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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Jan 21. 2025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라는 생활방식

온라인 카지노 게임 캥거루의 독립운동기/ 제2의 고향을 찾아서

처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답이 아니란 생각을 한 이유는 순전히 비싼 집값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어야만 하는 건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서 살고 싶니? 오랜 고민 끝에 내린 대답은 No! 였다. 내가 떠나고 싶은 건 단순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라는 지역이 아니라, ‘온라인 카지노 게임’로 대표되는 대도시의 생활방식이었다. 낯선 이와 부딪힐까 몸을 잔뜩 웅크리면서도 짧게 스치는 타인에게 비치는 겉모습에 신경 쓰는 종종거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커피를 끼고 달리는 텅 빈 화려함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아닌 다른 지역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서 태어나 줄곧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서 자라온 온라인 카지노 게임 사람이었다. 친가와 외가 모두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위치한 탓에 명절에 펼쳐졌던 흔한 귀향 행렬도 남 얘기였다. 청춘의 판타지라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주인공처럼 훌쩍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내겐 없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답이 아닌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답을 고를 수도 없었다. 어디로 떠나야 할지 모르는 그 순간, 한 지역이 떠올랐다. 푸른 논과 밭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그곳엔 대파, 배추, 고구마, 감자, 고추 따위를 심고 키우는 아빠가 있었다. 몇 년 전, 아빠는 뜬금없이 강원도로 내려가겠다고 했다. 건강상의 문제라고 했지만 연고도 없는 그곳에 대체 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자고로 아빠의 딸 사이의 관계란 그런 게 아닌가. 말하지 않아도 모르지만 말해도 몰라서 말을 하지 않는 관계. 적어도 우리 집에선 그랬다. 어릴 때부터 침묵이 금이라며 언어적 표현은 물론 비언어적 표현을 삼켜내는 걸 미덕으로 여긴 가정이었다.


아빠 덕에 집에 더 널찍한 공간이 생긴 것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으로 공간이 확장되는 효과가 생겼다. 일단 강원도라는 지역에 대한 감각이 조금 달라졌다. 한반도 서쪽 지역에 사는 내게 동쪽 강원도는 막연히 엄청 먼 곳이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외 지역에 무지한 내게 강원도는 동해와 인접한 강릉과 속초를 의미했으니까. 하지만 강원도는 굉장히 넓은 곳이었고, 바다와 아주 멀리 떨어진 내륙도 포함했다. 아빠가 자리 잡은 곳은 바로 그곳이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서 경춘선을 타고도 갈 수 있는 곳. 물론 역에서부터 차를 타고 30분가량 달려가야 도착할 수 있지만 말이다.


동네는 아주 고요했다. 주변은 논밭이었고, 옆집의 소음 따윈 걱정 없었다. 대문도 잠글 필요 없이 숟가락하나만 꽂아두었다. 꽉 조인 신경이 느슨해지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마당과 텃밭 사이쯤에 뿌리내린 초록 작물이었다. 단 한 번도 작물의 생애를 지켜본 적 없던 난, 그곳에서 난생처음 깻잎을 따고,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겨냈다. 엄지와 검지 끄트머리가 거뭇하게 변했다. 까매진 아빠의 손가락이 수북하게 쌓인 껍질과 시들대는 이파리를 쓸어 밭에 툭 던졌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서는 ‘쓰레기’로 전락하는 존재가 그곳에서는 ‘에너지’로 쓰인다는 사실이 좋았다. 고요함 속에 점점 확장되는 평온함도 좋았다. 눈만 돌리면 토마토며 자두, 옥수수 등 넘쳐나는 먹거리에 자연스레 풍성해지는 마음도 좋았다. 엄마가 물었다.

“독립할 집을 여기에 알아보는 어때?”


대답은 NO! 였다. 아무리 고요와 여유, 평온이 좋아도 그것만으로 생을 채울 수 없지 않은가.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우리의 판타지로 남을 수 있었던 건 망할 때 돌아갈 수 있는 공간만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잔뜩 구겨진 생을 다시 펴고 제 몫을 살아낼 힘을 얻는 것, 호젓하게 반짝이는 삶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엔 주인공과 함께 다른 인물이 등장했다. 친구. 아빠가 사는 동네엔 내 또래가 보이지 않았다. 60대인 아빠가 청년인 그곳은 아빠에게 '리틀 포레스트'겠지만 내겐 그저 따분한 '전원일기'일 뿐이었다. ‘즐거움’ 몇 방울이 필요했다. 맛있는 과실을 함께 따먹고 심심한 농담 따먹기도 나눌 ‘친구’가 절실했다.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혼자가 편하고 혼자가 좋지만 외로운 건 싫은 사람이었다. 내게 딱 맞는 제2의 고향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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