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누군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건 삶의 법칙이다. 초등학교 입학하며 시작한 수영도 어느덧 함께 성장하고 중학교로 입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작되는 몸의 변화들. 지난밤 민태의 꿈엔 어린 시절의 민태가 나왔다. 멀리서 손만 흔들고 다가오지 않길래, 큰 민태가 물었다. “너 뭐 해? 이리 와 인마!” 어린 민태는 약간은 씁쓸한 듯 흔들던 손을 내리고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뒤돌아서 한마디를 한다. “ 형, 이제 나는 못 보게 되었어. 잘 살아.” 무슨 말인가 싶어서 민태를 불러보지만 눈앞에 있던 꼬맹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렇게 꿈에서 깨어난 소년. 엄마의 잔소리로 아침이 시작된다. 세안을 하고 말끔해진 얼굴을 보는데 평소와는 다르다. 거뭇한 자욱들이 얼굴 주위에 듬성듬성 나있다.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청소년. 민태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자신만의 세계관이 생기고 감정이 최우선이 되었다. 더 이상 수영이 최고의 목표가 되지 않았다. 초등학교 전국대회에서 3위를 한 이후 민태의 성적은 예선권에서 맴돌았고 욕심이 없어졌다. 하루는 친구가 가져온 왁스를 머리에 바르고 멋을 잔뜩 부려본다. 성장하는 민태는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띠리링” 전화가 울리고 휴대폰의 화면에 이름이 뜬다. “노잼 김지수” 여전히 불편한 관계의 지수코치. 전화가 꺼지고 문자가 하나 온다. “까똑. 어이, 청소년. 오늘은 오냐?” 문자를 미리 보기로 읽은 후 답장을 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는 길. 통유리로 된 음식점을 지나는데 멋을 부리며 허세가 가득한 걸음으로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거울에 반사된다. 마음 한 구석에서 불편한 감정이 꿈틀거리다가 터져 나온다. 그러다 지수 코치에게 문자를 쓰는 카지노 쿠폰. “저 오늘 아파서 못 갈 것 같습니다.” 문자를 보내고 친구들과의 시간에 진심을 쏟는다.
민태와 함께 다니는 친구들은 같은 수영부 친구들이다. 그 무리에서도 대장 노릇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지역 유지의 아들이었다. 공부보다 운동에 재능이 있어서 수영을 하게 된 창수. 창수는 어릴 때부터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리고 그 작은 머리와 가슴엔 자본주의가 깊게 뿌리내려 박혔다. 창수는 걸핏하면 민태에게 시비를 걸었고 그의 가난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민태 약점인 것도.
하루는 창수가 술을 가져왔다. 친구들 모두 모여 공터에서 몰래 한잔 걸쳤고, 한두 잔씩 알코올이 들어가니 기분이 좋아졌다. 창수는 민태에게 노래를 불러보라며 명령 아닌 명령을 내렸고 카지노 쿠폰 온몸에서 들끓던 활화산이 터지듯 분노가 폭발했다. “야이 새끼야. 네가 대장이야?” 이 말을 외치며 달려드는 민태. 하지만 친구들은 창수의 편이다. 힘은 돈에서 나왔다. 입술이 터지고 코에서 피가 흐른다. 왼쪽 눈이 찢어진 듯 아파오며 눈앞이 캄캄해진다.
한참을 두들겨 맞다가 쓰러지는 카지노 쿠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지켜보던 창수는 가자는 신호를 보내고 아이들은 일제히 그곳을 떠난다. 창수는 외투 속 주머니에서 5만 원권 두장을 카지노 쿠폰에게 던지듯 뿌리며 돌아선다. “야, 그걸로 몸 좀 추슬러. 그리고 주제를 좀 잘 파악하고.” 쓰러진 소년은 손에 한 줌의 흙을 꽉 쥔다. 비가 오는 건지, 소년의 얼굴 근처 흙바닥에 물방울이 떨어지고 이내 빗방울이 한 두 줄 떨어지다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민태는 몇 달 전 우연히 “워터보이즈”라는 일본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워터보이즈의 주인공은 없어져가는 고등학교 수영부의 유일한 부원. 없어질 수영부에서 어떤 계기로 싱크로나이즈를 하게 되며 처음에는 신기해서 참여한 부원들도 주변의 무시와 고난에 줄행랑을 친다. 하지만 힘든 모든 일들을 이겨내고 결국엔 물에서 멋진 이야기를 쓴 다는 뻔한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는 소년의 마음 깊이 스몄다.
잠시 지쳤던 수영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고, 어긋난 부원들과 다시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에 함께 어울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마음은 돌아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민태는 점점 화가 났지만 어쩔 줄 몰라서 속으로 삼키고만 있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현실의 이야기는 무거웠다. 반창고 투성이인채 집으로 돌아온 민태는 이불을 얼굴까지 덮고 잠이 든다.
다음날 엄마는 민태의 얼굴에 대해 추궁하듯 물었고 또 한 번 원하지 않는 불편함이 만들어졌다. 표현이 서툰 사춘기. 엄마도 그런 날들을 겪었지만, 민태와 같이 표현할 수 없었던 마음에,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하고 있었다. 민태는 말없이 등교하기 시작했고 훈련을 나가도 혼자인 경우가 많았다. 때론, 수영장 근처 골목에서 창수 패거리에게 장난으로 두들겨 맞고, 또 나쁜 짓에 억지로 가담하며 괴로움을 삼켰다. 물은 민태에게 해방구이자, 괴로움을 씻어내는 성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