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 카지노 게임의 기준은 모호하고, 함부로 남발할수록 편안해지는 건 왜일까.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나는 스스로가 꽤 객관적이라 착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희대의 명언 "카지노 게임워할만 해야 카지노 게임워하지."를 고수해왔다.
"전에는 내가 카지노 게임하다고 하면, 너도 카지노 게임해 하면서 서로 풀었는데, 지금은 아니야."
그 전 남자친구는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럴 때면 나는 벽이 되었다.
"아니, 카지노 게임할 사람은 오빤데, 내가 왜 카지노 게임해? 뭘 잘못했는지 몰라?"
그 때 우리는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느라 버스를 잘못타고, 서로의 탓만 하다 맛없는 치킨을 먹고 밍숭맹숭한 하루를 보낸 기억이 난다.
이젠 그때 누가 더 잘못했고, 진정한 가해자가 누구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뿐더러, 중요하지 않아졌다.
그 시간을 겪은 지금의 나는 사소한 사건(물론 그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생긴 서운함은 사소하지 않지)으로 인해 갈등을 촉발시키는 건 나에게 손해라는 생각이다.
나는 누군가의 잘못에는 굉장히 예민하고, 조금만 상대방이 잘못해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꼬집었다.
"약속했잖아. 안 그러기로."
"했지. 근데 나도 너무 힘들어."
언제나 그랬듯 나에게 결정된 결말은 실망이었다. 이 결말을 반전시킬 수 있는 혁신은 무엇일까. 언제나 실망으로 끝나는 사랑은 지겹다.
이 짝꿍을 만나고, 나의 신랄한 비판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 생겼다. 아무리 지적을 해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알겠어, 알겠어. 카지노 게임해. 내가 왜 그랬을까~"
나의 화가 무색할만큼 그는 카지노 게임하다는 말을 자주한다.
그럼 나는 어떻게 대응하냐.
"으이구."
혼자 성질을 내뱉고 끝이다.
근데, 이 방법,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이렇게 쉽게 풀릴 화였나. 쉽게 풀릴 화였다. 그저 그의 사과 한 마디면 되는 거였는데. 그렇게 진정으로 원하는 걸 알게 되었다. 쉽지 않은 사과를 쉽게 하는 연습을 하자고.
"카지노 게임해, 카지노 게임해. 내가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속상하네."
"그래, 그럴 수 있지. 내가 좀 더 신경쓸 걸."
사실 속마음은 '나도 사정이 있었어. 이해해줘.' 지만, 지금은 그 말보다 더 나은 말이 '카지노 게임해'라는 말이라는 걸 알 것 같다. 그 말이야 나중에 하면 되지(까먹게 되버린다면 그것도 나름의 방법이겠지)
미안하다는 말이 이렇게 가벼운 것이었나. 그 바람에 하늘을 찌르던 고마움의 기준도, 카지노 게임의 기준도 모두 낮아져버렸다.
"자, 여기 숟가락."
"응, 카지노 게임워."
숟가락을 주기만해도 고맙고,
"(Zzzzz)"
"카지노 게임워, 짝꿍아."
"응?(다시 잠에 든다.)"
코를 골며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는 것조차 고맙다.
그저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진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 카지노 게임의 정체는 무엇일까. 고민에 잠긴다.
고맙다, 카지노 게임하다는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모든 걸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없다. 말은 말일 뿐이니까. 그렇지만, 우리 사이의 존중이라는 가치가 자라는 게 느껴진다. 어떤 부정적인 마음도, 상대방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도, 보기 싫은 표정도 자랄 수 있는 땅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랑으로 비옥한 땅이 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