의나 환경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것이라고 오해할 여지가 있다. 사실 우울증은 개인적 문제를 넘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현상이다. 이에 대한 두 철학자의 이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우울증의 원인을 개인과 사회 경제적 시스템의 불일치에서 찾는다. 전통적인 정신분석학은 욕망을 결핍과 충동으로 해석한다. 하지만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을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힘으로 본다. 욕망은 단순한 심리적 충동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시스템과 연결되어 지속적으로 변형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들뢰즈와 가타리는 인간을"욕망하는 기계(desiring-machines)"로 설명한다. 우리는 욕망을 특정한목적을 지닌 개인의 내부에서 작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욕망은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기계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를 비유하면 사회라는 큰 기계와 개인이라는 작은 기계는 서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상호 작용한다. 큰 기계는작은 기계의 작동에 영향을 끼친다. 사회라는 기계는 인간이라는 기계의 작동에 영향을 끼친다. 작은 기계인 인간의 욕망은 큰 기계인 사회와 상호연결되어 작동한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기계는 지속적인 소비 욕망을 조장한다. 그런데 소비욕망은 특정한 방식으로만 허용된다.예를 들어, 최신 스마트폰이 출시될 때마다 사람들은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새로운 기능과 디자인을 욕망하게 된다. 하지만 이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경제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개인들은 소비욕망의 충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이는 개인의 소득 창출과 연결된다.이 과정에서 소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이는 우울감과 무력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이 지속되면 무력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이는 자존감 저하와 심리적 피로를 야기한다. 결국 개인은 자신이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불충분하다고 여기게 되며, 이 과정에서 불안과 우울증이 심화될 수 있다. 특히,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성공과 소비가 삶의 필수 요소로 강조될수록, 이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욱 심한 박탈감을 느끼게 되며, 이는 정신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프랑코 베라르디는 현대 사회의 정보 과부하와 지속적인 경쟁이 우울증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현대인은 스마트폰, 인터넷, 소셜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정보를 접한다. 개인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부담을 가지게 된다.또한, 소셜 미디어에서는 타인의 성공적인 삶이 강조된다. 그리고 성공적인 삶과 자신의 현실과 비교하게 된다. 이러한 비교는 자존감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자신이 끊임없이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을 조성한다.
또한, 현대 노동 환경에서는 효율성과 성과가 강조된다. 개인은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관리해야 하는 압박을 받는다. 이런 환경 속에서 개인은 자기 착취를 강화하게 된다. 정신적 탈진과 무기력감을 경험하며, 이는 결국 우울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디지털 경제와 소셜 미디어는 개인을 끊임없는 비교와 자기 관리의 대상으로 만들며, 감정적 피로와 무력감을 초래한다. 현대인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결국 정신적 탈진(burnout)과 우울증에 직면하게 된다.
한병철의 『피로사회』에서 그는 현대 사회가 더 이상 외부 권력에 의해 억압받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분석한다. 그는 이를 '성과사회'라고 정의하며, 현대인은 외부의 강압이 아니라 자기 동기부여와 자기계발을 통해 끊임없이 생산성을 높이려 한다. 이는 자유로운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개인이 자기 자신을 감독하고 평가하는 새로운 형태의 억압이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 끊임없이 업무를 확장하거나, 소셜 미디어에서 더 나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자신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개인은 스스로를 착취하게 된다. 이러한 자기 착취는 피로와 소진(burnout)을 초래하며, 결국 무력감과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울증을 단순한 개인적 질병으로 보는 것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간과하는 것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이 억압될 때 우울증이 발생한다고 분석했으며, 베라르디는 정보 과부하와 경쟁 사회가 우울을 심화시킨다고 보았다. 이는 우울증을 개인의 심리적 문제로 축소해서는 안 되며, 사회적·경제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함을 시사한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치료와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사회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욕망이 조작되는 방식, 생산성이 강요되는 현실, 감정이 노동의 일부가 된 현대 사회의 구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우울증을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대응하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