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벚꽃이 한창이던 때였다. 나는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고, 함께 점심을 먹은 우리는 한 대학의 교정을 산책하기로 했다. 그곳은 벚꽃축제가 한창이었는데, 마치 설경을 보듯 눈 부신 꽃잔치로 떠들썩했다.
인파에 밀리던 우리는 한적한 곳을 찾아 작은 숲길의 산책로로 들어섰다. 바람도 적당했고, 꽃잎은 눈송이처럼 우리 어깨 위로 따뜻하게 내려앉던, 그 순간이었다.
맞은편 숲 길목에 카지노 쿠폰 한 마리가 서있는 게 아닌가. 제주도에선 오름이나 숲 길에서 카지노 쿠폰를 보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눈이 마주쳤다고 느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만난 건 처음이었다. 흩날리는 벚꽃잎과 정체 모를 고요함 속, 카지노 쿠폰와의 조우는 몽환적이라 신비스러웠고 그런 만큼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고요를 오래 견디지 못하고 나를 현실로 데려오고 말았다.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조금함이 밀려왔고, 나는 습관처럼 한쪽 손을 휘저어 가방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 기능을 켜는 사이, 카지노 쿠폰는 고개를 돌려 맞은편 숲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원하는 사진 한 장은 물론, 그 찰나조차 붙잡아 놓지 못했다. 미련 없이 돌아서던 녀석은 ‘인간이 다 그렇지!' 비웃기라도 하듯 이내 사라졌고, 내겐 귀한 꿈을 꾸다 깨버린 것 같은 허무가 밀려왔다. 그것은 바라보는 대신, 붙잡으려 한 것. 느끼는 대신, 남기려 한 것에 대한 후회였다.
"지금 이 순간이 당신이 가진 전부라는 것을 깊이 깨달으세요. 지금을 삶의 중심에 두세요."
<에크하르트 톨레
우리는 늘 어딘가로 향하느라 지금 이 순간을 등지고 살았다. 더 나은 미래나 혹은, 지나간 시간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현재를 담보로 내놓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날, 나의 카지노 쿠폰는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순간에 존재하다, 순간 속에 사라졌다. 나는 생각했다. 그 단순한 방식이 오히려 삶의 근원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대개 무언가를 ‘기록’하는 데에 의미를 뒀다. 남겨야 한다고 믿고, 그래야만 그 일이 실제였다고 여겼다. 하지만 때로는 기록되지 않았기에, 더 오래, 더 깊게 남는 순간도 있었다. 종종 진실은 프레임 바깥에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도 핸드폰을 꺼내느라 허둥대기 전, 카지노 쿠폰와 눈이 마주친 그 찰나를 선명히 기억했다. 눈빛과 공기, 숲의 냄새와 벚꽃 잎의 낙하 속도까지도. 결국, 기록보다 더 오래 남는 건 살아 있는 기억이었고, 그날의 진짜 선물은 바로 그 순간이었던 셈이다.
요즘 우리는 무엇을 느끼기 전에 먼저 찍었다. 타인에게 보여줄 ‘극적인 장면’을 위해, 자신에게 남겨야 할 ‘소중한 순간’을 쉽게 흘려보냈다. 결국, SNS에 올릴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우리의 수많은 감각은 희생됐고, 진짜 감정은 어딘가 어설프게 남았다. ‘살고 있는 척’ 하느라 정작 살아내지 못한 순간이 많아진 것이다. 결국 삶은, 기록이 아니라 경험으로 증명됐다.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의 카지노 쿠폰에 충실한 순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