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윤 Apr 11. 2025

카지노 게임 체험


예약한 카지노 게임 날짜가 되자, 깨끗이 세탁한 셔츠로 갈아입고 전철역까지 걸었다.

나에겐 뭔가 지금과는 다른 충격 효과가 필요했다. 길 검색을 하기 위해 핸드폰을 찾았다. 없었다. 핸드폰도 깜박하고 방에 두고 나왔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조현병약을 먹은 후부터는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 자꾸 깜박깜박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하는 수 없이 며칠 전에 검색한 약도를 기억해 낼 수밖에 없었다.

당산역 3번 출구로 나와서 왼쪽이던가, 오른쪽이던가. 기억을 되살렸다. 당산역 출구 쪽 에스컬레이터를 밟고 내려갔다. 에스컬레이터가 사방으로 흔들거리며 어지러웠다. 난간을 붙잡고 천천히 내려갔다. 약 부작용인지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려면 에스컬레이터가 조각조각 부서져서 흩어지는 것처럼 어지러워 힘들었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가는데,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몸으로 더듬거리며 무서워하는 나를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거리엔 차들이 쌩쌩 지나가고 사람들의 행렬로 정신이 없었다. 시끄러운 차 소리가 머리를 자극하자 정신이 흩어졌다. 당산역 3번 출구로 나와 정신을 똑바로 가다듬고 왼편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은 막다른 길이었다. 막다른 골목길에 술집과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이곳이 아니었다. 약도엔 분명히 건널목이 있었다. 길을 거슬러서 다시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건너편으로 건널목이 보였다. 신호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다.


신호등에 초록색 불이 카지노 게임오자 사람들이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건널목을 건너는 사람들의 발들이 엉켜서 흐릿하게 한 덩어리로 보였다. 차들이 어지럽게 흩어지고, 건너가고 건너오는 사람들의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나는 길을 건너지 못하고 신호대기 선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이선우, 정신 차려, 쓰러지면 안 돼.

나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나를 쳐다봤다. 이제 사람들의 그런 시선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 견딜 수 있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그만이다.

한참 동안 심호흡을 하고 났더니 비로소 어지럼증이 가라앉았다.

초록 불이 다시 들어왔다. 나는 사람들 물결 속에 휘말려 천천히 건널목을 건넜다. 건널목을 건너서 조금 뒤쪽으로 돌아가 보니 12층 빌딩이 보였다. 주소 검색할 때 봤던 5층을 찾았다. 고개를 들어 꼭대기부터 건물 간판들을 훑어 내려갔다. 건물 5층에 내가 찾는 카지노 게임실 간판이 올려다보였다.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다리 힘이 쭉 빠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내렸다. 큰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카지노 게임서자 검은 재킷을 입은 남자가 안내실에 앉아 있었다. 남자가 내 이름을 물었다. 내 이름을 밝히자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실내를 둘러보았다. 간접 조명등이 실내를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어찌 보면 안개가 떠다니는 것처럼 뿌옇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관엽식물 화분이 몇 개 놓여 있고 벽에는 형태가 불분명한 추상화가 걸려있었다. 대기실에는 중년 남녀,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대기실에 앉아 있던 나는 안내원을 따라 카지노 게임 체험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두침침한 복도를 지나자 시야가 탁 트인 넓은 방이 나왔다. 안내원이 나를 테이블 앞에 앉게 한 뒤 봉투를 하나 건네주었다. 봉투 속에는 유언장을 쓰라는 지시사항과 함께 용지가 들어 있었다. 나는 집에서 연습한 대로 유언장을 작성했다.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언장을 작성한 후, 차례대로 줄을 서서 영정 사진을 찍었다. 찰칵, 영정 사진이 찍힐 때 기분이 이상했다. 개인 물품들을 사물함에 넣어 두고 강연장으로 들어갔다.

40여 분의 지루한 강연이 끝나자 안내원이 수의를 나눠주었다.

수의를 갈아입고 불빛이 미세하게 새어 나오는 어두운 방으로 카지노 게임갔다. 검은 띠가 둘러쳐진 내 영정 사진이 관 위에 놓여 있었다. 검은 띠가 쳐진 액자 속에 내가 카지노 게임 있었다. 영혼을 잃어버린 듯한 텅 빈 눈동자와 불안한 표정의 내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분이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묘했다.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실내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관으로 카지노 게임가 누웠다.

실내에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관에 카지노 게임가 잠시 명상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못했던 일, 후회되는 일, 기뻤던 일들, 많은 일이 스치고 지나가겠지만, 이제 다 내려놓고 떠난다는 마음으로 명상을 하시겠습니다. 눈을 감고 호흡을 코끝에 집중하세요."

나는 관속으로 카지노 게임가 다리를 뻗고 누웠다. 죄지은 사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랫배 위에 두 손을 얹고 숨을 크게 내쉬고 들이쉬었다.

‘십칠 년을 살아온 내가 이렇게 죽어서 누워있다.’

나는 조금 전 강연에서 들은 것처럼 눈을 감고 카지노 게임의 밑바닥에서 나를 만나는 상상을 했다. 나는 죽었다. 내 영혼은 내 몸을 빠져나와 어디론가 날아간다. 날아간다.

나는 온몸에 힘을 빼고 내 몸을 빠져나온 영혼이 가는 곳을 바라보았다. 내 영혼은 음악의 흐름을 타고 날아올랐다. 바다를 건너고, 높은 산을 지나 부드럽게 구름 위를 떠돌았다.

내가 죽으면 내 카지노 게임을 슬퍼할 가족들이 떠올랐다. 엄마를 힘들게 하고 화나게 했던 기억, 형에게 못되게 굴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관 뚜껑이 덮였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쾅쾅쾅!

관을 못으로 세게 내리치는 소리가 머릿속을 쿵쿵 울렸다. 너무 무서워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예상하고 카지노 게임간 거였지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섬뜩했다. 이대로 여기서 갇혀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몰려왔다. 사방에서 이름 모를 원혼들이 나를 향해 손을 뻗쳐오는 것 같았다. 전신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옴짝달싹할 수도 없을 정도로 좁은 관 속에 누워있는 나를 저승사자가 금방이라도 데려갈 것만 같았다.


죽고 싶었던 내가 카지노 게임이 무서워지는 아이러니한 반응은 나로서도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동안 언뜻언뜻 내 주위를 맴돌았던 카지노 게임의 유혹은 뭐였을까. 나는 정말 카지노 게임이라는 실체가 뭔지 알기나 했던 걸까. 죽을 배짱도 없으면서, 그저 막연히 죽고 싶었던 열일곱 살의 섣부르고 치기 어린 나약함. 그건 비겁한 회피였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두렵고, 게으르고, 무기력한 겁쟁이. 그게 바로 나였다.

나는 카지노 게임 직전, 생의 마지막 순간을 겪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카지노 게임의 그림자가 그들을 향해 손을 뻗쳐왔을 때, 더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공포와 체념. 마지막 생을 마치고 가는 그들은 그 섬뜩한 공포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드디어 관 뚜껑이 열렸다.

관 밖으로 나오자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관 속에서 움츠리고 있었던 가슴을 펼치고 숨을 크게 내 쉬었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안내원이 자신의 유언장을 태우라고 말했다. 나는 촛불 앞에서 유언장을 꺼내 불을 붙였다. 유언장이 몸을 비틀며 화르르 타들어 갔다. 까만 재로 남은 유언장은 순식간에 바스러졌다.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가상이지만 카지노 게임의 세계에 다녀왔고, 새로 태어나는 경험을 했으니.

카지노 게임 체험을 끝내고 나오니 밖이 캄캄해져 있었다.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다. 어찌 됐든 이 충격 효과로 기분이 달라진 건 사실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사진 출처pixab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