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들마다 수개월 후에나 오라는 답을 줬지만 자꾸만 두드리니 틈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큰 병원이든 작은 병원이든, 그 병원이 서울에 있든 다른 지방 도시에 있든, 우리는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어디든 예약된 진료가 취소됐다고 연락이 오면 우리는 모든 일을 멈추고 이유식과 기저귀를 싸 자동차에 올라탔다. 카지노 쿠폰는 집에 있을 때나 자동차에 있을 때나 끊임없이 전화를 걸었다. 전부 병원들이었다. 이미 예약을 걸어둔 곳에는 혹시 빈자리가 나지 않았냐고 물었다. 새로운 병원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면 예약을 걸어두려고 항시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통화할 곳이 없으면 각종 카페에 들어가 모든 게시물에 달린 모든 댓글들까지 읽고, 자신도 질문을 던지면서 선배(?) 부모들과 소통했다. 단톡방에도 어마어마하게 가입되어 있었다. 카지노 쿠폰는 잠긴 문들을 하도 두들겨 전국 소아과에 손자국을 낼 지경이었다.
난 느렸다. 평소 전화 안 받기로 악명이 자자할 정도로 전화기를 등한시하는 성격이 그런 상황에서도 고쳐지질 않았다. 단톡방이나 인터넷 카페니 하는 낯선 장소들에 노크를 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대신 자폐나 그 외 뇌와 신경 질환, 대장 질환에 대한 논문들을 찾아 읽었다. 병원 대기 시간은 그렇게 긴데, 진료 시간은 허무할 정도로 너무나 압축적이었고, 그 압축된 시간을 활용하려면 최소한 그들의 말이라도 한 번에 알아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편에서도 상황 설명이 간결히 나가야 했고, 의사들 편에서 해주는 설명을 되묻지 않고 한 번에 이해해야 같은 시간 동안 더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논문을 읽어 전문적인 배경지식을 갖춤으로써 의료진들과 짧은 시간 안에 전문적인 대화를 한다는 건 그러나 이상론이었다. 그들이 수년 동안 잠과 싸워가며 공부해 익힌 것을, 아무리 절박한 부성애를 갖춘 자라고 하더라도 논문 몇 편에 습득할 수 없었다. 나 역시 그들의 의대생 시절처럼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만 겨우 가능할까 말까 하다는 걸 정말 몰랐던 건지, 모른 척하고 싶었던 건지 지금에 와서는 헷갈린다. 새 정보를 습득하느라 바쁜 카지노 쿠폰는 이런 나에게 별로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왜 애가 아픈데 당신은 그렇게 아무것도 몰라?’라는 소리를 가끔씩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도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다. 어젯밤에 읽었던 논문이 너무 어려웠어,라는 소리를 하면 카지노 쿠폰는 더 깊은 한숨을 내쉴 것이었다.
카지노 쿠폰는 늘 내가 발 빠른 사람이 되기를 원했었다. 자동차를 척 보면 어디가 이상한지 한눈에 파악해 정비소도 혼자 갔다 오고, 오는 길에 세차도 좀 깔끔히 하길 바랐다. 이사를 가야 할 때면 시세에 따라 알맞은 동네에 탐방도 다녀오고 부동산에서 멋지게 흥정까지 하는 남편이 되어주라고 채근했다. 집에서 뭔가 고장이 나면 뚝딱 수리도 하고, 뭐 필요한 게 있으면 그 물건을 어디서 사야 가격 면에서 가장 유리한지도 꿰뚫고 있기를 희망했다.
나도 내가 그런 남편이었으면 했지만 십 년 넘게 실패만 하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손만 대면 부러트리고 망가트려 어머니마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브로큰핸드’라는 콩글리시로 조롱하며 부르실 수밖에 없던 사람이다. 나는 매번 적극 도움의 의향을 표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는 그런 나를 무시하고 스스로 집 전구를 가셨다. 거래라는 걸 해야 하는 상황이면 난 상대가 부르는 값을 믿어 의심치 않는 편이었고, 식당에 가서 메뉴를 고를 때도 그날 뭐가 먹고 싶은지가 중요했지, 가격표를 잘 보지 않는 성향이었다. 한 친구는 나보고 "부자도 아니면서 부잣집 도련님처럼 산다"고 놀리기도 했었다.
한 마디로 둘의 성향이 크게 차이가 나는 거였는데, 부부 사이의 이런 어긋남은 특별할 것이 없다. 어느 부부라도 비슷한 충돌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카지노 쿠폰도 자신의 남편상에 날 억지로 맞추려 하지는 않았고, 나 역시 못하는 것에 연연하기보다 나에게 더 잘 맞는 옷을 하나 둘 찾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카지노 쿠폰가 병원과 통화한 후 그 결과를 짤막하게나마 공유해 주면 나는 그것에 맞춰 내 업무와 일과를 조정해 가며 늘 운전할 준비를 마쳤다. 대기조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카지노 쿠폰가 추진력이라면, 나는 기동력이라도 되어주어야 했고, 우리는 아이 상황 이전에도 그렇게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 쌓이는 응어리들,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카지노 쿠폰는 내가 좋게 말해 독특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 빈도가 점점 높아졌다. 생각의 방향성이나, 그 생각을 표현할 때 고르는 단어들이나, 일반인이라면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난 거기에야말로 동의할 수 없었다. 말이 좀 어눌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 카지노 쿠폰는 ‘제발 누군가 우리의 심판관이 되어줄 수 없나’라고 하소연을 했다. 이제 조금씩 커지는 첫째와 둘째가 살짝 엄마 편을 더 들긴 하는데, 나는 애들이 뭘 알겠냐며 간단히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심판을 원하는 카지노 쿠폰의 소원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막내 일이 터졌고, 우린 각자의 속도로 아이의 상황에 관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폐에 관한 한 전문가의 강의를 듣게 됐다. 카지노 쿠폰가 먼저 발견해 둘이 같이 보게 됐는데, 그분의 이론 중 우리 부부의 귀에 딱 하고 꽂히는 게 있었다. 많은 경우 자폐라는 게 부계를 따라 대물림된다는 내용이었다. 즉 아빠가 자폐 성향이 있을 때, 아이가 자폐 성향을 보일 확률이 높다는 것인데, 거기서 영상을 보다 말고 카지노 쿠폰와 나는 서로를 쳐다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둘 다 ‘어?’하는 표정이었다. 아마 내가 먼저 스페이스바를 눌러 영상을 멈췄던 것으로 기억한다.
“카지노 쿠폰 문제라고?”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됐었던가.
아마 카지노 쿠폰는 무릎을 탁하고 쳤던가, 아니면 그런 분위기와 뉘앙스를 물씬 풍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모든 의문이 풀리네” 정도의 대사를 하며.
“카지노 쿠폰 항상 말했잖아. 당신 좀 남다른 구석이 있다고. 나는 당신이 외국에 살다 와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그런 거 치고도 좀 이상했어. 그런데 이제 왜 그런지 알겠네.”
글로만 보면 쉽게 상상이 가지 않을 수 있는데, 우리의 이 대화는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 우리는 심지어 웃고 있었다. 나를 자폐라고 하는 카지노 쿠폰가 어이없어서? 카지노 쿠폰는 그토록 염원하던 심판의 결론을 받아 든 것 같아서?
아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둘은 같은 마음이었다. 그 순간 나나 카지노 쿠폰나 제발 그 사람의 이론이 맞기를, 그래서 내가 자폐였기를 바라고 있었다. 내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건 다시 말해 우리 막내도 나 정도까지는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일 테니까. 기계에 대해서는 백지나 다름없는 지식수준에, 손재주는커녕 아예 손이 없는 수준인 사람이어도, 혼자 자기만의 세상에서 부잣집 도련님 같이 살아가느라 늘 옆 사람이 불안불안하게 하더라도, 고르는 단어가 좀 이상해서 소통에 어려움이 다소 있더라도, 어찌 됐든 자기 몸 건사하고 식구들까지 먹여 살릴 정도는 되니까. 카지노 쿠폰의 기동력으로서 살아간다고 하지만 늘 불만족과 실망감을 선사하던 내가, 의외의 자폐 성향 가능성 때문에 처음으로 카지노 쿠폰의 희망이 되는 묘한 순간이었다.
며칠 있다가 오랜 고등학교 동창(외국인)에게 왓츠앱으로 말을 걸었다. 당시 한 드라마의 등장인물 중 염색체 이상을 가진 캐릭터의 이름을 나에게 붙여 부르던 놈이었다. 어른이 돼서도 미안해 하기는 개뿔, 지금도 ‘그때 카지노 쿠폰 좀 심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더 심한 건 그때의 너였지’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런 놈이면 나에게 정확한 진단을 내려줄 거라, 우리의 희망에 쐐기를 박을 거라 의심치 않았다.
“나 고등학교 때 이상한 편이었지?”
“갑자기 왜 그래?”
“잘 생각해 봐. 나 자폐 성향이 있다고 봐도 될 정도 아니었냐?”
“그냥 외국에 와서 문화 충돌을 심하게 겪은 거지 뭘 그렇게까지...”
“우리 막카지노 쿠폰 좀 아파. 자폐 같아.”
“혹시 너한테서 자폐가 옮겨 갔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이론이 있긴 하더라. 나 그때 친구도 없고 그랬잖아. 너도 카지노 쿠폰 이상했으니까 그렇게 불렀던 거고.”
“카지노 쿠폰 너네 나라에 갔으면 더 심했을 걸?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어느 정도 자폐 스펙트럼에 걸치고 있어. 너만 그런 거 아냐. 나도 이상한 면이 많아.”
이 놈이 뭘 잘못 먹었나. 사과가 필요할 땐 뺀질뺀질 더 놀리던 놈이, 정작 그 놀림(즉 진단)이 필요할 때 갑자기 진지해진다. 놈은 “네가 아빠로서 죄책감을 갖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좀 더 생산적인 방법을 찾아라” 따위의 설교까지 늘어놓았다. ‘나 지금 희망을 찾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이것도 충분히 생산적인 거라고’라고 답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말한다면 힌트를 너무 노골적으로 주는 꼴이 될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친구가 ‘그래, 너 자폐 성향이 있던 거 같아’라고 인정해 준다 한들 큰 의미가 있을 거 같지 않았다.
결국 영상 속 그 전문가를 직접 찾아가기로 카지노 쿠폰와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