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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Feb 17. 2025

카지노 게임와 마주 보았다. 일초, 이초, 삼초 그리고.

지금 시간

밤 열두 시 사십이분.

내 방 가까운 초원 쪽에서

카지노 게임가 운다.


워억.

억.. 어억.

워엌. 억.

카지노 게임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며칠 전 깊은 숲길을 혼자 걷던 때가 생각난다.


온갖 상념에 젖어서

힘없이 터벅터벅 숲길을 걸어

굽어진 삼나무 숲길을 돌아 나와

이제 막 야생 수국 군락 앞을 지날 때였다.


풀숲 끝, 숲길이 닿는 가장자리에서

연한 칡 순을 뜯어먹고 있던

덩치 큰 카지노 게임 한 마리와 마주쳤다.


오는 이,가는 이 없는

한가로운 깊은 숲 속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발에 밟히는 푹신한 나뭇잎을 느끼며 걷던 나는

갑자기 나타난 카지노 게임 녀석 때문에

몸을 움찔하며 화들짝 놀랬다.


놀란 건 카지노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카지노 게임는 여유롭게 연한 순을 씹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더니

역시나 몸을 움찔거리며 화들짝 놀랬다.


나와 마주친 카지노 게임는 눈이 땡그래진 채로

씹고 있던 칡순을 입가에 길게 삐죽 달고서

잘근잘근던 입을 딱 멈췄다.


만약에 카지노 게임가 나처럼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나와 카지노 게임는 동시에 그렇게 외쳤을 거다.

아 C. 깜짝이야.

아. 놀랬잖아!


나와 카지노 게임 간격은 약 2미터 정도였다.

근접한 거리에서

예상치 못하게 카지노 게임와 마주친 나는

잠시 숨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

그놈 두 눈을 빤히 바라봤다.


카지노 게임도 나를 맞닥뜨리자 마자

나처럼 놀랬는지

입가에 삐져나온 칡순을 고서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카지노 게임는 나를 쳐다봤고

나는 카지노 게임를 쳐다봤다.


일초

이초

삼초


깊은 숲 속에 침묵이 흘렀다.

말할줄 모르는 카지노 게임는 말을 할수 없으니 침묵했고

말할줄 아는 는 너무 놀라서 침묵했다.


아무도 없는 숲길에서

카지노 게임와 나는

그런 이유로 말없이서로를 바라봤다.


가까운 곳에서 마주친 카지노 게임와의 대면.

흔하지 않은 경험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녀석이 도망가 버릴까 염려하며

최대한 조심조심 움직였다.


시선은 카지노 게임에게 고정을 하고서

녀석앞에서 처어언처언히

오른쪽 무릎을 굽혀

땅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몸을 낮춰 무릎을 굽히자

카지노 게임는 내가 하는 짓이 흥미로웠던 모양이었다.

그놈은 도망가지 않았

그 자리에 동상처럼 꼼짝 않고 서서

내가 하는 짓을 구경했다.


숲에서 카지노 게임를 만나게 되면

카지노 게임는 백이면 백,

갑자기 나타난 사람 때문에 깜짝 놀라서

후다다다닥 소리를 내며

1미터씩 점핑을 하며 바위 위를 날아간다.


읭?

아쭈!

요 놈 봐라. 안 도망가네.


녀석이 나에게 호기심을 느낀 게 분명했다.

나는 나머지 왼쪽 무릎도 땅에 대고 무릎을 꿇었다.

두 무릎을 굽혀 땅에 대고

그놈에게 눈높이를 맞추면서

아주 처어언처언히 카지노 게임에게 손을 내밀었다.


카지노 게임는 무릎을 굽히고 몸을 낮춘 나를 보더니

저거슨!

겸손하고 예의를갖추는 생명이구나.

생각한 모양이었다.


처음에 놀라서 땡그랬던 눈

힘이 빠져서 게슴츠레한 눈이 되었고

카지노 게임는 긴장을 풀며

킁.한숨을 내뱉었다.


나는 카지노 게임 앞에서 두 무릎을 바닥에 댄 채

오른손을 카지노 게임에게 내밀며

내가 낼수있는 목소리중에

최고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애기야아아.

이리와아아아.


그다음에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아는가?


나는 지나가는 동네 강아지를 부를 때처럼

오른손손바닥이 위로가게 한 다음

손가락들을 까딱거리면서

입천장에 혀를 붙였다 떼었다 굴리며

이렇게 말했다.


애기야아아.이리와봐바바.

오요요요요.

오요요요요.

뚁뚁뚁뚁뚁.


그러자

그놈은 나를 빠안히 바라보다가

입가에 삐져나온 칡 순을

혀로감아 입에 몰아넣었다.

그리고는 처언처언히 다시 입을 놀려 풀을 씹었다.

카지노 게임는 나를 보며 이런 표정을 지었다.

뭐래? 미친!


내가 동네 개를 부르듯이

이리 오너라 카지노 게임야. 하면서

오요요요요 하고 있을 때,

카지노 게임는 그런 나를 쳐다보면서

양아치가 질겅질겅껌을 씹듯이 풀을 씹으며

아주 불량하고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카지노 게임는 풀을 씹으며

자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재롱피우는 나를 구경하다가

노오올고 있네애!하듯이

고개를 돌리며 뒤돌아섰다.


흥미가 떨어진 카지노 게임는

나에게 인사도 없이

하얗고 북실거리는 궁둥이를 삐죽거리며

천천히 덤불 속으로 걸어갔다.


뛰어갔다. 가 아니라

걸어갔다. 다.

카지노 게임가 사람을 보고도

후다닥 도망간 것이 아니라

여유롭게 걸어갔다. 다.

심지어 내게 등을 내보인 채.


그날 그 카지노 게임는 뒤돌아 서면서

이렇게 생각한 게 분명했다.

오요요요요가 뭐야?

얼빠진 인간 같으니라고.


카지노 게임가 도망가지 않고

뒤돌아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만 봐도

그놈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뻔했다.


나는 그놈에게 무시를 당한 다.

도망갈 필요도 못 느끼는,

아주 요상한 짓을 하는 하찮은 생명.

그게 나였다.


카지노 게임에게 무시를 당하여 뻘쭘해진 나는

카지노 게임에게 내밀었던 부끄러운 손을 거두었다.

꿇고 있던 무릎을 세우고 일어나서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무안해진 마음을 털어내듯이

킁.큼!헛기침을 두번한 다음,

나도 카지노 게임처럼 뒤돌아서

다시 내 갈길을 갔다.


그 타이밍에

카지노 게임 앞에서 무릎은 왜 꿇었으며

개도 아닌 카지노 게임에게

애기야. 이리 와봐바바.

오요요요요

뾱뾱뾱뾱이라니.


에라이. 한심한 인간아.

카지노 게임에게 무시를 당해도 싸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게.

나도 차암 할 일 없는 인간이다.

카지노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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