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콰토 타소와 카지노 쿠폰
(위) 한스 마카르트가 그린 타소와 레오노라, 베를린 옛 국립 미술관
페라라에서 투옥되었다가 탈출해 전국을 떠돌던 시절 토르콰토 타소의 모습은 마치 오디세우스의 방랑을 떠올리게 한다. 소렌토에 가서 누이를 찾았을 때 혹시 자신을 쫓아낼 것을 걱정해 먼저 변장하고 자신의 부고를 알렸다. 누이가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을 보고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재능을 의탁할 곳을 찾아 우르비노까지 갔다가 다시 500㎞를 걸어 사보이아의 토리노에 이르렀을 때 세관은 남루한 그의 입국을 막았다. 마침 그곳에 있던 친구 안젤로 인제녜리(Angelo Ingegneri)가 그를 알아보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베네치아 태생의 인제녜리는 <해방된 예루살렘의 제목을 정해준 시인이자 극장 감독이었다. 그는 비첸차 테아트로 올림피코가 개관할 때 연출을 맡았다. 또 사보이아 공작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의 사위는 에스테 집안의 필리포 1세 후작이었다.
후작의 환대를 받은 타소는 1578년 특별한 자리에 참석카지노 쿠폰. 당시 사보이아는 샹베리에서 토리노로 수도를 옮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던 제프루아 드 샤르니(Geoffroi de Charny)는 그리스도가 최후에 입었던 성의(聖衣, Sindone di Torino)를 손에 얻었는데, 그의 손녀가 사보이아로 시집올 때 지참금으로 샹베리에 가져왔다. 마침 타소가 도착한 때에 공작은 성의를 토리노로 옮겨오게 된다. 당시 혹독한 흑사병이 인근 밀라노를 휩쓸었다. 밀라노 대주교인 카를로 보로메오 추기경은 솔선수범해 환자를 돌보고 자선사업을 일으켰다. 그는 전염병 퇴치를 위해 샹베리까지(350㎞) 걸어서 성의를 경배하러 가기로 카지노 쿠폰. 이를 들은 공작이 성의를 토리노로 옮겨오면서 추기경의 여정은 닷새로 줄어들었다.
공작과 추기경의 만남에 배석한 타소가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추기경은 타소에 앞서 파도바 대학에서 공부했고 음악에 남다른 조예가 있었다. 그는 삼촌인 비오 4세 교황 아래 로마에서 가장 중요한 성직자로 활동하며 트렌토에서 열리던 공의회를 마무리카지노 쿠폰(1563년). 곧 보로메오 추기경은 개신교의 확산에 대한 가톨릭교회 내부의 개혁을 이끈 주역이었다.
특히 그는 어지러운 세속음악이 교회에 파고드는 것을 매우 경계했다. 그러면서도 복잡한 다성음악을 폐지하고 그레고리오 성가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막고 팔레스트리나의 다성음악을 옹호하고 장려한 사람이었다. 그가 팔레스트리나에게 <교황 마르첼리 미사를 주문했다는 설은 진위가 분분하지만, 적어도 밀라노의 빈첸초 루포에게 <제4선법 미사 Missa quarti toni를 쓰도록 했음은 분명하다. 이런 가톨릭 반동종교개혁의 노력으로 밀라노엔 17세기 중반까지 오페라가 자리 잡지 못한다. 오늘날 라 스칼라가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한편 보로메오 추기경이 타소와 만날 당시, 그의 죽은 누이동생의 열 살 먹은 조카가 로마 신학교에서 교육받고 있었다. 베노사 가문의 차남의 카를로 카지노 쿠폰는 존경받던 삼촌 보로메오 추기경이 세상을 떠난 1584년 인생의 전환을 맞는다. 원래 베노사 대공 작위는 형 루이지가 물려받고 카를로는 성직에 임할 예정이었지만, 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1586년, 사촌 돈나 마리아 다발로스와의 결혼은 그의 삶을 폭풍으로 몰아간다. 절세 미녀였던 마리아는 이미 카지노 쿠폰와 결혼 전에 두 차례 혼인한 적이 있었다. 두 번 모두 남편이 신혼의 단꿈을 너무 즐기다가 죽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마리아는 아름다웠다. 네 살 어린 카지노 쿠폰가 고모의 딸인 사촌과 결혼할 맘을 먹은 이유도 그녀의 출산 능력 때문이었다. 둘 사이에도 곧 아들이 태어났지만, 행복한 신혼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리아는 파브리치오 카라파 공작과 내연관계를 맺었고, 이를 의심한 그의 학대가 시작되었다. 결국 1590년 10월 16일 밤 결혼은 파국을 맞는다. 그날 일어난 사건은 몇 가지 증언으로 법원 조사에 남았다. 그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한밤중에 대공(카지노 쿠폰)은 무장한 친구와 친척 한 무리와 궁전으로 돌아와 공비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앞에는 반쯤 잠든 충성스러운 하녀 라우라 스칼라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가, 고함을 듣고 소리치려 했으나 대공의 위협에 죽은 듯이 물러났다. 대공은 방문을 차고 들어가, 격분한 상태로 계속 수색하다가 침대에서 나체로 공작과 있던 아내를 발견했다. 이 광경을 보고 놀란 가엾은 안드리아 공작(파브리치오 카라파)은 비몽사몽 중에 칼에 찔렸습니다.”
또 다른 증언은 다음과 같다.
“대공의 하인 바르도토가 마당으로 내려갔을 때, 대문이 열린 것을 보고 매우 놀라워하며 문을 닫았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카를로에게 가져갔다. 그가 옷을 입던 카를로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대공은 사냥 간다고 대답했다. 바르도토는 사냥할 시간이 아니라고 했지만, 카를로는 ‘어떤 사냥인지 보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바르도토가 명령대로 두 개의 횃불을 켜자 카를로는 침대 아래에서 단검과 소총을 꺼내어 들고 비밀 계단을 통해 마리아 다발로스의 방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안드리아 공작과 마리아라는 창녀를 죽이겠다'라고 말했다. 올라가면서 바르도토는 알라바르다와 소총을 든 세 명의 남자를 보았고, 두 발의 총성에 이은 여러 모욕적인 행동이 있었다. 세 명의 젊은이는 나갔고, 그 뒤 카를로 카지노 쿠폰가 손에 피를 묻히고 돌아왔다. 그는 즉시 중개자인 라우라가 어디 있는지 물었지만, 이미 떠나고 없었다. 바르도토와 카지노 쿠폰는 침실로 돌아왔고, 후자는 그곳에서 죽어가는 두 사람을 제거했다.”
남편의 야간 사냥 사이에 밀회를 나누는 아내와 정부의 이야기는 낯익다. <천일야화와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대표적이다. 소설에나 나옴 직한 이날 밤의 학살은 당시 법으로 합당한 처사였다. 부정을 저지른 배우자와 상대방의 살인은 죄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누구나 눈치챘는데 남편만 모른 추문을 모두가 암묵적으로 즐긴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 사건은 여러 가지 엽기를 더했다. 지나가던 카푸친 수도승이 마리아의 시신을 욕보였다거나, 공작의 시신이 부패하도록 거리에 방치되었다거나, 성에 칩거한 카지노 쿠폰가 인근 숲을 전부 베어버렸다(<맥베스를 연상케 한다)는 설 따위였다. 카지노 쿠폰의 나이 겨우 스물다섯 때의 일이다.
이 무렵 토르콰토 타소는 피렌체에서 페르디난도 데 메디치 대공의 환대를 받았고, 로마에서 계관시인의 대관식을 치를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타소를 로마로 부른 교황 우르바노 7세가 선출 13일 만에 사망하면서 대관식의 꿈은 좌절되었다. 타소는 카지노 쿠폰의 살인 사건을 세간과는 다른 눈으로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소네트로 마리아와 파브리치오의 사랑을 위로했다.
마법처럼 아름답고 뛰어난 영혼들이여
죽음 속에서 쓰라린 순교를 겪었도다
죽음, 사랑, 운명, 하늘이 그대들을 결합하게 카지노 쿠폰면
그 무엇도 그대들을 나누거나 떼어놓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이미 세 번째 원에서 불타오르는
불멸의 광채와 결합한 빛이나 단순한 불꽃들이여
온화한 욕망으로 인해
고요한 별들이 더욱 밝게 빛나네
오히려 그대들의 죄로 하늘은 장식되었도다
만약 정말로 두 궁정 연인에게 죄가 있다면 말이네
사랑의 굴욕으로 인해 더 아름다워졌도다!
슬픈 탄식으로 그대들의 그릇된 사랑을 비난하는 이라면
차라리 낮을 가져와 떠도는 별들을 약하게 만드는
태양을 비난할지니!
20세기 들어 마리아 다발로스의 집안에 작곡가 프란체스코 다발로스(Francesco d’Avalos, 1930-2014)가 태어났다. 그는 음악 드라마 <마리아 디 베노사 Maria di Venosa(1992)로 먼 조상의 비운을 되짚었다. 다발로스가 직접 쓴 대본에서 마리아는 음악에 미친 괴팍한 남편의 학대를 못 이기다가 파브리치오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평소 마리아에게 욕정을 품던 카를로의 삼촌 줄리오 제수알도가 그녀를 염탐하다가 조카에게 불륜을 제보한다. <마리아 디 베노사는 아내를 죽인 제수알도가 괴로워하며 꿈에서 아내의 환영을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드라마는 후기 낭만주의와 표현주의풍의 관현악이 주를 이루며, 사이사이로 제수알도의 마드리갈과 르네상스 춤곡이 삽입되어 희대의 사건을 현대로 불러온다. 두 여성 독창이 마지막에 타소의 소네트를 부르며 망자를 위로하면 다시 제수알도의 회상으로 돌아온다. 그는 아내의 장례식을 보는 환상 끝에 숨을 거둔다. 무대 뒤에서 빛으로 가득한 환상적인 정원이 나타나고, 마리아가 하얀 옷을 입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등장해, 제수알도를 ‘열정 passion’이 없는 ‘시간을 초월한 timeless’ 세계로 인도한다.
살인 사건이 있고 4년 뒤인 1593년 카를로 제수알도는 페라라의 레오노라 데스테와 재혼했다. 레오노라는 타소가 흠모했던 알폰소 2세의 여동생과 이름이 같은 그들의 조카였다. 신부가 신랑보다 다섯 살 많았고, 결혼 적령기도 넘긴 32세였음에도 여러 정략적 이유와 페라라가 음악 중심지라는 점이 제수알도를 만족시켰기에 혼사는 추진력을 얻었다. 당시 페라라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가는 루차스코 루차스키(Luzzasco Luzzaschi)였다.
알폰소 2세는 음악을 좋아하던 세 번째 아내 마르게리타 곤차가 데스테 부인을 기쁘게 해 주려고 ‘일 콘체르토 델레 다메 Il concerto delle dame’, 곧 ‘여성 합주단’을 곁에 두었다. 라우라 페페라라, 리비아 다르코, 안나 과리니로 이뤄진 콘체르토 델레 다메는 신분도 높았고, 아름다운 용모와 뛰어난 노래 실력을 갖췄다. 타소는 이들을 위해 시를 썼고 루차스키는 수준 높은 마드리갈을 작곡했다. 자신의 바람처럼 제수알도도 페라라에서 두 권의 마드리갈 선집을 출판했다. 여러 궁전이 페라라의 예를 따랐다.
그러나 사랑 없는 결혼은 또다시 오래가지 못했다. 카지노 쿠폰가 베노사로 돌아간 뒤에도 레오노라는 괴팍한 남편을 따라가지 않다가 마지못해 합류했지만 끔찍한 대우를 받았다. 1600년,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네 살의 나이로 죽자 부부 관계는 파탄에 이르렀다. 카지노 쿠폰는 레오노라의 근친상간을 의심했다. 또한 아들의 죽음을 살인에 대한 벌로 여기고 소년들을 모아 자신에게 채찍질하게 하는 속죄 행위를 반복했다.
1610년 삼촌 카를로 보로메오 추기경이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카지노 쿠폰는 유품을 베노사로 모시려 애쓴 끝에, 사촌인 페데리코 보로메오 추기경의 배려로 성인의 샌들을 얻었다. 그는 샌들에 입을 맞추고 성심으로 보존을 약속했다. 조반니 발두치에게 의뢰한 최후의 심판 제단화에는 카지노 쿠폰와 레오노라가 기도하는 가운데, 보로메오 추기경이 두 사람을 보호하고, 여러 성인이 그의 속죄를 중재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런 노력도 소용없이 1613년에는 마리아와 사이에 낳았던 첫아들 에마누엘레가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충격을 받은 카지노 쿠폰도 18일 뒤에 세상을 떠나면서 가문의 대는 끊겼다. 광기와 재능이 번득였던 천재 작곡가의 쓸쓸한 말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