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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May 02. 2025

브래드피트와 카지노 게임 헷갈리다니

고깃집에서 초밥이가 쌈채소바구니에서 고추를 하나 골라먹더니 그러는 거다.


“어? 청양이 아니네. 청양고추는 없나?”


내가 고추 중에 속에 씨로 꽉 차서 딱딱한 놈을 하나 골라 한 입 먹고 “이거 청양이네”하고 초밥이 앞에 놔주었다. 초밥이도 먹어보더니 “어, 맞네”라고 했다. 더 먹을 고추가 없자 초밥이는 셀프바로 가서 직원에게 물었다.


“청양고추는 없나요?”


직원은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한 눈에도 못되게 생긴 고추 대여섯 개가 담긴 그릇을 우리 앞에 놓아주었다.

매운 고추를 조심스럽게 베어 먹던 게 지난겨울인데 초밥이는 이제 “마님!”하는 이대근 배우처럼 과감하게 씹어먹고 있다. 오이고추에서 청양고추로 진도를 빼고 이제 청양고추까지 마스터했으니 앞으로 어디로 가려나.

무심히 눈길이 닿은 모니터에 영화 타이타닉이 나오고 있었다. 초밥이가 아는 척을 했다.


“카지노 게임네.”

“카지노 게임거든!”


내가 외치는데, 내 목소리에 하나의 목소리가 더해졌다. 반찬을 가지고 온 나와 비슷한 나이의 직원이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그분은 불쑥 나온 말이 무안했는지 나를 보고 웃었다.


“브래드피트와 카지노 게임 헷갈리다니 너무 하지 않아요?”

나는 때마침 생긴 지원군에게 말을 걸었다.

“그 둘을 카지노 게임는 건 심하죠.”


지당한 말이다. 브래트 피트는 브래드 피트여야 하고, 디카프리오는 디카프리오여야만 한다. 결코 그 둘이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이들의 작은 동맹이 즉시 결성되었고, 초밥이의 무관심한 표정을 뒤로하고 우리는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차은우라는 사람을 모른다고 무시하더니 자기는 이런다니까요.”

“차은우? 누군데요? 나도 모르겠는데요.”


조금 시간이 흐르고 우리가 고기에서 냉면으로 넘어갔을 때 뒤쪽에 있는 카운터에 앉아있던 직원이 하는 말이 들렸다.


“어어어, 나온다. 역사적인 장면!”


혼잣말이라고 하기에는 크고, 들을라고 하기에는 작은 소리였다. 화면에는 뱃머리에 팔을 벌리고 서있는 케이트 윈슬렛을 뒤에서 카지노 게임가 안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저 장면을 봤을 때가 21살이었는데.”내가 말을 던졌고,

“저걸 볼 때 오랫동안 패러디 될 줄 몰랐어요.”직원이 받았다.


중간에서 카지노 게임는 뭐가 웃긴지 낄낄거렸다.


“왜 웃는데? 엄마가 21살 때가 있었다는 사실이 웃겨? 뭐가 웃긴지 설명해 봐.”


초밥이가 대답을 회피했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 추측해 보았다. 초밥이한테는 이십 년이 넘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같다. 나한테 이십 년이라는 건 오래전이긴 하지만 바로 엊그제 같기도 하고 그중 어떤 일은 도무지 잊히기는커녕 더 생생해지는 일이 포함된 시간이지만, 초밥이한테는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인시간이다. 18년까지 살아본 자신으로서는 스무 살 이후의 삶이라는 건 어떤 삶일지 상상불가능한 미래다. 막연하기만 한 시간인 것이다. 웃음은 막막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영화관에서 저 장면을볼 때만 해도 사람들이 배만 탔다 하면 따라 하게 될지 몰랐다. 더군다나 우리의 카지노 게임가 이렇게 푸근한 외모로 바뀔 줄은 꿈에도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나한테 만큼이나피터팬 같던 그에게도 세월이횡포를 부렸구나 하는 동류의식에서 느끼리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기쁘기보다 비탄스러운 심정에 동지들과 각자 인생에서 한 시간쯤 십시일반 모아서 카지노 게임에게 주고 싶을 정도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를 소년의 모습으로 박제하고 싶은 것이다. 그 마음만큼은 앞으로도 변치않을 것.


카지노 게임날렵한 턱선은 사라졌지만 다정한 친구가 생겼으니 세월이 횡포만 부린 건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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