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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아이스크림으로 때운 덕분인지 오후 업무를 시작할 때 몰려오는 노곤함이 없었다. 오래간만에 머리도 맑고 컨디션도 좋지만 딱히 맑은 머리와 최상의 컨디션으로 해야 하는 일은 없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그저 퇴근 전까지 쓸데없는 소통과 돌발 업무를 줄이기 위해 눈을 모니터에 고정하고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최대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바빠 보임’을 연출하기로 했다. 그때 카카오톡 알림이 떴다. 대학 1년 후배 민지다.
― 언니, 지금 바빠?
― 아니.
― 그럼 잠깐 통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회의에 갑자기 호출된 척 수첩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잽싸게 사무실을 빠져나와 옥상으로 올라갔다.
“무슨 일이야?”
“이번 주말에 시간 좀 내.”
“무슨 일인데.”
“아주 중요한 일이야. 우리가 드디어 근로소득세 인생을 졸업할 때가 왔다고.”
“너 또 퇴사하려고?”
“빙고. 근데 언니야, 내가 방금 ‘우리’라고 했잖아?”
민지와는 중앙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을 할 때 만났다. 문헌정보학과였던 민지는 거대한 미로 같은 도서관에서 갈팡질팡하던 근로장학생들을(고작 학부 2학년이면서)“여긴 내 구역”이라며 이끌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오로지 장학금 때문에 지원한 일이고 친구를 사귀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다른 사람보다 유독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더 챙겨주던 민지와는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마음속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유일한 사람이다.
민지는 언제나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을 잘 찾아내는 재주가 있었다. 민지가 도서관, 서점, 북카페를 합쳐 새로 문을 여는 책 공간에 뛰어드는 게 아르바이트까지 합치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민지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는 한탄을 거의 평생 들어왔다. 아마 그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도 책의 종말은 예언되어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수가 적긴 해도 세상에 종말이 와도 책을 손에 쥐고 싶은 사람들은 있는 법이라 도서관도 서점도 북카페도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고 민지는 도장 깨기 하듯 새로운 책 공간을 찾아다닌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입사하는 입장이었지, 본인이 직접 창업을 하지는 않았었다. 늘 말버릇처럼 언젠간 북 카페를 직접 열겠다고 했었지만 이렇게 빠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는데. 게다가 ‘우리’라니, 이건 또 대체 무슨 소린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얼떨떨해서 대꾸를 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내가 나의 첫 번째 북 카페를 만들 거야.”
“이렇게 갑자기?”
“동업 제의를 받았어. 갑작스럽긴 하지만 기회란 게 내 타이밍에 맞춰서 오는 건 아니잖아. 기억나? 나 A사 도서관 계약직 할 때 잘 맞았던 팀장님 있었다 그랬잖아. 지나가는 말처럼 북 카페 차릴 돈 모으면 그만둘 거라고 했었는데 진심이었더라고.”
“같이 하재?”
“한 명 정도 고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와 줄 수 있냐고 하더라고. 인테리어로 책 깔아놓고 인스타그래머블한 카페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고. 제대로 하고 싶은데 딱 내 생각이 나더래.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난 딱 언니 생각이 나더라는 거지. 그래서 한 명 정도 고용하지 마시고 규모 좀 키워서 제대로 같이 하자, 조금만 기다려주면 퇴직금이랑 동업자 만들어오겠다 했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전개야. 너야 의욕을 숨기질 않으니 일하면서 그 사람 눈에 띄었겠지. 근데 나는 그쪽으로는 의욕은커녕 관심도 없는데, 도대체 어떤 의식의 흐름이면 내가 떠오를 수 있는 거지?”
“팀장님이 이러는 거야. ‘북 카페와 LP 바가 섞인 느낌인데, 책을 읽고 싶은 기분인데 무슨 책을 읽고 싶은 지는 모르겠을 때, 음악을 들어야 하는 느낌인데 무슨 음악을 들으면 좋을지 모르겠을 때 찾아가고 싶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그러니까 그거잖아. 콘셉트도 타깃도 없다는 거.”
“난 너무 언니랑 내가 재밌게 할 수 있는 게 보이는 데. 나는 책 담당, 언니는 음악 담당, 팀장님은 F&B 담당.”
“일단 좀 진정 좀 하지? 네가 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언니, 내가 엄청 여러 번 얘기했었잖아. 내가 만들 책 공간에서 음악은 언니가 맡아주어야 한다고. 언니도 그런다고 했었잖아.”
“그거야…… 그건, 언젠가 네가 북 카페를 진짜 하면 그 정도는 내가 그냥 할 수 있는 일이란 뜻이지. 플레이리스트 만드는 것쯤……”
“그러니까. 그냥 ‘그런 것쯤’으로 하지 말고 아예 일로 하라는 거야. 언니 나 만나면 하는 말 반 이상이 회사 지겹다는 거잖아. 이 정도면 사실 ‘지겹다 성애자’라서 회사를 못 그만두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라고. 근데 언니가 음악 이야기를 시작하면 뭔 말인지 못 알아들을 때도 너무 재밌어. 그럼 답 나와 있는 거 아니야? 팀장님한테는 언니 얘기해 놨어. 주말에 셋이 같이 만나자고. 사실 나나 팀장님보다도 언니한테 제일 익숙한 일 아니야? 언니 음악다방에서 컸잖아. 언니가 그랬잖아. 언니네 엄마가 하던 다방 메인 메뉴는 커피가 아니라 올드팝이었다고. 카페 이름이 뭐라 그랬더라…….”
“페이퍼 문.”
“그러니까.”
“뭐가 그러니까야. 그만하고. 나 들어가야 돼. 끊어.”
“알았어. 주말에 시간 비워놔.”
“됐거든.”
창업은커녕 이직조차 발이 안 떨어져서 채용 정보 사이트에서 들어가서도 회사 리뷰나 읽고 나오는 사람한테 창업을 같이 하자니. 하긴 민지처럼 일하다 재미가 없어지면 즉시 관두고 새로운 일을 찾는 사람에게는 지은처럼 재미도 보람도 못 느끼면서도 회사를 관둔다는 옵션은 인생 매뉴얼에 아예 없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겠지. 음악이 재미있으니까 일로 만들자고? 작곡가도 아니고, 평론가도 아니고, 라디오 방송 작가가 되기엔 나이가 너무 많아져버린 내가? 너무 말이 안 돼서 생각할 필요도 없다. 무엇에서 재미를 느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무턱대고 회사부터 관둘 수는 없지 않나. 하긴 어렸을 때도 항상 이게 고민이었다.
“엄마, 난 어른이 되면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어렸을 땐 과장 조금 보태면 하루에 하나씩은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문제였는데, 고등학교 들어오고 나선 싹 다 사라졌어.”
“걱정하지 마. 천천히 찾으면 돼. 어른들도 하고 싶은 걸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 뭘.”
“근데 다른 애들은 지금쯤 다들 딱 진로를 정하는 것 같아서 불안해. 엄마는 내가 했으면 좋겠는 거 뭐 없어?”
“엄마한테 찾아달라는 건 반칙이지. 네가 찾아야지.”
“대학에 들어가면 생길까?”
“아니요, 대학 들어가도 안 생겨요. 그래도 지금보다는 이것저것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질 테니까 좋아하는 걸 찾는 걸 시작하면 되지. 지금 뭔가 확실히 하고 싶은 게 있는 애들도 있겠지만 그게 정말 본인들이 느껴서 찾은 답은 아닐 수도 있고, 또 그렇다 한들 살면서 바뀔 수도 있고. 벌써부터 너무 고민 안 해도 돼.”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엄마, 이혜원 씨는 조용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내면은 <맘마미아의 주인공 도나 셰리던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런 엄마 덕분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대한민국 자녀들 대부분이 겪는 성적 스트레스는 없었다. 엄마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성적보다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요즘 무엇에 빠져 있는지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고부턴 딱히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지도 않으면서 땅에 발을 붙이지 않고 사는 듯한 엄마가 못 미더워졌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그때 엄마가 뭐라던 ‘일단 남들이 다 하는 것은 뭐든 남들보다 잘해 놓고 보면 나중에 불리하진 않겠지’라고 스스로 마음을 먹지 않았다면 인생이 지금보다 훨씬 불편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따금 한다. 왜냐하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시간을 언제까지고 응원해 줄 것 같던 엄마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대학 입학식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혜원 씨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인생은 조금씩 조금씩 좋아하는 것을 찾으며 살아가는 거라는 말을 할 땐 딸이 세상에 홀로 던져져서 그냥 살아 내는 것조차 막막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
장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엄마가 합격 선물로 미국 횡단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뉴욕에서 출발하여 시카고, 멤피스, 뉴올리언스,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시애틀에서 마무리하는 여정이었다. 일단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좋아하는 올드팝으로 가득 찬 여행부터 해 보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엄마가 잔뜩 해 놓은 항공편, 렌터카, 숙소, 공연, 식당 예약을 하나씩 하나씩 취소하면서 사방에 열려 있던 문들이 하나씩 하나씩 닫히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지은의 20대는 혜원 씨의 계획과는 정반대로 음악으로 가득 찬 여행 대신 닫힌 문들로 둘러싸인 깜깜한 현실에서 출발했다. 그나마 혜원이 남겨 둔 돈이 적지는 않았던 덕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지은은 딱 거기까지가 운의 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혼자된 젊은 여성이 아슬아슬하게 살지 않을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을 거라고. 좋아하는 것을 조금씩 조금씩 찾아가는 시간 따위는 없을 거라고. 일단 세상에서 쓰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모든 시간을 다 쓰기로 했다. 그렇게 일단 졸업을 해야 했고, 일단 취업을 해야 했으며, 일단 직장을 열심히 다녀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달리 할 일도 갈 곳이 없어서 직장이나 열심히 다녀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사는 재미를 찾아보려거나 모험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음악이나 듣고 영화나 보면서 떠오르는 공상에 잠겨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쨌거나 주말 전에 단호하게 거절할 말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분명 민지는 약속 장소를 온라인 카지노 게임 집 바로 앞으로 잡고 안 나올 수 없게 불러 낼 텐데.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오전 반차 중이던 팀장이었다.
“팀장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어, 그게…… 컨디션이 안 돌아오네.”
“오후도 반차 올려드릴까요?”
“응. 그래주면 고맙고. 근데 우리 오늘 4시 미팅은 어떡하지? 음… 미룰 수 있을까?”
팀장은 “미루자”가 아니라 “음……” 후에 “미룰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이게 질문이 아니란 것을 알아채고 해맑게 “그럴까요?”라고 되묻거나, “네! 제가 M사에 전화해서 일정 바꿀게요.”라고 하지 않는 것이 이온라인 카지노 게임 대리의 능력이다. 어떤 간부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능력을 일컬어 “요즘 사람답지 않게 인성이 되는 친구”라고 했다고 한다. 회사에서 ‘인성’이라는 말이 나오면 조심해야 한다. ‘인성 좋다’는 칭찬은 당연한 보상이나 정당한 권리를 소멸시킬 때 쓰는 주문이니까.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매달 돈을 아까워하면서도 꼬박꼬박 내는 실비 보험료처럼 매번 이 짓을 해야 하나 하면서도 꾸역꾸역 인성을 짜 낸다.
“아휴, 팀장님. 저 혼자 다녀오면 돼요. 걱정 말고 푹 쉬셔요.”
“미안해, 이대리. 잘 다녀와.”
“네. 팀장님, 푹 쉬셔요. 병원도 한번 가보시고요.”
“응,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네. 걱정 마셔요!”
모니터 구석에 열려 있는 카카오톡 창이 눈에 들어왔다. 창 뒤에서 민지가 보고 있는 것 같다. 민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사 설거지 해주는 시간이 일다운 일 하는 시간보다 많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얼른 창을 꺼버리고 외근 채비를 시작했다.
“오셨어요? 좀 전에 팀장님한테 연락드렸는데 전화 안 받으셔서 문자 드렸거든요. 전달을 못 받으셨나 봐요.”
폭염 경보가 내린 오후 3시, 한 시간가량 걸려 도착한 미팅 장소 입구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맞이한 건 당황한 거래처 대리였다. 지방 출장에서 올라오던 중인 그쪽 팀장이 접촉사고에 휘말려 오늘 미팅이 취소된 것이었다. '휴학도 안 하고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고요, 동기 중에 제일 먼저 대리 달았어요'라고 말하는 듯한 앳된 얼굴의 대리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나는 내 할 일을 다 했으며 너의 헛걸음은 내 탓이 아니라는 뜻을 분명히 전달했다. 틀린 말도 아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헛걸음시킨 건 남의 회사 대리가 아니라 우리 팀장이니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터덜터덜 건물 밖으로 나오자 뒤늦게 전화를 걸어온 팀장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전화를 끊고 수액 맞으며 자는 중에 문자를 받았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복귀하지 말고 일찍 들어가란다.
일이 꼬일 때는 누구의 탓도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먼저 잊는 게 최고다. 지은은 안간힘을 써서 정신 승리를 짜내며 지하철역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너무너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었다. 차가운 카페인으로 머릿속을 씻어 내지 않으면 이대로 녹아내려 보도블록에 들러붙을 것 같았다. ‘34세 이지은, 을지로 한복판에서 인도에 껌 자국 하나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다.’ 지은은 터덜터덜 걸으며 주변에 들어갈 만한 카페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갑자기 뒤편에서 음악이 들려왔다.
엘라 피츠제럴드가 부르는 <Winter Wonderland.
‘뭐야, 이 계절감 없는 선곡.’
그런데 계절도 날씨도 싹 무시하면서 제멋대로 흐르고 있는 크리스마스 노래라니, 어쩐지 위로가 된다. 게다가 <Winter Wonderland는 지은이 가장 좋아하는 겨울 노래다. 수십 명의 가수가 커버한 <Winter Wonderland를 줄줄이 담아 놓은 플레이리스트를 트는 게 지은의 겨울맞이 의례니까.
‘도대체 어디서 틀고 있는 거야?’
뒤를 돌아보니 회색빛 건물들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 있는 단풍색 벽돌집이 보였다. ‘WEST MOUNTAIN CAFE’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미국 남부 저택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한여름에 들려오는 <Winter Wonderland 만큼이나 주변 시공간과 맞지 않는 외관이 기묘했다. 그러나 지은은 너무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절실했고, <Winter Wonderland는 지은이 가장 좋아하는 겨울 노래이고, <Winter Wonderland를 부른 수많은 가수들 중에서도 지은이 가장 좋아하는 엘라 피츠제럴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은은 홀린 듯 웨스트마운틴 카페의 하얀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