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런 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는 사람 Feb 15. 2025

정소현, <품위 카지노 게임 삶

기억과 기록


최근 읽은 한국 소설 중 가장 좋았다. 2, 30대 때보다 소설을 덜 읽게 되고,읽어도 옛날처럼 한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서 더 읽고 싶은 경우는 드물어지는데다른 책도 보고 싶어졌다.개인적카지노 게임특히좋았던 작품도 있지만, 개별 리뷰보다는 각 소설의 소재와 처한 상황은 다르면서 전체작품에 흐르는 공통적인 정서나 주제가 있어그런 부분을 복기하며쓰려고 했다.


건조하고 명료한 문장으로 비참한 현실과 심리 상태를 얼음처럼 묘사한다. 오래 꽁꽁 언 얼음덩어리가 손바닥에 닿았을 때의 차가우면서 따가운 통증으로. 쉬운 공감과 위로에 거리를 두는 서늘함으로 주인공의 상황과 내면을 극한으로 몰고 가 글을 읽는 사람도 괴롭고 아프다.

6편의 주인공 모두가 유사 고아로 부모가 소거돼 있거나 있어도 없는 것보다 못하다. 외로운 그들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 건 비혈연적 관계다. 내가 가입한 보험회사의 계약 직원, 내 간병인, 알고 보니 유괴자, 트라우마 동지. 그나마 친밀하게 묘사되는 혈연도 한두 다리 건넌 조부모, 삼촌/조카인데, 그들마저 갑작스럽게 떠난다.

자기가 만든 작품집 전체에 부모와의 유대관계가 전무한 고아로 만들고 과거의 기억 때문에 현실을 부정(당)하는 인물만을 낳은 이 작가는 누구인가? 어떤 과거를 보냈나? 작가의 삶이 궁금해졌다.


카지노 게임


기억이냐 기록이냐


6편의 인물 중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 왕따와부당한 소문의 억울함, 결핍과 질투가 만들어낸 집착과 불안, 상실감과 참사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살 만한 현재를 누리지 못한 채 과거의 기억 때문에 괴롭지만 각각의 소설에서 그것을 대하는 방식은 다르다.

소설집 속 주인공 대부분은 과거 기억의 반복, 미래의 예단, 관계의 속단으로 불안해하느라 시간과 관계의 단절을 겪는다. 그들은 고통스러운 과거를 잊지 못하면서도 기억의 실체는 회피하거나 부정한다.


사람들은 기억을 잃기 시작했을 때 기억을 쓰겠다고 결심한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세상의 발견. 봄날의 책


반면 새로운 현실을 만들고 싶은 사람은 ‘기억’의 반복 대신 ‘기록’ 한다. 자살 실패로 중증 장애를 얻은 뒤 어제의 일도 지워지는 기억을 붙들기 위해 그림과 글을 그리고 쓰기 시작한 <어제의 일, 화재 사고의 현장에서 혼자 살아남은 부채감으로 사고 현장마다 찾아가 사진과 영상을 찍는 <엔터 샌드맨, 죽은 삼촌/조카가 남긴 음악을 찾아 그 작업을 이어 나가는 <꾸꾸루 삼촌… 괴롭고 미안하고 원망스러우니 외면하고 지우는 게 아니라 기록으로 속죄하고 애도한다.


우울증자가 “내 잘못이야”에 빠져있고, 편집증자가 “네 탓이야”로 분노한다(박영진)고 했는데 같은 병명 속에 복잡다단한 증상이 천차만별이니 조심스럽게, 이 소설 속 인물에 한정해 얘기하면 우울증자가 편집증보다 낫다. “내 탓이야”라던 우울증자가 고통스러운 기억을 새로운 고독으로 창안한다면, "네 탓이야”라던 편집증자는 기억을 편집하며 외면하다가 고립에 빠진다. ‘기억’보다는 ‘기록’이다.

기록한다는 건 과거를 제대로 복원해남길 건 남기고잘못된 기억은 수정해, 버릴 건 버리면서고통의 해소와 애도의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미래보다는 과거가 기록의 주연이지만, 기억이 과거 일을 반복적으로 곱씹으며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 기록을 쌓는 사람은 다른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부스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 밤에 이미 이전과는 다른 세계로 진입했기에 더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된 것은 그 결과일 뿐이었다.
살아있어 다행이다. 다행이라 말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어제의 일들


6개의 작품 중 <어제의 기록과 <그 밑, 바로 옆이 특히 좋았던 것은 페이소스짙은 이야기 속에, 기억과 상처를 대하는 방식이 다른 인물과달랐기 때문이다.그들은 과거를 부정하지도, 과거에 매몰되지도 않으면서 자기 주도적 의지로 산다.



기억과 망각-말이 풀려야 원한도 사라진다


기록하는 그들은 드라마 주인공처럼 인기 작가, 유명 영화감독, 스타가 되진 않지만 기억을 기록으로 바꾸니 현실도 ‘살아갈 만한 곳’으로 바뀐다. 기록이 말의 문자라면 봉인된 말을 뚫어주고 들어주는 게 막힌 과거를 잘 청산하는 것일 텐데, 여자들의 막힌 ‘말’에 관한 얘기 두 가지가 생각난다.


1970년대 영국에선 이혼율이 1940년대보다 절반 이상 줄었다. ‘결혼 상담 위원회’의 활동이 한몫했다. 내용을 보면 ‘결혼 상담 위원회’라는 명칭보다 ‘이혼 상담 위원회’가 더 정확해 보이는 기구다. 배우 신구의 ‘4주에 후에 뵙겠습니다.’라는 대사로 유명했던 옛날 이혼 드라마가 생각난다. 영국의 이혼 숙려 상담 위원회에도 드라마처럼 정신과 의사가 있는데 이혼 신청 여성이 ‘30분’ 간 자기 얘기하는 것을 들어준다. 이 업무 후 이혼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통계를 인용한 작가는 이 말을 덧붙인다. 30분의 그 짧은 경험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누구의 편을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라고.
-리스펙토르, <세상의 발견. 봄날의 책들에서 읽은 내용을 편집한 인용.


‘말의 억압과 해소’를 이혼율 감소의 중요 배경으로 해석한 이야기다. 어느 철학자도 양상은 다르지만 비슷한 말을 했다. 기독교 정착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독교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기혼 여성 신도 수의 증가다. 목사와 예수, 교회는 당신 어머니들의 갇힌 말을 들어주는 대상과 장소였기 때문이라는 것. 절은 높고 깊은 산에 있어 찾아가기 힘들지만, 교회는 내가 사는 동네에 있으니 그런 쉬운 접근성이 교인 확대에 큰 작용을 했다는 것이다. 종교와 점집을 대체한 문턱 높은 곳이 정신과라면, 결혼위원회의 상담은 갇힌 내 말을 들어준 낮은 문턱이었을 것이다.

말의 해원은 산 사람의 삶만 바꾸는 게 아니라 망자의 갈 길도 만든다. 망자들은 미련과 걱정카지노 게임 생전의 고통을 반복 재생하며 이승에 붙들려 있다.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 묶인 말들을 쏟아내고서야 그들은 완전히 떠날 수 있게 된다.기록은 산자의 과거 청산이면서 유언의 수행이기도 하다.기록이 잘 살길이자 잘 죽을 길이다.


카지노 게임


누구는 기억을 붙들기 위해 애쓸 때, 누구는 기억을 외면하거나 조작한다. 찾고 싶은 기억과 잊고 싶은 기억 모두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있다. 소설의 인물들은 그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 합법적이지만 도덕적으로는 자유롭기 힘들고, 질투와 불안으로 모함한다. 내가 죽였다는 죄책감,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부채감, 이 모든 건 내 사랑을제대로 받지 않은네 탓이라는 원망과 전가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과거에만 매달려 있으니 실재와 환상,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인지 부조화에 빠진다. 이별을 부인하는 이들은 산 자와 말을 끊고 죽은 자와 말한다. 누가 산 자이고 망자인지도 모호해진다. 망자와의 대화와 동거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 꿈과 현실의 경계도 흐리게 한다.



기억, 과거를대하는 방식


갈등과 문제를 의논하고 협의하며 같이 살아가는 방향이 ‘해결’이라면 목적한 결과를 위해 신경 거슬리는 존재는 아예 없애버리는 건 ‘처리’나 ‘처치’가 될 것이다. 해결이 대상을 개별적 존재로 보는 인식이라면 처치는 골치 아프니 그냥 없애버려야 할 대상카지노 게임 보기 쉽다.

두 작품은 낡고 허물어져 가는 공간도 경제적 가치로만 소거하는 대상이 아닌, 지키고 살아갈 가치가 있는 대상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거기 산 사람들의 역사와 기억의 공유를 화폐로만 계산하지 말라고.특히 ‘청계천’을 주 무대로 삼은 <그 밑, 바로 옆. 청계천과 할머니 개인의 역사를 겹친 구도는 한국 현대사, 여성사의 압축판 같다.


견의 할머니는 청계천 개발, 복개 공사 때마다 쫓겨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그곳에서 죽는다. 할머니가 청계천에 터를 마련하고 살게 된 과정, 견을 들이고 죽음을 맞는 과정, 견이 할머니의 유언을 수행하다 자신의 친혈육들을 만나고 돌아서는 과정은 같은 분단의 역사 속에서 왜 할머니만 철저히 혼자 남고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지, 비슷한 환경 속에서도 왜 할머니는 폭력에 더 노출됐는지, 미성년자인 견은 왜 노동과 임금을 착취당해야 하는지를 되묻는다.

글의 후반부에 견이 안락한 집과 따뜻한 부모 속에서 원인 없는 한기를 내내 느끼다 청계천 다리 밑 할머니 시체 옆에 눕는 엔딩은 조세희의 난쏘공에서 보았던 환상적 리얼리즘의 환생 같았다. 신축 아파트와 하수구 집, 팔십 넘은 할머니와 16세 소녀라는 극명한 대비로 짧은 단편 속에 시리즈 대하드라마 못지않은 묵직한 감동과 아픔을 발생시킨다.



기억은 머리끝이 아닌 몸 밑에서


기억은 머리끝이 아닌, 몸 밑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닐까. 머리끝에서 끄집어내 기억하는 게 아니라 가슴 저 밑, 몸의 기억으로 불러내는 것. 그래서 과거의 기억에 붙들려 괴로워하는 주인공들의 근거, 재출발의 장소가 ‘지하’ ‘바닥’ 아닐까. ‘높은 곳’은 그들에게 상승이 아니라 오히려 ‘락’과 상실의 전조다.


부도덕한 소문에 절망한 상현은 5층 투신 실패 후 중증 장애인이 된다. 단절된 기억 속에서 현재의 삶을 가꾸는 곳은 밖에서 보면 쓰레기장 같은 주차장이다. 그가 사비를 넣어 가짜 매출을 만들어서까지 주차장을 지키려는 것은, 그곳이 사라지는 기억을 붙들기 위해 가장 처음 그리고 쓰기 시작한 곳이기 때문이다. <어제의 일들, 학교도 한 번 못 가 보고 일당직을 전전하며 폐지 할머니와 사는 16살 소녀 견의 집은 청계천 복개 다리 밑이다. 그녀가 친부모를 만나 살게 된 안락한 신축 아파트에서 원인 모를 한기를 계속 느끼는 것은 그곳엔 할머니의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 밑, 바로 옆, 간결한 문장 속에 치밀한 반전을 저마다 품고 있는 6편 중에서도 반전이 가장 극적이었던 <꾸꾸루 삼촌에서 삼촌과 조카는 지하 음악실에서 기이하게 재회하고 ‘무대 밑’인 그곳에서 서로의 작업을 이어 나갔다. 지수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인 절친 은하와 연인 지수도 화재 참사의 건물 지하와 연결돼 있다. <엔터 샌드맨


카지노 게임복개 도로 밑, 하수구가 흐르는 다리 안에 벽돌을 쌓아 만든 집에 산다는 묘사가 있어 그 구조를 상상하며 찾아보았다. <그 밑, 바로 옆


문학은 현실의 재현이 아닌, 실재의 잔여


6편의 작품은 각각의 작품이 다면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주인공들의 정서적인 영역 외에 윤리적인 면도 그중 하나다. 합법화된 연명의료 중단제나 안락사에 대한 윤리성, 왕따와 소문이 여러 인생을 파괴하는 과정, 생존 본능에서의 선택이 만든 죄책감… 법적 처벌이나 복수 같은 직접 단죄는 없지만, 자기 처벌에 몰리는 인물들을 보며 내면의 도덕성을들여다보게한다.

그중에서도 <그 밑, 바로 옆은 자칫 범죄를 미화하거나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자신이 처음부터 범죄의 대상이라는 걸 알고도 범죄자에게 감정 이입, 동화되는 게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면 견은 할머니가 죽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다는 점이 다르다.


견은 어리지만, 자신을 둘러싼과거와 현재의상황을 잘 이해한다. 부모를 만나서 반갑고 좋은 사람들 같아 다행이지만 그뿐이다,상상에도 없었던 부모를 만나 이런 집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었고경험해 봤으니 되었다. 더러운 내 행색만 보고 나를 불쌍히 여기면서,정작 할머니의 불행한 인생과 자신들의 책임은 모르는 채 비난만 하는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아이다. 너무 완벽한 조건에 오히려 자꾸 의심이 드는데, 할머니가 자주 하던 말을 떠올리며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피보다 더 진한 과거”를 찾아서.

무너진 곳에서 다시 일어나기 위해 타의에 의해 추방된 그곳으로 돌아간다. 과거를 직면하지도, 끊지도 못한 사람들은 사랑하는자신과타인을이거나사랑을놓쳐버린다.


떠날 일이 있으면 무조건 빨리 떠나는 게 이득이고, 망설임은 인생에 아무 보탬이 되지 않는다.


할머니의 유언은 사죄인 동시에 용서이고, 비극적급사는 이야기의 중요한 복선이자 할머니에 대한 작가의 인간적 단죄로 여겨졌다. 견이 할머니, 청계천에서의 모든 시간을 완전히 단절하고 새로 생긴 부모와 의심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면 이 소설의 미학, 감동은 떨어졌을 것이다. 두 번 읽고 나니 제목이 더 좋았다.

<그 밑, 바로 그 옆의 ‘그 밑, 다리’는 단순히 ‘청계천 다리’만은 아니다. 신축 건물 밑에서 안 보이게 사는 사람들을 불러내는 일이다. 그들은 지상의 높은 건물을 쌓아 올려지는데 희생돼 지하 인간이 된 것이다. ‘그 옆’은 청계천 다리 지하의 구멍을 통해 맞은편 쇼핑몰 의류상 가로 이어지는 숨은 길만은 아니다.

구멍이 아닌 으로 마중하고, 말을 잃고 힘없이 쫓겨나고 죽은 외로운 사람들을 견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부르는 행위다.그 위가 아닌, 그 밑, 바로 옆에서 우리에게 말한다. 경제적 논리, 법의 판결을 거슬러 가는 개인의 역사와 공동체의 삶이 파헤쳐진 거기 있다고.


청계천 복원 전후

( 소설 속엔 견이 청계천 축대에 난 구멍을 통해 맞은편 의류상가의 지하 건물로 건너가는 장면이 나온다-다리 밑 사람들을 싫어하니까 안 보이게 다녀야 한다-그런건축 구조물이 상상이 안 돼 여러 단어를 넣어 검색하다가 찾은 사진이지만, 다닌 구멍이 저렇게 번듯하진 않을 것 같다. )


문학은 -하지 마라,-해라고만 하는 도덕책, 성경책, 법전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 부도덕한 모습을 통해 진실과 윤리성을 추구하는 일일 것이다. ‘문학은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실재의 잔여’라는 박영진의 말에 공감한다. 6편의 소설은 개인의 윤리성, 공동체적 삶, 기억과 망각, 현실과 환상,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반문한다.

타인의 희생 위에 세워진 개발, 현실을 갈아 만든 미래의 윤택, 안락한 노후 준비로만 '품위 카지노 게임 삶'완성되는지를.


<그 밑, 바로 옆의 여운감동은 내가 알지 못하는 청계천 사진까지 찾아보게 했다. 할머니와 견이 어떤 곳에서 살았는지 알고 싶었다. 피난을 피해 도착한 청계천은 이랬구나, 할머니와 견은 새로운 화폐가 세워지는 ‘그 밑, 바로 아래’에서도 생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왔구나!

"살아있어 다행이다."



( 글 속에 정확한 시대가 나오진 않지만, 특정 명사와 청계천 주위를 스케치한 문장으로 유추하면 70년도 중반 전후~1990년대 중반 전후가 주요 배경인 것 같다. <그 밑, 바로 옆의 할머니는 50년 전후 청계천에 정착한 것으로 암시되는데 사진은 72년도의 청계천이다. 할머니도 처음엔 무허가이긴 하지만 저런 판잣집에서 살다가 다리 밑까지 밀려났다. 판잣집에서도 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고가 도로 아래에 생긴 틈을 파고 그 안에 살았다. 개미들처럼 땅속에 산다고 '개미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불과 50여 년 전 수도 서울의 모습이라니, 오늘의 반짝거리는 풍경 아래로 묻히고 밀려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



같이 보면 더 좋을 시, 영화, 음악


영화 영주


소녀 가장이라는 설정, 가해자에 대한동화와 이해라는 정서 면에서는 같지만 소설과 달리피해자가 복수를 위해 가해자에게접근한, 가족카지노 게임 느끼게 되는 과정의상황과 묘사는 다르다. 이 영화도 무척 아프게 봤다.

착한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좋아하며 잘 지내다 상대가 가해자/피해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당신이라면계속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돋보인다.


실지로 어릴 때 부모를 잃은 감독이 피해자와 가해자가 우연히 만나게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서 만들게 된 영화라고 한다. 일차원적인 가해자와 피해자, 통쾌한 단죄와 복수, 처벌에 실패한 피해자의 절망을 직선적으로 그린 게 아니라 다면적인 심리와 상황을 세심하게 표현한 연출이 좋았다. 김향기, 유재명 등 주·조연들의 절제된 연기도 좋고.


시집. 박참새 정신머리중, /'수지'편


《품위 카지노 게임 삶》속의 <품위 카지노 게임 삶, 110세 보험과 같이 읽으면 좋겠다.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보험' 같은 거로만 '품위 있는 삶'이 보장되는가에대한 질문. 합법적, 의료적 안락사에 찬성한 의사가 젊은 날 가입한 안락사 보험은일정시간이 지나면취소할 수 없다.인간 존엄과 질병, 윤리성, 자가당착에 처한모순과 혼란을 묘사한마지막 반전이 압권이다.

'품위 보험'이 본인이 스스로 든 노후 보험이라면, 박참새의 <수지는 자식의 미래를 과도하게 걱정한 부모가 든 자식 미래 보험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완벽한 미래'를 위해 가입한 보험 덕에 수지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지만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되었다.


천진우의 '굴다리' 연작 중 <시궁쥐

다리 위/아래에서 본 사람들과 자신의 모습을 노래한 ‘굴다리’ 연작 중 한 곡. <다리에서요라는 노래와 대구를 이룬다.

https://youtu.be/2V4t8XjEtfs?si=y8enZRcb9EiD43sw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