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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인 Apr 21. 2025

20. 스페인에서는 카지노 게임을 어떻게 기념할까?

종교와 문화가 어우러진 풍경

4월 초부터 동료들 사이의 단골 대화 주제는 ‘산타 세마나(Santa Semana)’에 뭘 할 거냐는 거였다. ‘Santa’는 거룩하다는 뜻이고, ‘Semana’는 주(週)를 뜻한다. 합하면 ‘거룩한 주’인데, 카지노 게임까지의 일주일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우리나라의 설이나 추석처럼 스페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휴로, 나라 전체가 일주일간 축제 분위기다.


올해의 카지노 게임은 4월 20일이었고, 목요일부터 공휴일이니 4일의 쉬는 날이 생긴 셈이다. 스페인 달력을 보니 목요일은 ‘거룩한 목요일(Holy Thursday)’이라고, 금요일은 ‘좋은 금요일(Good Friday)’이라고 표기되어 있던데 여기서 질문. 예수님이 못 박혀 돌아가신 날에 왜 좋다는 수식어가 붙었을까? 예수님의 희생이 인류에게 은혜로 돌아왔기 때문이라고.


궁금해서 찾아봤다. 스페인에서는 카지노 게임 연휴를 어떻게 기념하는지. 지역색이 강한 나라이니만큼 도시마다 방식은 다르겠지만, 수도인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찾은 내용과 직접 경험한 걸 정리해 본다.



엄숙하고 화려한 믿음의 행렬


카지노 게임 주간엔 특히 스페인에 관광객이 많단 얘길 들었다. 긴 연휴가 있으면 놀러 나가는 사람이 많지, 놀러 오는 사람이 많다는 게 신기해서 주변인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건 어느 지역이나 거리에서 열리는 행사가 많아서라고. 그것도 화려하고 웅장하게.


마드리드에서도 시내 중심에 살고 있어서인지 며칠 전부터 부쩍 늘어난 인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질서와 안전을 위해 경찰관도 그만큼 많아졌다. 목요일부터는 성당과 교회, 그리고 주요 광장에서 큰 규모로 행진(procesion)을 하는데, 구경할래야 구경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너무 빼곡하게 서 있어서 보기만 해도 답답했다. 10년도 더 전에 보신각에 타종행사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만큼이나 인산인해였다.


카지노 게임시도를 안 한 건 아니다...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문득 이 정도 규모면 유튜브에서 라이브로 송출해 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Telemadrid’라는 마드리드의 공영방송국이 운영하는 채널이 있었다. 심지어 ‘마드리드의 카지노 게임 주간(Semana Santa en Madrid)’이라는 재생목록도 있고 하루에도 생중계 영상이 몇 개씩 업로드된다. 이걸로 간접경험하면 되겠군.


올해 카지노 게임 주간은 날씨가 좋지 않아 평소보다 행렬이 짧았다. 해가 쨍쨍하다가도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거나 심지어는 우박까지 쏟아졌다. 그래서 생중계 영상에 계속 우산 쓴 시민들의 모습이 담겼다.


카지노 게임ⓒ Telemadrid


행렬을 보기 위해 사람이 많이 몰리는 건 종교적 의미 때문만은 아니다. 성직자와 악단, 그리고 제복을 맞춰 입은 사람들의 행진은 엄숙한 버전의 놀이공원 퍼레이드 같다. 그들이 어깨에 이고 있는 가마와 조각상은 촛불과 꽃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평소엔 교회와 성당에 보관하는 조각상들이 거리에 나와 있는 게 신기하다.


카지노 게임
ⓒ Telemadrid


다른 지역의 행렬도 궁금해 스페인 관광청 홈페이지에서 찾아봤다. 동남부의 해안도시 알리칸테(Alicante)는 총 28번의 행렬을 진행하는데, 항구에서 시작하는 것도 있다. ‘바다의 그리스도(Cristo del Mar)’ 상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배를 타고 항구에 도착한다고.


카지노 게임 행사를 가장 크게 여는 도시는 세비야(Sevilla)다. 화려하게 장식한 가마(pasos), 발목까지 오는 튜닉(Túnica)에 뾰족한 고깔모자(Capirote) 복장의 사람들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깔모자는 얼굴 전체를 덮는 후드와 함께 쓰는데, 외부와의 단절을 통해 참회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 Diario de Sevilla (세비야 지역 신문사)



부드럽고 달콤한 카지노 게임의 맛


보는 즐거움만큼이나 중요한 게 먹는 즐거움이다. 카지노 게임 연휴에 제일 보편적으로 먹는 음식은 스페인식 프렌치토스트인 ‘토리하스(Torrijas)’다. 4월 초부터 좀 크다 싶은 빵집에 가면 꼭 전면에 토리하스를 진열해놓고 있었다. 심지어는 스타벅스에서도 시즌 메뉴로 내놓을 정도니 말 다했다.


토리하스와 일반 프렌치토스트를 비교해 보자면, 우유와 계란물에 빵을 적시는 건 같다. 여기에 단 와인(!)을 섞는 경우도 있다고. 조리 방법은 굽기보다 튀기기에 가깝다. 마무리로 꿀까지 듬뿍 뿌리면 된다.


동네 빵집에서 출입문에 포스터를 붙여놓을 정도로 토리하스를 열정적으로 홍보하길래 두 개 사봤다. 하나는 오리지널, 하나는 초코. 진분홍 포장지에 연분홍 리본을 묶어주는데,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것 같아 좋았다. 개당 6유로라는 가격에 깜짝 놀랐는데 조금 진정되는군.


내가 아는 프렌치토스트보다 훨씬 축축하고 맛도 묵직했다. 겉과 속의 식감이 똑같이 부드러웠다. 고소하고 단맛 사이로 계피향이 느껴져서 맛있었다. 초코는 여기에 크림만 올린 거라 특별하진 않았다.


동네 빵집에서 산 토리하스


토리하스가 왜 카지노 게임 음식이냐에 대해선 뚜렷한 이유를 못 찾았는데, 많이 거론되는 건 이런 거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이 기간은 육식을 피했기에 나름 영양 성분이 괜찮은 빵을 만들게 됐다, 다른 하나는 빵이 귀하던 시절 남은 빵을 맛있게 처리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한 거다. 뭐가 됐든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자.


토리하스 외에도 삶은 달걀을 올린 둥근 빵(Mona de Pascua)이라든가, 작게 튀긴 도넛(Buñuelos) 등을 먹기도 한다는데 실제로 마드리드 빵집에서 보지는 못했다. 식사로는 병아리콩 스튜나 튀긴 대구 등이 유명한데, 역시나 카지노 게임 주간에는 육식을 피한다는 전통에서 비롯된 거라고.


물론 카지노 게임 하면 흔히 떠올리는 달걀이나 토끼 모양의 디저트도 흔히 보인다. 대부분 화려한 포장지로 감싼 초콜릿이고, 마트나 백화점에서 엄청 많이 보인다. 린트(Lindt), 페레로(Ferrero), 밀카(Milka) 등의 브랜드가 일제히 카지노 게임 에디션을 내놓은 덕에 백화점 슈퍼마켓 구경이 배로 즐거웠다.


백화점 지하의 린트 코너



*

스페인에서 처음 맞이한 카지노 게임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닌, 나라 전체가 들썩이는 종교적 행사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도시마다 다른 방식으로 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그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일주일 내내 다른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것도 신기했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와 당일에는 영업하는 가게가 없어 거리가 썰렁하다고 느꼈는데, 이번엔 날씨가 변덕스러운데도 곳곳에 활기가 넘쳤다. 내년 봄까지 스페인에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어디에서든 프렌치토스트를 사 먹으며 이때를 추억해야지.


마요르 광장에 설치된 카지노 게임 행사 홍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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