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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원형 Feb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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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윌리엄 골딩/민음사)

그 여름,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길은 멀고 지루카지노 게임. 뙤약볕 속에서 목은 바싹 말라 있었고 무거운 가방은 자꾸만 밑으로 축축 쳐졌다. 혼자서 한 발 한 발 힘겹게 걸으며 놀이터를 가로질러 가는데, 한 무리의 아저씨들이 내 얼굴을 보더니 한 마디씩 카지노 게임.

-어디 아프니?

-어린애 얼굴이 저렇게 심각한 건 처음 보네.

그 말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걸 보면 아마도 나는 그런 작은 관심에 위안 같은 걸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학교에서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내가 계주 선수로 뽑힌 데서 시작한다. 내 이름은 맨 마지막으로 호명되었고, 나를 포함한 일곱 명은 그날부터 방과 후 훈련을 시작했다. 처음 보는 남자선생님의 지도 방법은 경쟁을 통해 실력 기르기였다. 백 미터 뛰기, 스탠드 계단 올라갔다 내려오기 등에서 꼴찌를 하면 한 번 더 하는 방식으로 벌을 주었다. 매번 꼴찌였던 나는, 다른 아이들이 앉아서 쉬는 동안 달리기를 한 번 더 했고 혼자서 계단 오르내리기를 했다. 며칠째 같은 패턴이 반복되었을 때 선생님은 이기려는 의지가 부족한 나를 위해 특훈을 결심했다. 다른 아이들을 일찍 보내고 혼자 남겨 훈련시키기, 일명 나머지 수업. 사막 같은 운동장에는 강한 햇볕과 나만 있었고, 나는 무섭지도 외롭지도 서럽지도 않았다. 머리와 마음이 텅 빈 사람이 되어 시키는 대로 뛰었을 뿐. 몇 년이 지나 《파리대왕》을 읽는데, 그날의 운동장이 떠올랐다. 아, 그 선생님은 불안과 공포에 잠식당한 겁쟁이였던 거구나.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 시대에 명백히 약한 상대는 쉽게 조롱과 폭력의 대상이 되고 나는 불안한 사회의 희생양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대왕》은 냉전 시대의 불안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핵전쟁의 위협을 피해 아이들을 대피시키려던 비행기가 포격을 당하고 다섯 살에서 열두 살 사이의 소년 스무 명가량이 낯선 섬에 떨어진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소년들은 랠프라는 아이가 소리껍데기를 불자 한 곳으로 모이는데, 그중에는 검은 망토를 두른 성가대원과 그들의 대장인 잭이 있다. 나름대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랠프가 대장으로 뽑히고, 소라껍데기를 가진 사람에게 발언권을 준다는 규칙도 정하고, ‘돼지’라고 불리는 소년의 안경으로 봉화도 피우면서 아이들은 섬 생활의 질서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봉화를 지켜 구조대를 기다려야 한다는 랠프와, 사냥을 해서 먹을 걸 구해야 한다는 잭은 번번이 대립하고, 봉화가 꺼진 날 잭의 무리는 멧돼지 사냥에 성공한다.


‘여기서 더위에 녹초가 된 암퇘지는 쓰러졌다. 소년들은 마구 덤벼들었다. 이 미지의 세계로부터의 무시무시한 습격에 암퇘지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 비명을 지르고 뛰어오르고 했다. 온통 땀과 소음과 피와 카지노 게임의 난장판이었다. 로저는 쓰러진 암퇘지 주위를 달리면서 살이 드러나 보이기만 하면 닥치는 대로 창으로 찔러댔다. 잭은 암퇘지를 올라타고 창칼로 내리 찔렀다. 로저는 마땅한 곳을 찾아서 제 몸무게를 가누지 못해 자빠질 정도로 창을 밀어 넣기 시작하였다. 창은 조금씩 밀려들어가고 겁에 질린 암퇘지의 비명은 귀가 따가운 절규로 변하였다. 이어 잭은 목을 땄다. 뜨거운 피가 두 손에 함빡 튀어 올랐다. 밑에 깔린 암퇘지는 축 늘어지고 소년들은 나른해지며 이제 원을 풀었다. 나비들은 여전히 공지 한복판에서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있었다.’ (202쪽)


최초의 살육 현장을 묘사한 장면이다. 소년들의 공격 본능이 최대로 발휘되고 있다. 야만적 본성이 지배하는 집단 속에서 이성은 힘을 잃고 순진무구한 문명세계의 아이들은 이제 어둠과 악의 세계에 편입된다. 소라껍데기는 구속력을 잃었고 돼지의 안경이 깨졌고 봉화도 꺼졌다. 봉화를 꺼뜨린다는 것은 더 이상 구조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다시, 희망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희망을 잃었을 때 가능한 행동은 본능에 따르는 것인데, 문제는 내가 욕망 충족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이고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카지노 게임을 만든다.


《파리대왕》은 한 편의 잔혹동화이고 알레고리 소설이다. ‘인간은 다른 인간들에 대해 늑대’라고 하는 홉스의 인간관을 따르면서 우리가 만든 제도나 문명이 얼마나 허물어지기 쉬운 것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공포에 지배당할 때 인간이 어디까지 야만적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렇다면 공포와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뭘까? 괜한 희생양을 만들어 화풀이하는 일 말고 뭐가 있을까? 여러 답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를 황석영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를 억압하고 카지노 게임로써 속박하는 어떤 대상이든지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의 본질을 알아챈 뒤 훨씬 수준 높은 도전 방식을 취하면 반드시 이긴다.’ - <아우를 위하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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