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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련 Apr 28. 2025

언니가 기러기를 한다고?

뉴질랜드에 아이 둘 데리고

"캐나다 갈래?"


란 말이 구원 같았다는 같이 일하던 언니 얘기에 여자는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었다.


마흔 여섯, 뉴질랜드에 한국 중 1, 초 3 남자 아이 둘을 데리고 기러기로 가다니, 그건 2012년 중반, 나름 여자의 문화생활이 꽃을 피웠던 그 시기에도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베이징 올래?"


동생의 말에도 콧방귀를 뀌었었는데, 심지어 그 일년 전, 친한 친구네 친척이 호주로 이민을 갔을 때도, 어떻게 이민 갈 생각을 할까, 엄두도 못내던 일이었는데, 삼개월 사이 여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뉴질랜드 행 비행기를 탄 건 2012년 12월 11일, 도착은 1212군사반란의 바로 그 날. 2012년 7월엔 동생이 사는 중국 베이징에 두번째로 갔었다. 그게 여자 생애 두번째 해외 여행이었고, 두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돌아와 삼개월 만에 뉴질랜드 행을 결정하고 비행기를 탄 것이었다.


여자는 매일 밤 12시까지, 심지어 새벽 1시까지 집에서 초중고 논술 수업을 했었다. 여자의 큰 아이는 중학교 1학년 마치는 즈음이었고, 학교에서의 아이에 대한 평가 및 태도를 여자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였다. 매일의 논술수업을 마친 새벽이면 탄천을 뛰고 와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번개가 모자를 쓴 눈 앞에서 번쩍이기도 했고, 비도 맞았고, 눈보라 속에서 뛰었다.


'성적은 아이가 안좋은데 내가 왜 우나...'


이러면서 여자는 뛰었다. 뛰지 않으면 목까지 차오는 그 무엇이 내려가지 않았다. 뛰고 돌아온 새벽, 여자는 큰 아이가 풀어야 할, 그러나 전혀 진도는 안나가고 있는 문제집을 모아 빨간 색연필로 풀어야 할 날짜를 적었다.


여자는 큰 아이의 그림을 좋아했다. 그러나 막상 큰 아이는 학교에서 목판화를 만들어내고 a, b, c, d, e 중 가장 낮은 점수인 e 를 받아왔다. 구도 잡느라 오래 걸려서 늦게 냈다고. 초등학교부터 큰 아이의 발목을 잡아온 늦음. ‘늦다'는 여자에게 그 어떤 트리거 같은 거였다. 나머지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결과만 받아볼 수 밖에 없는 여자의 처지에서는 그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 부터, 나아가 학생부에 불려가는 일이 처음 생기고 나서부터, 이 상태론 안된다는 절박함이 여자에게 있지 않았을까.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아이, 여자에겐 그 조차 위험해보이지 않았을까.


여자의 남편은 한국에서 버둥거리며 아이들에게 이리저리 돈 쓰는 것과 뉴질랜드 가서 영어 배우는 것 중 후자가 낫다고 생각했을테고, 무엇보다도 여자의 상태가 그대로는 안됨을 잘 알고 있었을듯.


동생이 베이징 올래, 하는 소리에 처음엔 내가 왜, 했다가, 차츰 그 쪽으로 알아보던 여자는, 남편이 티비에서 본 뉴질랜드 교육 체제 관련 다큐멘터리가 좋았다며 뉴질랜드는 어떠냐고 물어, 유학원을 다니며 알아보았다. 미국, 영국은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안될 것 같았고, 캐나다도 알아보다가, 추운 게 싫어 바로 뉴질랜드로 정하게 되었다. 뉴질랜드에는 지인이 0 명이었던 상태.


무엇이 그리 불안했던지, 블로그도 뒤지고, 유학원에서 소개해준 현지 교민들과도 통화를 해보았던 여자. 일년 넘도록 준비하고, 등의 과정을 거쳤다면, 과연 뉴질랜드에 올 수 있었을지. 무언가에 홀린듯 뉴질랜드에 도착하니, 환율은 900원대로 정점을 치고 있었을 때라 유학생들이 드문 때였고, 왜 그리 한국인 없는 곳으로 찾았는지, 여자의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학교에 한국인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여자의 큰 아이는 컬리지에 바로 들어갔는데 한국 유학생이 한 명 있었다고.


떠나오는 비행기에서 여자와 큰 아이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었고, 작은 아이는 임시 숙소였던 모텔에서 첫 날 밤 한시간 넘게 울었다.


"언니가 기러기를 한다고?"


놀라며 물은 큰 아이 친구 엄마는 방송국 피디였던 남편을 따라 가족이 함께 유럽에 살다 막 돌아온 터였다. 독립성의 척도가 운전이라는데, 여자는 장롱면허 17년 만에 운전을 시작했었다. 뉴질랜드 기러기 시작 딱 일년 전이었으니, 어쩌면 그 기반을 닦은 셈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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