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병동 담당 주치의는 나에게 조현병에 걸려서 입원한 거라고 했다. 주치의는 뇌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나의 뇌 속, 전두엽이라는 곳에 호르몬 분비 교란으로 이상이 생겼으니 치료하자고 했다.
치료하면 나을 수 있으니, 약을 잘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주치의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어쨌든 결론은 내가 미쳤다는 얘기인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항상 당하고만 살아온 날 보고 미쳤다니. 나는 주치의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 오게 된 건 전혀 내 탓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곳에 갇히고 나서 정말로 미칠 것만 같았다. 폐쇄 병동은 멀쩡한 사람도 미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처음 십여 알이 넘는 약을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삼켰을 때, 나는 종일 잠만 잤다.
내 몸은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밀려 내려가는 것처럼 맥을 못 추고, 깊은 수렁 속을 허우적거렸다.
침대에 누워서 자다 깨기를 반복하는 나날을 보냈다.
자다가 깨서 언뜻언뜻 창밖을 바라보면 아침 햇살이 비쳤고, 밤의 어둠이 까맣게 창가를 적셨다.
그러다가 잠이 깨면 어지러웠고 손끝이 떨렸다.
식사할 때도 식욕을 느낄 수가 없었다.
밥을 먹지 않은 나에게 간호사가 물었다.
“왜 식욕이 나지 않나요?”
나는 약을 먹고 난 후의 증상들에 대해 말을 했다.
약을 먹고 나면 손이 떨려 수저를 떨어뜨리곤 했다.
메스꺼움이 몰려와 도저히 식사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밥을 먹고 나면 구토를 했다.
그날 저녁때가 되어서야 주치의와 면담할 수 있었다.
“처음엔 그럴 수 있어요. 약을 다시 처방해줄게요.”
주치의는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말했다.
나는 주치의 지시에 항의하거나 저항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영영 약에 취해 검은 터널을 헤매게 될 것 같았다.
칼자루는 주치의가 쥐고 있으므로 그의 말을 거역했다가 얻게 될 불이익이 두려웠다.
어쩔 수 없이 주치의가 내게 맞는 약을 처방해주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주치의 처방전대로 약을 먹었다. 바뀐 약을 먹고 나서도 구토가 나고 졸음이 쏟아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조현병에 걸리면 약의 부작용이 심했다. 똑같은 약이라도 개인의 체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나에게는 부작용이 있는 약인데 다른 환우에겐 괜찮을 때도 있었다.
나는 정신과 약을 먹고 나서 시시때때로 구역질이 나고 피부가 가려웠다.
잠을 자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피부를 긁어댔다.
조현병 환자에게 행운이란 자신에게 잘 맞는 치료제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신에게 잘 맞는 치료제를 찾기란 쉽지 않다. 수없이 이 약 저 약을 먹어 본 후에야 그게 자신에게 맞는지 맞지 않는지 알게 되는 거였다.
나 역시도 수많은 부작용과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언제쯤이면 나에게 맞는 약을 만나게 될까. 하루라도 빨리 내게 맞는 약으로 처방전을 받길 원하지만 그게 언제쯤일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약을 먹기 싫었다. 이곳에서 이대로 그들이 주는 약을 먹고 내 영혼을 갉아 먹히며 살아갈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약 시간이 되면, 간호사들이 약을 들고 와서 내가 물과 함께 넘기는 것을 확인했다. 심지어 약을 먹은 후 입을 벌리게 해서 입안을 들여다보기까지 했다.
병동에서 하루하루가 지나갔지만, 상황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체 쇠창살 너머로 흐린 하늘과 낮게 깔린 구름을 내다보며 망연히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의식은 불투명해졌고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누군가가 내 머릿속 생각들과 몸속 기운들을 뭉텅뭉텅 뽑아 내가는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잠이 들면 어지러운 꿈들로 밤새 시달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씻고 나서 식사 후, 휴게실에 집합해야 했다. 병동 사람들은 앞에 나가 떠들고, 돌아가면서 고리타분한 얘기들을 했다. 이것을 그들은 재활교육 시간이라고 했다. 처음 멋모르고 몇 번 참석했던 나는 지리멸렬한 그 시간을 견딜 수 없었다. 그 시간에 나는 침대에서 잠을 잤다. 모두 모이라고 했지만, 강제성을 띠는 건 아니었다. 병실에서 꼼짝하지 않는 환자들까지 억지로 끌고 나올 순 없는 일이었다.
내가 호기심을 갖게 된 건 미술 요법 시간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학원에 다녔고, 몇 번 수상을 한 경력도 있어서 그림 그리는 게 좋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 미술 선생은 각자 스케치북을 하나씩 주면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 방에는 열 명 남짓한 환자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무거나 그림을 그려보세요. 좋아하는 거 뭐든지 그리면 됩니다. 그림의 형식이란 없습니다. 마음껏 그리시면 됩니다.”
미술 선생은 방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나는 한참 생각에 골똘하다가, 이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연필을 쥐고 종이에 쓱쓱 채워나갔다. 숲을 향해 기어가고 있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였다.
내 그림을 본 미술 선생은 말했다.
“이선우 님, 왜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그리는 건지 물어봐도 되나요?”
“사람들이 볼 땐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한없이 느리게 가는 것 같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 딴엔 죽을힘을 다해 가고 있는 건데. 사람들은 그런 온라인 카지노 게임 마음을 몰라주거든요.”
나는 다소 어눌하지만,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미술 선생은 아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떠나간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떠올렸다. 집에서 기르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사라진 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작년, 초여름으로 진입한 6월 어느 날이었다.
마트에서 배달되어 온 열무 단 속에 새끼 온라인 카지노 게임 두 마리가 붙어 있었다.
엄마가 신기해하며 형과 나에게 보여주었다.
“우리가 이거 키워보면 안 될까?”
형과 나는 동시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키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초등생도 아니고, 다 큰 애들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키우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뭐 초등생들만 키워? 살아서 꿈틀거리는 애들 버리면 불쌍하잖아.”
엄마는 잘 키워보라며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건네주었다.
형과 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유리병에 각각 담아 키우기로 했다.
유리병에 흙을 깐 뒤, 오이와 당근을 잘게 썰어주고 지켜보았다. 꿈쩍도 안 하던 녀석이 꿈틀거리며 채소들을 먹어 치우는 모습이 놀라웠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식욕은 생각보다 왕성했다. 녀석은 오이를 먹으면 파란 똥을, 당근을 먹으면 주황색 똥을 쌌다.
채소를 썰어 넣어 주면 며칠 되지 않아서 다 없어졌다. 사각사각 채소 잎을 갉아 먹고 있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들여다보다 보면 나의 시름이 녹아내렸다. 녀석은 낮보다 밤에 활동성이 강했다.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던 나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처럼 꼬박 밤을 새우며 그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때론 음악을 틀어줄 때도 있었다. 녀석은 음악을 금방 알아차렸다. 더듬이를 길게 빼고 리듬을 타듯 꿈틀꿈틀했다. 생각보다 섬세하고 영리한 녀석이었다. 친구가 없던 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친구처럼 느껴졌다.
아침이 되면 더듬이를 길게 빼낸 채 제 몸속을 다 드러내고 유리병에 달라붙어 있었다. 마치 안녕? 하고 인사하듯이 아침마다 나를 향한 몸짓을 했다. 내가 살짝 만지면 금방 껍질 속으로 몸을 움츠렸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알아갈수록 점점 정이 들었다. 형과 나는 경쟁하듯 서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정성을 들였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아무 탈 없이 잘 자랐다. 자라면서 껍데기도 커지고 점점 더 거무스름한 갈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올해 5월 어느 날 아침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들어 있는 유리병 안을 들여다보았다. 내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어디에 있는지 집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에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없었다. 형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그대로 있는데, 내 온라인 카지노 게임만 없었다. 원인을 알 수 없던 나는 의아했다. 혹시나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다시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에 유리 상자 안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좋아하는 삶은 달걀흰자와 버섯 조각들을 넣어두었다. 나는 애타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기다렸다. 그러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미술 요법 시간 외에는 방에서 잘 나가지 않고 계속 잠만 잤다. 자다가 깨면 그저 멍한 표정으로 누워있거나 쇠창살이 쳐진 창밖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 3시가 되면 밖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물론 처음부터 산책 시간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내가 병동에 오고 보름이 지난 후부터 산책 시간이 허용됐다. 밖이라고 해봐야 철문을 열고 나가서 기다란 복도를 이리저리 돈 다음, 고작 병원 뜰 안을 몇 바퀴 거닐고 오는 것이었다.
보름 만에 밖으로 나온 나는 강렬한 햇빛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폐쇄병동 안에만 있어서인지 갑자기 나온 바깥세상이 너무 눈이 부셨다. 눈앞에 보이는 사물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어지러웠다. 나는 병동 사람들과 산책에 합류하지 못하고 뒤뜰 등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오전에 내린 비가 그쳐서인지 벤치가 눅눅했다. 풋풋한 초록빛을 띤 등나무 잎새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멍하니 병동 사람들의 산책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광식이가 능글맞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저놈이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순간 나는 머리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꼴 좋다. 여기 오니까 어떠냐?”
느물거리는 광식이를 보자 속이 뒤집혔다.
“이 개새끼야. 니가 무슨 상관이야?”
나는 광식이 얼굴을 치려고 팔을 휘두르며 발길질을 했다.
“어쭈, 많이 늘었는데.”
광식이가 히죽거리며 몸을 피했다.
“돈 있으면 좀 내놔.”
“이 미친 새끼야. 저리 못 꺼져?”
나는 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집어서 광식이에게 덤벼들었다.
같은 방 까까머리와 병동 사람들이 다가와 나를 붙잡았다.
“개새끼. 또 한 번 내 앞에 나타나 봐. 죽여 버릴 거야!”
나는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게 어디서, 까불고 있어. 넌 내 손바닥 안에 있어, 새꺄. 너는 나를 못 벗어나. 병신새끼!”
광식이는 어느새 웃음기를 감추고 무서운 얼굴이 되었다.
등을 보이며 멀어져 가는 광식이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나는 광식이가 병원문을 빠져나갈 때까지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