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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달 Jan 27. 2025

설렘과 의문이 공존했던 일요일

그날은 날씨가 꽤 좋았던 일요일이었다.


짧았던 첫 만남 이후, 우리는 자주는 아니어도 꾸준히 연락을 이어갔다. 빈도는 하루 한 번 정도. 한국이었다면 큰 오해를 했을 법도 하다. 연락이 관심의 척도가 되는 한국의 연애 문화와 달리, 유럽에서는 서로 관심이 있다고 해서 칼답장이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것도 사실이다. 이전에 했던 연애에서 연락에 애정의 정도를 가늠하다 오해와 상처를 남겼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각자의 스타일이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타인과 나는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인생의 많은 부분이 편해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그렇기에 그에게도 특별한 환상이나 기대 없이 느슨한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는 내가 그 당시 살던 취리히에 갈 테니 도시 구경을 시켜 달라는 연락을 해왔다. 베른에 직장이 있는 그는 평일에는 베른에서 일하고, 주말이 되기 전에 기차를 타고 취리히 공항에서 독일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 어차피 일 때문에 월요일에 스위스에 와야 하니, 하루 일찍 도착해 나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마침 일정이 없는 주말이었고, 화창한 여름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의 제안을 승낙했다.


그날 오후 취리히 중앙역은 굉장히 붐볐다. 여름이라 관광객이 많은 시기인데다가, 날씨가 좋은 주말이었기 때문에 거리는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못 알아볼 뻔했다. 그날도 그는 반팔 폴로 셔츠에 면바지 차림이었다. 다만 신발은 지난번의 가죽 로퍼 대신 흰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첫 만남 때 보았던 짙은 녹색의 눈은 그대로였다. 그는 설렘과 기대에 부푼 얼굴이었다.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해왔다.


"나, 취리히는 처음이야! 가이드 잘 해줄 거지?"


천진한 얼굴로 로컬 가이드의 일일 투어를 요청하는 그였다. 취리히에 몇 년 살았지만 독일어는 걸음마 수준인 내게 말이다. 그는 유쾌하고 붙임성이 좋았다. 노력해보겠다고 웃으며 나란히 걷기 시작카지노 게임. 호숫가에 위치한 널찍한 공원을 향해 걸었다. 중간 즈음 갔을 때 그는 마실 것을 사서 가자고 카지노 게임. 그가 집어든 것은 맥주 500cc 짜리 캔이었다. 아직 햇살이 가득한 오후였다. 역시 독일인이라는 생각을 카지노 게임. 나는 술을 잘 못하는 편이라 음료수를 골랐다.


한참을 걷다, 공원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카지노 게임. 그곳보다 지나온 지점이 더 머무르기 좋아 보여 조금 되돌아가 큰 바위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햇살에 비친 호수는 파랗게 빛났다. 백조들이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먹으려고 뭍으로 올라왔다. 사람들은 제각각 자리를 잡고 앉거나 누워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서로의 성격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빨강/파랑/초록/노랑으로 나누어지는 성격 검사가 있다며 자신은 파란색이 많이 나왔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mbti 이야기를 했다. 자기도 회사에서 검사하라고 해서 해봤다며 본인은 ESTJ 라고 했다. E 빼고는 나와 같았다. 그 사실이 꽤나 반가웠다. 주제는 성격 검사에서 스위스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당시의 나는 석사 졸업 이후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시기였다. 제3국민(non-EU) 국적 사람들은 스위스에서 취업 비자를 받기 굉장히 힘들며, 회사 측에서 EU시민이 아닌 제3국민을 뽑아야 하는 이유를 공식적으로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는 적잖이 놀란 얼굴이었다. 독일은 현재 인력난이 심하다고 했다. 내가 독일 회사에 지원한다면 어렵지 않게 합격할 거라는 말도 해주었다.


하늘이 조금씩 차분해지고 있을 때 그는 내게 저녁식사 제안을 해왔다. 나는 그를 태국/베트남 요리 전문점에 데리고 갔다. 다행히 그는 그곳의 음식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주문을 완료하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자리에 되돌아오는 나를 보던 그가 말카지노 게임. "I must admit that your skirt looks very good on you. I like your style a lot."


한국어로 직역하면 좀 황당카지노 게임. '네 스커트가 잘 어울린다는 걸 인정해야겠어' 라니. 그러나 우회적인 표현과 달리 상기된 얼굴과 나를 신경쓰는 모습에 웃고 말았다. 음식이 나왔고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린 도시의 야경을 보기로 카지노 게임. 식당과 가까웠던 내가 다니던 학교의 외관을 보여주기로 카지노 게임. 전망대에 걸터앉아 또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사는 도시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던 나는 시야에 보이는 건물들에 대해 물어보는 그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카지노 게임. 우리는 곳곳에 노란 불빛이 켜진 거리를 천천히 돌아다녔다.


취리히에 가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들르는 곳이 있는데, Lindenhof 라는 전망이 멋진 곳이다. 중앙역에서 멀지도 않고, 찾아가기 쉬워 관광객이 많다. 이곳에 데려가면 좋아할 듯 싶어 그를 이끌고 언덕을 올라갔다. 호숫가에 조명이 비친 물결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그가 내 어깨를 살짝 감쌌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나, 침착한 척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잠시 있다가 그는 내 손과 자기 손을 대보며 '네 손 엄청 작다' 라고 말카지노 게임.


'뭐지, 이 수작은 전 세계에서 쓰이는 건가?'


그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한국에서 이미 보고 들은 스킬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고 또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순순히 손을 잡아주기에는 마음이 약간 불편카지노 게임. 키 차이가 얼만데 당연하지 않냐며 얼렁뚱땅 넘어갔다. 다시 거리를 걷고 있는데, 그가 이번에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물었다. 네 손 잡아도 되냐고. 그렇게 당당하게 물어보면 거절할 수가 없잖아. 결국 손을 내어주었다.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걷는 취리히는 처음이었다. 끌리는 건 사실이었다. 거리를 걷는 발걸음은 설렘으로 가득 채워졌다.


헤어지기 전, 그는 나와 양손을 맞잡고 눈을 마주쳤다. 우리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그는 최대한 빨리 취리히에 다시 올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며 헤어지는 걸 진심으로 아쉬워카지노 게임. 집으로 가는 트램이 오기 전까지 그는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주 소중한 무엇인가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작별 인사를 카지노 게임.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는 밝고, 호기심이 많고, 긍정적이었다. 아직 그를 잘 파악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으나, 그것마저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에게 호감이 가고 설렘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예상 밖의 신체적 접촉은 사람에 대한 의심이 많은 내게 의문을 남겼다. 두 번째 만남에서 어깨를 감싸고 손을 잡은 건 뭐지? 날 가볍게 생각하는 건가? 연애 경험이 엄청 많은 사람인가? 그에게 느껴지는 눈길과 말투, 분위기가 가벼운 사람 같지는 않았기에 더더욱 의문스러웠다. 누군가는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 이야기라면 별 생각 없었겠지만, 걱정이 많은 나였기에 생각이 많아졌다.


내 생각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일주일 후 다시 취리히로 오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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