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차. 카지노 게임를 생각하면...
12살 때 부모님의 이혼 이후 카지노 게임와는 만나지 못했다. 카지노 게임는 어느날 짐을 싸서 나가버렸고, 자고 일어나니 카지노 게임가 남긴 편지 한장이 옆에 있었다. (카지노 게임의 마지막 편지)
다시 카지노 게임를 만난 건 스무살이었다. 스무살 때 다시 만났고, 지금은 내가 마흔이니 20년 동안 카지노 게임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느날은 카지노 게임를 원망했다가, 아직도 힘들게 살고 있는 카지노 게임가 불쌍했다가, 진심으로 카지노 게임를용서하기까지.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다 차치하고 카지노 게임는 늙었다. 내가 12살 때 카지노 게임는 40대였고, 지금은 어느새 70대가 되셨다. 코로나의 여파로 하던 일을 그만두셔야 했고 집에 계시면서 가끔 친구들을 만나는 게 전부인 생활을 하고 계신다.
카지노 게임가 나와 엄마를 버리고 가버렸다고 생각했고, 카지노 게임가 재혼한 사실을 알았을 때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지금은 카지노 게임가 재혼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든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내가 카지노 게임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카지노 게임의 남은 생은 그 분과 하시겠지만, 자식은 나 하나다. 그게 나에게는 또 부담이다.
카지노 게임와의 왕래는 몇 달에 한 번 정도 한다. 밖에서 만나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헤어진다. 그게 딱 카지노 게임와 나의 관계다. 카지노 게임에게 받은 것도, 받을 것도 없고, 나도 드릴 게 없다. 그냥 가끔 통화하고 가끔 만나고 생사를 확인하는 정도.
그런 카지노 게임가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회사에서 카지노 게임 전화를 받았다.
"별 일 없지?"
"별 일 없지. 카지노 게임는?"
"몸이 좀 안 좋아. 그래서 집에만 있지, 뭐."
"어디가 안 좋은데?"
"모르겠다. 늙어서 그런가."
그냥 기운이 없다고 하셨다. 나는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나는 과연 카지노 게임가 돌아가시면 슬퍼할까?'
카지노 게임의 장례식장을 상상해보았다.
'자식이 나 하나밖에 없으니 내가 있어야 할 테고, 그 분과 함께 있겠지?'
'사람들이 와서 그 분을 내 엄마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싫은데.'
'일일이 엄마가 아니라 카지노 게임의 재혼 상대라고 설명할 수도 없고...'
난 아직도 카지노 게임가 나와 엄마를 버리고 그 분에게 갔다고 생각한다. 아니, 사실이 그랬다. 두 분이 만난 시기가 그랬으니까. 카지노 게임의 무책임함에 아직도 화가 나고 재혼을 했다는 사실도 용서하지 못한 것 같다. 왜냐면 그 분이 너무 싫으니까. 생각해보니 내 카지노 게임를 뺏어간 것 같다고 느끼는 것 같다.
장례식장을 상상하면서도 그 분이 내 엄마를 잠시라도 대신하는 것 같은 느낌이 싫은 것 같다. 카지노 게임가 버린 나를 책임진 엄마가 너무 불쌍해지니까.
그런데 반대로 카지노 게임와 같이 사는 그 분이 먼저 돌아가시면? 내가 카지노 게임를 책임져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니 숨이 턱 막힌다. 카지노 게임는 나를 책임지지 않았는데 나는 카지노 게임를 책임져야 하나?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다가 정신을 차린다.
무뚝뚝한 딸인 나는 카지노 게임에게 전화로 무심하게 대답하고 문자를 보낸다. 많이 안 좋냐고, 보약이라도 해드리냐고. 물론 카지노 게임는 괜찮다고 하신다.
카지노 게임에 대한 나의 이 감정을 설명할 수가 없다. 카지노 게임가 없어도 난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카지노 게임가 돌아가시면 마음이 아플 것 같고. 카지노 게임한테 이런 감정을 갖는 게 엄마한테 미안하다가. 30년을 아등바등 살다가 힘없이 늙어버린 카지노 게임를 보면 불쌍하다가. 여러 감정이 뒤섞여 엉망진창이다.
카지노 게임를 다시 만난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차라리 다시 안 만났으면 그냥 미워하는 마음만 가지고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아직도 참 철이 없다.
마음의 수양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며, 오늘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