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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란도나츠 Jan 17. 2025

카지노 게임 무서워 개산책 못 하랴


두 달 전, 남편을 따라 경기도의 소도시로 이사 왔다. 지은 지 3년인가 4년 된 신식 아파트를 사택으로 받았다. (회세권:회사 근처, 스세권:스타벅스 근처 등등의 엄청난 후보들을 뚫고 신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려 한 달을 기다려 받은 집이다.) 이 집의 자랑을 하자면, 그간 내가 살아본 아파트 중에 내부 상태가 가장 좋다. 새시가 새거라 외풍이 들지 않고, 무려 팬트리가 있으며, 비상 탈출 장소와 에어컨 실외기실이 있다. 그리고 앞에 천이 흐르고, 아파트에서 바로 이어지는 카지노 게임로가 두 개 있다. (아파트에서 바로 이어지는 인도 카지노 게임로 하나, 강변 카지노 게임로 하나가 있다. 다 좋은데 강변 카지노 게임로는 아주 멀리 돌아서 내려가야 한다. 애들처럼 경사를 오르내리려는 게 아니라면)


남편은 이 카지노 게임로를 발견하고 아주 마음에 든다며 사진까지 찍어 보내고, 미리 보러 갔다가 그 카지노 게임로와 이어진 공원까지 다 돌아보고 왔다. 개산책이 아주 좋겠다며. (그날 나는 세종시의 호수공원을 돌고 있었다.)


이사 오고 일주일째, 나는 강아지를 끌고 산책을 하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강아지가 킁킁대며 다가가는 검고 작은 물체가 다가가서는 안 될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개똥이다.


처음엔 길냥이의 똥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 이건 너무 컸다. 그리고 그날부터 내게는 카지노 게임이 매일 몇 개씩 보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어떤 젊은 남성이 큰 개를 끌고 다니는 모습을 보았는데, 개가 똥을 누는데 치우지 않고 너무나 태연히 가는 걸 발견했다. 세상에. 다음날 공원에서 이 사람을 마주쳤는데 나를 보자 황급히 길을 건너가 버렸다. 이 정도면 자신의 잘못을 아는 거다.


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카지노 게임을 주우려고 준비작업(비닐봉지를 손에 끼워놓았다)을 마쳤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카지노 게임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이다. 보통 카지노 게임을 안 치우느냐며 생사람을 잡는 것이라 "치우는데요"라고 쏘아붙였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의 용건은 그게 아니었다.


"나무 밑에 쌌는데 카지노 게임을 왜 치워"


라며 그 할아버지는 역정을 냈다. 혹시, 나무 주인이세요? 살다 살다 이제는 별 걸로 다 혼이 난다 싶었다.


이제 한석 달째 이곳에 사니 개똥을 피해야 한다는 것에는 하도 익숙해져서 내가 베테랑이 된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다 얼마 전 큰 눈이 왔다. 강아지를 데리고 문제의 그 공원에 갔더니 염화칼슘이 하도 뿌려져 있어 눈이 덜 쌓인 잔디밭을 골라 걸었다. 그러다 강아지가 똥을 누길래 따라 들어갔다가 발을 내디뎠는데 아뿔싸. 오른쪽 발 옆으로 개똥이 보였다. 조금 자라난 손톱만큼 묻었는데도 그 찝찝함은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닦아내도 어디로 가지를 않는다.


뭐, 그래도 이게 이것보다는 나았다. 남편에게 얼마 전에 본 걸 얘기했다. 카지노 게임로에 철쭉 심으려 쌓아놓는 돌벽에 큼지막한 개똥이 공중부양하고 있다고. 남편은 허허, 하며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나는 그 말을 하고선 잊었는데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자꾸 봐야지 했는데 지나간 뒤에 기억이 나는 건 왜였을까) 몇 주 뒤에 남편이 그 실물을 봤다고 한다.(이 정도면 개똥으로 접착제를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 연구했으면 좋겠다.) 하도 보기 흉해 그 비위 약한 양반이 그걸 직접 치웠다는데 찡그린 채 개똥을 치울 그 장면이 자꾸 상상돼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카지노 게임

그래도 나는 카지노 게임을 뚫고 한다, 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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