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lwriting Mar 26. 2025

카지노 쿠폰 닮은 일본 여자

- 지역전문가 시절 쓴 소설


계곡물이 파괴적으로 흘렀다. 거센 물살에 돌덩이가 부딪치고 깨지며 굴러갔다. 비가 그쳤지만 물기로 발판이 미끈거려 양손으로 줄을 잡고 조심조심 걸었다. 흔들 다리를 건너자 등산로가 나타났다. 낙엽이 켜켜이 쌓인 길에서 사체 썩어가는 냄새가 풍겼다.


앞서 걷는 카지노 쿠폰가 보였다. 주홍빛 스웨터에 청치마, 산길과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 눈길을 끌었다. 등산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빠른 걸음으로 나를 지나쳐 갔다. 카지노 쿠폰에게 호기심이 동한 모양새였다. 옆에서 따라 걸으며 치근덕댔다. 갑자기 카지노 쿠폰에게서 터져 나온 말이 나를 놀라게 했다. 일본말이 서툰 나도 알아들을 수 있는 욕이었다.


졸지에 바보가 된 남자가 앞을 막아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 남자는 폭탄의 뇌관을 건드린 셈이었다.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 카지노 쿠폰가 카지노 쿠폰처럼 사납게 얼굴을 할퀴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한 남자가 얼굴을 가리고 쩔쩔매다 뒤로 넘어지자 발길질을 해댔다. 일행이 그를 구출했다. 말리는 남자에게도 그녀는 사나운 손톱을 휘둘렀다. 참다못한 남자가 주먹으로 배를 세게 때렸지만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았다. 분을 못 참고 발길질을 하다 치마에 발이 걸려 넘어져서도 남자 다리를 붙잡고 이빨로 물려했다. 치마와 윗옷이 올라가 속옷과 살이 드러났다. 간신히 그녀를 떨쳐낸 남자들이 욕을 하며 달아났다.


일어선 카지노 쿠폰가 옷매무새를 추스르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산길을 올랐다. 남자들을 만나 다시 시비가 붙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카지노 쿠폰는 정상으로 가지 않고 억새가 물결처럼 흔들리는 고원 쪽을 향했다.


“정대리, 같이 가자. 시간 날 때 골프 배워둬야 해.”

비즈니스에서 골프는 필수라며 선배들이 권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회사원으로 생활하다 일본 지역전문가로 파견 나온 나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 노력했다. 자매결연을 맺은 신이치그룹 기숙사에서 숙식하며 온종일 일본어를 배웠다. 휴일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산속에 처박혀 있는 기숙사에서 5일을 보낸 선배들은 주말 아침이면 렌터카에 골프채를 싣고 밖으로 나갔지만 뒤늦게 지역전문가로 합류한 나는 밀린 공부를 하려고 기숙사에 남았다. 식사는 산길을 내려가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관광지에서 사서 먹었다. 풀장과 놀이기구를 갖춘 유원지 주위로 식당 몇 개와 기념품 상회가 있는 조그만 관광지 마을이었다.


유원지 앞에 못 보던 파라솔이 펼쳐져 있어서 가봤더니 카지노 쿠폰가 그려진 간판에 ‘아이스크리무’라고 적혀있었다. 가게로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려던 나는 깜짝 놀랐다. 진열장 뒤에 산길에서 사납게 싸우던 그녀가 서 있었다. 보통 일본 가게에 가면 ‘이랏샤이마세’를 하며 반기는데 물끄러미 쳐다만 봤다. 당황해서인지 쉬운 일본어도 생각나지 않아 손가락으로 통 안에 든 붉은색 아이스크림을 가리켰다. 돈을 건네며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차가운 눈빛이 카지노 쿠폰 같았다.

“아이스크림 가게가 새로 생겼던데요. 주인이 카지노 쿠폰예요?”

“응. 5월부터 9월까지만 장사해. 미인이지.” 주방을 맡고 있는 하루코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루코와는 휴일에 기숙사에 남아 공부하는 것을 알고 음식을 가져다줘 답례로 선물하다 친해졌다. 어느 나라나 아주머니는 비슷한지 정 많고 수다스러운 모습이 마음을 열게 했다.

“미혼이지만 정상이 감당하기 힘든 카지노 쿠폰야.”

기숙사에서는 학생들 성 뒤에 일본어 존칭인 ‘상’을 붙여 불렀다.

“에이, 그래서 물어본 거 아니에요.”

“중처럼 산속에 처박혀 있으니까 카지노 쿠폰가 그립지?”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짓궂은 농담을 피해 달아나는 나를 보고 하루코가 까르르 웃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휴일이 기다려졌다. 하루코 말처럼 미인이었고 묘한 매력이 있었다. 차가운 불이나 뜨거운 얼음처럼 모순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카지노 쿠폰였다. 자주 가니 단골손님으로 얼굴을 익혔을 만도 한데 흔한 인사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게 흑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변화 없는 일상에 아이스크림 같은 작은 활력소였을 뿐이다.


관광지 마을로 가려면 산등성이를 내려와 공동묘지를 지나가야 한다. 귀신의 나라라는 별명답게 일본은 마을 안팎에 공동묘지가 많다. 탑 모양의 비석들이 삐죽삐죽 서 있는데 까마귀가 많아 낮에도 으스스하다. 비 내리는 날 공동묘지를 걷다 짐승 소리라도 들리면 머리털이 쭈뼛 곤두서고 석류꽃 향기가 진하게 풍기면 섬뜩한 느낌이 든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꽃향기에서 피 냄새가 느껴졌다.


그날도 관광지 마을로 가던 중이었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해 우산을 들고 나섰다. 날이 흐려서인지 석류꽃 향기가 더욱 진하게 풍겼다. 묘지 길을 걷는데 어디선가 사납게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바라보니 흰옷을 입은 카지노 쿠폰가 뭐라고 소리치는데 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석류나무에 카지노 쿠폰 두 마리가 올라가 울고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며 개가 짖고 카지노 쿠폰가 카지노 쿠폰들이 올라가 있는 나무를 흔들어 댔다.


처음에 나는 상황을 잘못 이해했다. 개에게 쫓겨 나무 위로 도망친 카지노 쿠폰를 카지노 쿠폰가 구하려 하는지 알았다. 카지노 쿠폰 한 마리가 나무에서 뛰어내리더니 내 쪽으로 달아났고 커다란 개가 바짝 뒤를 쫓아왔다. 큰 덩치에 백태 낀 외눈이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내 곁을 지나 얼마 도망치지 못하고 카지노 쿠폰가 개에게 물렸다. 바닥에 등을 붙이고 가녀린 네 발을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몸뚱이를 통째로 물려 사지를 바동거리다 축 늘어졌다.


급한 마음에 한국말로 놓으라고 소리치며 달려가자 개가 카지노 쿠폰를 물고 달아났다. 뛰다 보니 돌덩이가 보였다. 우산을 놓고 양손에 하나씩 들고 쫓아갔다. 계속 따라가자 포기한 듯 카지노 쿠폰를 내려놓았다. 훈련된 개인지 사람에게는 덤비지 않았다. 숨이 남아 있었지만 시체나 다름없었다.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피가 흐르고 입가에 피거품을 뿜었다. 울음소리가 약해지면서 누렇게 변을 흘리더니 눈을 감았다.


언제 왔는지 카지노 쿠폰가 외눈박이 개를 쓰다듬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야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카지노 쿠폰가 키우는 개가 카지노 쿠폰를 사냥한 것이다. 죽은 카지노 쿠폰를 발로 굴리며 웃는 카지노 쿠폰를 보자 화가 났다.

“누구 카지노 쿠폰입니까?”

“들카지노 쿠폰.”

카지노 쿠폰가 태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일본말로 들카지노 쿠폰는 주인 없는 카지노 쿠폰라는 뜻이다. 주인 없는 카지노 쿠폰라니 할 말이 없었다. 더구나 상대는 일본인 아닌가. 위협하듯 으르렁거리는 개를 보고 하릴없이 자리를 떴다.


“일본에서는 들카지노 쿠폰를 보면 막 죽여요?” 화가 나기도 하고 일본 풍습이 궁금하기도 해서 하루코에게 물어보았다.

“죽인다고 순사가 잡아가지는 않지만 그렇게 모진 짓을 하는 사람은 없어.”

“개를 시켜 들카지노 쿠폰 사냥하는 여자를 봤는데요?”

“누가 그런 짓을 했는데?”

“누군지는 모르죠. 흰옷을 입은 중년 카지노 쿠폰였어요. 개는 검은색에 눈이 하나뿐이었고요.”

한쪽 눈을 가리고 말하는 내 모습을 본 하루코가 알겠다는 듯 손뼉을 쳤다.

“준코야. 준코네 개야. 죽은 카지노 쿠폰는 어떻게 생겼어?”

“검정과 흰색이 섞인 점박이 카지노 쿠폰였어요.”

“들카지노 쿠폰 아냐. 유키코네 카지노 쿠폰야.”

하루코가 하늘을 보며 준코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주인이 있는 카지노 쿠폰예요?”

“그래. 유키코가 키우는 카지노 쿠폰야. 아이스크림 파는 유키코.”

“사람이 키우는 카지노 쿠폰 왜 죽여요?”

“둘 사이가 좋지 않아.”


유키코는 이 고장 토박이다. 간호전문대를 다니다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아이스크림 가게를 이어받아 운영하다 준코의 외아들 준이치와 사랑에 빠졌다. 도쿄대학에 다니는 준이치는 마을의 자랑이고 홀로 된 준코의 보석이었다. 차가운 성격의 유키코지만 사랑에는 불같았던 모양이다. 고원의 억새 숲에서 벌거벗은 채 뒹구는 것을 봤다는 둥 소문이 퍼졌다. 둘의 사랑은 준코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준코는 장래가 탄탄대로인 수재를 전문대도 나오지 못한 가난뱅이 고아와 결혼시킬 수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서둘러 아들을 도쿄로 돌려보냈는데 겨울방학을 맞아 돌아온 준이치가 다리에서 떨어져 죽었다.

“왜 죽었어요?”

“아무도 몰라. 누가 죽였는지, 사고로 죽었는지.”

낮에도 위험한 다리를 눈 오는 밤에 혼자 올라간 이유는 의문으로 남았고 준코는 지금도 유키코가 준이치를 살해했다고 믿고 있다. 준이치가 도쿄에서 부잣집 규수를 만나 사귀자 유키꼬가 살해했다고 고발해 경찰이 수사했지만 혐의를 찾지 못했다.


사건이 일단락된 뒤에도 준코의 복수는 계속됐다. 홀로 남은 유키코에게 부모가 키우던 카지노 쿠폰는 혈육이나 다름없었다. 카지노 쿠폰가 새끼를 낳아 가족이 늘어난 게 슬픔에 잠겨 살던 유끼코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어느 날 유키코가 가게에 나간 틈을 타서 준코가 키우던 개를 데리고 카지노 쿠폰를 습격했다. 새끼를 가진 모성인지라 싸움이 만만치는 않았던 모양이다. 어미와 새끼 하나가 죽었지만 개도 한쪽 눈을 잃었다. 두 토막으로 찢기다시피 한 카지노 쿠폰를 보고 유키코는 비명을 지르며 슬퍼했다. 마을 사람들이 공분했지만 준코는 태연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개가 저지른 짓이라고, 아마 억울하게 살해된 준이치의 영혼이 시켰을 거라며 빈정댔다. 그 뒤로도 준코와 개는 호시탐탐 새끼들을 노렸고 유키코는 남은 카지노 쿠폰들을 살리려고 숲 속에 풀어주었다. 요즘도 준코는 유키코가 버린 카지노 쿠폰를 찾아내 죽이려고 개를 끌고 숲 속을 뒤지며 다닌다.


“정상 토요일 뭐 해?”

“기숙사에서 공부하려고 하는데 왜요?”

“시내에 장이 서는데 구경 가지 않을래? 일본에 왔는데 구경도 해야지.”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 약속 장소에서 하루코와 만났다. 역 주변에 커다랗게 장이 섰는데 한국 시장 풍경과 비슷했다. 대패로 민 나무 같은 게 자꾸 눈에 띄었다.

“저게 뭐예요?”

“가쓰오부시. 가다랑어를 말려서 대패로 깎은 거야. 육수 만들 때 써.”

시장 구경을 시켜주는 하루코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 옷을 사주려고 했지만 극구 사양해 음식을 대접했다.

“어, 준코네.” 식당에 앉아 밖을 보던 하루코가 말했다.

양산을 들고 화사하게 차려입어 하루코가 말하지 않았으면 몰라볼 뻔했다. 장신구점에 들어가 이것저것 뗐다 붙였다 하며 옆에 선 남자와 웃고 떠들었다.

“부끄러움을 몰라.” 보고 있던 하루코가 혀를 찼다.

“왜요?”

“옆에 있는 남자가 애인이야. 나이가 스무 살도 넘게 차이가 날걸. 시내에서 정육점을 하는데 마을에 자주 찾아와서 사람들이 다 알아.”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건장한 체구의 남자였다. 남자가 내민 핀을 머리에 꽂은 준코가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살폈다. 가게를 나온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왼쪽으로 사라졌다. 준코의 머리에 불어있는 석류꽃 모양의 머리핀이 눈에 남았다.


다음날 고원의 억새 숲에 갔다. 칼날 같은 잎을 서로 부딪치며 서걱대는 억새 길을 십 분 정도 올라가자 잔디가 펼쳐진 너른 고원지대가 나타났다. 숨을 들이켜자 뭉클하게 밀려오는 풀냄새가 그리운 고향을 떠오르게 했다.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보니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정처 없이 흘러갔다. 고개를 돌리는데 저편 그늘진 곳에서 한창 정사에 열중하고 있는 남녀가 보였다. 벗은 두 몸이 엉켜 서서 격렬하게 움직였다. 이쪽을 향한 남자 얼굴이 어디서 본 듯했다. 사이토였다. ‘남들 보든 말든 사랑을 나누며 돌아다닌다더니’ 상대가 보면 어색할 것 같아 누운 채로 있었다. 보지 않으려 해도 자꾸 눈이 갔다. 마침내 정사를 끝내고 이쪽으로 오는 카지노 쿠폰를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준코가 아니었다. 유키코였다.


그 사건 뒤로는 관광지에 가서 식사해도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지 않았다. 보는 것을 들키지 않았지만 얼굴을 마주하면 왠지 어색할 것 같았다.

“정상, 정상.”

식당을 나와 걷는데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고 낯선 목소리라 내처 걷는데 누군가 팔을 잡았다. 유키코였다.

“아이스크림 먹고 가요.”

친한 사람인 양 다정하게 말하더니 앞서 가게로 들어갔다.

“이거 정상 거 아니에요?”

가게로 들어가자 불쑥 우산을 내밀었다. 지난번 개를 쫓을 때 놓고 간 우산이었다.

“내 우산인지 어떻게 알았어요?”

“메이드인코리아. 한국제라고 쓰여 있어서요. 아이스크림 고르세요. 여러 가지 골라요. 고마워서 드리는 거예요.”

“왜요?”

“하루코 아주머니에게 들었어요. 정상이 카지노 쿠폰를 구하려 애썼다고.”

“구하지 못했잖아요.”

“괜찮아요. 어차피 죽으면 끝이니까.”

강렬한 눈빛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체리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나 봐요?”

“향이 좋아서요.”

“그러면 이것도 드셔보세요. 석류로 만든 아이스크림이에요.”

우산과 아이스크림 두 개를 받아 들고 나왔다. 가게에서 들은 노래가 귓가를 맴돌았다. 나카지마 미유키가 부른 ‘악녀’라는 노래였다. ‘악녀가 되려거든 달밤은 그만둬. 당신이 숨겨둔 그 카지노 쿠폰 곁으로 당신을 넘겨줘 버릴 때까지’ 버림받은 카지노 쿠폰의 마음을 표현한 노래인데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내게는 고질적인 버릇이 있다. 목욕을 하고 싶은 마음이 일면 어떻게 해서든 목욕을 해야 한다. 대학생 때 물난리로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목욕탕이 문을 닫았는데 목욕이 하고 싶었다. 참다 참다 훤한 대낮에 학교 옆 개울로 가서 몸을 씻었다. 지나가던 등산객이 놀라고 어떤 놈은 돌까지 던지고 갔지만 악착같이 씻고 나왔다.

갑자기 그 버릇이 도졌다. 관광지에 있는 노천온천에 가고 싶었다. 비 내리는 밤에 공동묘지를 지나가야 하는 게 끔찍했지만 욕망이 공포를 이겼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차가운 비를 머리에 맞으며 하는 목욕은 운치가 있어 좋았지만 온천을 나와 캄캄한 어둠을 마주하자 공포가 밀려왔다. 흐린 가로등 불빛에 비치는 나무 그림자에 놀라고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에 놀라며 사람 없는 길을 빠르게 걸었다. 이런 밤 사람과 카지노 쿠폰가 죽어있는 묘지를 지나가려니 생각만으로도 무서웠다. 뒤늦은 후회가 가슴을 쳤다.


묘지로 들어서니 검은 비석들 위로, 비에도 꺼지지 않는 도깨비불이 떠돌아다녔다. 마을 근처에 묘지를 두고 길로 삼는 일본 사람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딛다 비명을 들었을 때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날카로운 카지노 쿠폰 목소리가 들려 커다란 비석 뒤로 몸을 숨겼다. 야쿠자들이 이런 데서 험한 짓을 한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보였다. 어두워 윤곽만 흐릿하게 보이는데 두 사람이었다. 나무 위로 올라간 카지노 쿠폰가 비명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에 번개가 쳤다. 그때 이쪽을 향해 서 있는 사람 얼굴이 보였다. 머리에 후드를 썼지만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놀라서 나도 모르게 인기척을 내고 말았다. 내 쪽을 보는 유키코의 눈에서 야수의 눈처럼 푸른 인광이 어른거렸다. 위를 향해 피리를 불자 카지노 쿠폰가 소리를 그치더니 나무에서 뛰어내려 모습을 감췄다.


다른 사람은 뒷모습만 보여 누군지 알 수 없었다. 흰옷을 입은 걸 보니 준코 같은데 살아남은 카지노 쿠폰를 사이에 두고 다투는 듯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이방인인 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었다. 숨어있던 곳에서 나와 빠른 걸음으로 묘지를 빠져나갔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묘지에서 싸우고 있다니 대단한 카지노 쿠폰들이었다. 현관 앞을 비추는 기숙사 불빛이 정겹게 느껴졌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대충 물기를 닦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비를 맞아서인지 긴장이 풀려서인지 몸이 덜덜 떨렸다. 머리까지 이불을 덮어썼지만 유키코의 서늘한 눈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이다 기억이 났다. 뒤돌아 서 있던 카지노 쿠폰는 준코가 확실했다. 머리 위에 사이토가 사준 석류꽃 머리핀을 꽂고 있었다.


식당에서 쌀을 씻고 있던 하루코가 나를 보더니 호들갑스럽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무슨 일 있어요?”

“준코네 개가 죽었어.”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양 눈치를 살피며 소리를 낮춰 말했다.

“왜요?”

“방망이로 머리를 맞았어. 눈알이 튀어나와서 무섭게 죽었어.”

두 손을 모아 눈이 튀어나오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끔찍한 이야기인데도 눈을 크게 뜨고 시늉하는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그 개는 제 눈 갖고 살 팔자가 아니었나 보다.

“누가 죽였어요?”

“누군지 모르지만 의심받는 사람이 있어.”

“누군데요?”

“전날 사이토가 그 집으로 들어가는 걸 본 사람이 있어. 분명 남자가 그랬을 거야.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때리려면 힘이 세야 하니까. 평소 보던 사람이라 짖지도 않았을 거고. 그런데 왜 그랬을까?”

고원에서 보았던 유키코와 사이토의 정사 장면이 떠올랐다. 사이토가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 듯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소문이 나면 유키코가 곤란해지고 싸움이 더 격렬해질 것 같아서였다.

“준코는 어떻게 하고 있어요?”

“죽은 개를 치우지도 않고 아침부터 일본도를 갈고 있어.”

“일본도요?”

“사무라이 집안이라 대대로 내려온 칼이 있어. 아무래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아.”


하루코의 예감이 맞았다. 다음 날 공동묘지에서 준코가 죽은 채 발견됐다. 기숙사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사람들이 모여 시끌시끌했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언덕을 내려가 무리에 섞였다. 사람들이 손짓하는 곳을 보니 흰옷을 입은 카지노 쿠폰가 쓰러져있었다. 풀어헤쳐진 앞섶 위 목덜미에 무언가에 할퀸 핏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죽어서도 일본도를 손에 꼭 쥐고 있었는데 무언가를 쫓다 넘어진 것 같았다. 머리에 석류꽃 머리핀이 꽂혀있었다.

사이렌을 울리며 경찰차가 도착했다. 차단선을 설치하고 돌아가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사이토가 그랬을 거야. 싸우는 소리를 들었어.”

“여기는 유키코가 카지노 쿠폰를 키우는 곳이야. 그러니...” 말하던 사람이 주위를 둘러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밤에 묘지에는 왜 갔을까? 그것도 칼을 빼 들고.”

“누군가를 죽이려고 갔다가 오히려 당한 것 같아.”

경찰차 두 대가 더 왔고 차에서 내린 순사들이 도구를 꺼내 들고 주변을 수색하자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갔다.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월요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루코를 만나 살해범이 잡혔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발자국이 남아있어 조사했는데 준코 발자국만 있대. 자살한 것도 아니고 이상하지 않아?” 주방으로 찾아가니 기다렸다는 듯 하루코가 이야기를 쏟아냈다.

“살해당했어요?”

“독약으로 죽였대.”

“독약이요?”

“청산가리에 당했어.”

“누가 먹였어요?”

“먹은 게 아니야. 카지노 쿠폰가 할퀸 상처에서 청산가리가 나왔어. 경찰이 유키코를 데려가 조사하고 있어.”

유키코는 곧 풀려났다. 카지노 쿠폰를 훈련시켜 사람을 살해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지노 쿠폰에게 죽은 것처럼 꾸며서 누명을 씌우려 했다는 말이 더 그럴듯하게 들렸다. 얼마 후 묘지에서 카지노 쿠폰 사체가 발견됐는데 앞발 두 개가 없었다. 조사해 보니 유키코의 카지노 쿠폰가 아니었다. 그녀가 길렀던 카지노 쿠폰는 모두 점박이 카지노 쿠폰였는데 발견된 카지노 쿠폰는 온통 새까만 검정카지노 쿠폰였다.


수사 방향이 선회했다. 내연 관계에 있던 사이토가 준코가 살해되자 종적을 감췄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 결과 사이토가 준코에게 돈을 빌렸고 그 때문에 둘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이 마을 사람의 증언으로 밝혀졌다. 묘지에서 피 묻은 방망이가 발견됐는데 사이토의 지문이 나왔다. 묻어있는 피는 사람 피가 아니라 준코가 기르던 개 피였다. 경찰이 사이토를 지명수배하고 행방을 수색했지만 찾지 못했다.

“사이토가 왜 준코의 개를 죽였을까?”

“준코 혼자 남기려고 그런 게 아닐까요.”

“사이토가 준코를 살해하려고 그랬다는 거야?”

대답하지 않았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나으니까.


사건이 카지노 쿠폰의 발톱을 이용한 지능 범죄라는 점과 준코 모자와 유키코의 관계가 밝혀지면서 매스컴의 대대적인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뾰족한 성과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세인들의 관심이 시들해졌고 석류가 익을 무렵에는 수사반도 마을에서 철수했다. 사건이 알려지자 유키코를 위로하는 편지와 미혼 남자들의 구애 편지가 전국에서 쇄도했다. 그렇게 된 데는 유키코의 아름다운 미모도 한몫했을 것이다. 준코는 아들 옆에 안장됐다. 두 사람의 묘에 꽃을 놓고 기도하는 유키코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비극으로 끝난 슬픈 사랑에 마음 아파했다.


다음 달이면 기숙사를 떠나 도쿄에 있는 지사로 간다. 이제 일본어 실력이 늘어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지만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온천에 갔다 온 다음 날 공동묘지를 지나다 어제 두 사람이 서 있던 자리에서 석류꽃 모양의 머리핀을 발견했다. 흙을 털고 보니 긁힌 자극이 있고 짐승 털 같은 게 끼어있었다. 준코가 흘리고 간 것이라 생각하며 주머니에 넣었다. 묘지를 나오다 이쪽으로 걸어오는 유키코를 만났는데 인사를 건네도 바쁜지 목례만 까닥하고 지나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모습이 무엇을 찾는 것 같았다. 뒤늦게 그 모습이 떠올랐다.

준코가 죽었을 때 머리에 석류꽃 머리핀을 꽂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가지고 있는 머리핀은 준코의 것이 아니었다. 비 오는 밤 묘지에서 본 카지노 쿠폰도 머리핀을 꽂고 있었다. 그 카지노 쿠폰는 누구였을까? 어쩌면 준코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준코가 아니라면 누구였을까? 유키코가 내 기척을 느꼈을 정도면 상대도 알았을 것이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돌아서서 나를 쳐다봐야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묘지를 빠져나갈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거기서부터 의문이 시작됐다. 그날 밤 그 장면을 나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끈질기게 떠올렸다. 그러다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준코의 옷을 입혀놓은 마네킹이었을지 모른다. 둘은 다투고 있던 게 아니었다. 내가 본 것은 유키코가 카지노 쿠폰를 훈련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추리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숲에 버렸다고 소문을 냈지만 유키코는 인적이 드문 묘지에 카지노 쿠폰를 숨겨두고 훈련시켰다. 피리를 불자 카지노 쿠폰가 사람이 시키는 대로 달아난 게 그 증거다.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던 머리핀을 꺼내 자세히 살펴보았다. 긁힌 모양이 날카로운 발톱에 할퀸 자국 같았다. 이 석류꽃 머리핀이 훈련 도구였다면 사이토가 준코에게 머리핀을 사준 이유도 설명된다.


유키코가 시켜 접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이토의 역할은 준코를 공격할 때 방해가 되는 개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키코와의 관계를 털어놓는 등 준코를 격분시켜 칼을 들고 묘지에 가게 해서 훈련받은 카지노 쿠폰에게 살해당하게 했다.


그런 생각을 했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잘못된 추리일 수 있고 남의 나라 복잡한 일에 얽히고 싶지 않아 나는 침묵했다. 하지만 유키코를 만날까 두려워 관광지 마을에는 가지 않았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하게 그녀를 볼 자신이 없었다.

떠나기 전 주 토요일이었다. 골프를 치러 나가던 선배가 나를 불렀다.

“정대리 손님 찾아오셨다.”

나가보니 유키코가 서 있었다.

“아무도 없는데 잘해봐.” 귓속말하고 선배가 떠났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다음 주에 도쿄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 왔어요.” 유키코가 들고 온 가방을 보이며 말했다.

음식까지 만들어 온 사람을 매정하게 내칠 수 없어 아무도 없는 식당으로 안내했다. 의자에 앉은 유키코가 가방에서 음식을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다. 샌드위치와 초밥, 우매보시...

“새벽에 일어나 준비했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어요.”

청산가리가 떠올라 잠시 망설이다 초밥 하나를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이건 선물이에요.”

식사를 다 할 때쯤 유키코가 선물을 내밀었다. 복을 비는 카지노 쿠폰 인형이었다.

“왜 제게….”

“고마워서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 모습이 예쁘면서도 섬뜩했다.

“마지막인데 같이 산책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말도 있고요.”


내키지는 않았지만 유키코를 따라나섰다. 빠른 걸음으로 공동묘지를 지나쳐 가려는데 유키코가 나무 아래를 서성거렸다. 카지노 쿠폰를 훈련하던 장소였다.

“저도 정상한테 선물을 받고 싶어요.”

“무슨 선물?”

대답하지 않고 내 얼굴을 찬찬히 바라봤다. 그 눈을 보는 순간 내가 가지고 있는 석류꽃 머리핀이 떠올랐다. 시선을 피해 뒤돌아서서 걸어 내려갔다.

관광지 마을을 지나고부터는 유키코가 앞서 걸었다. 억새밭을 지나 풀이 무성한 고원까지 가더니 그늘을 드리운 큰 나무 밑으로 나를 이끌었다. 사이토와 정사하던 곳이었다.

“일본 카지노 쿠폰와 자본 적 있어요?” 나무에 몸을 기대며 유키코가 물었다.

“네? 뭐라고요?”

“일본 카지노 쿠폰와 섹스해 봤냐고요?”

“아니요.”

“나랑 해봐요.”

앞섶을 살짝 젖혀 하얀 젖가슴을 내비쳤다. 그 모습을 보자 머리가 멍해졌다.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가 그녀를 껴안고 뒹굴고 싶은 욕망이 일었지만 두려움이 나를 뒤로 잡아끌었다.

“정상. 정상.”

고원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뛰다시피 산길을 내려왔다.

다음날 짐을 꾸려 일찍 도쿄로 떠났다. 석류꽃 머리핀은 공동묘지를 지나면서 나무 아래 버리고 왔지만 신칸센을 타고 가면서도 내내 불안했다. 유키코가 쫓아오는 듯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