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한창 자기소개서를 쓰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너의 컴퓨터 안에는 지원하는 회사의 성격에 맞추어 작성한 여러 버전의 자기소개서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경력 무관, 나이 제한 없음, 정규직’이라는 세 가지 조건에만 부합한다면 어떤 일을 하는 곳이든 가리지 않고 지원서를 넣었다. 그리고는 매번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다. 어쩌면 그들은 조금씩 뜯어고치기만 한 자기소개서 안에서 너의 무심함과 무능함을 간파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기소개서를 수정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모든 걸 지우고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한다면 네가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걸 설득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 믿지 않는 걸 다른 이에게 믿게 한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네겐 얄팍한 속셈을 세련되게 숨길 만큼의 뻔뻔함까지는 없었다. 가식적인 자기소개서를 반복해서 쓰는 것이야말로 네가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기울인 최대의 노력이자 최악의 실수였다. 그러니 모래성 무료 카지노 게임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줄, 어리석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밖에는할 수 있는게 없었다.
아침부터 하늘이 어둑어둑하더니 눈발이 놀란 하루살이 떼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원룸은 창이 작고 불투명해서 바깥이 잘 보이지 않았다. 너는 삐걱거리는 창문을 열고 손을 허공으로 뻗어 보았다. 하루살이 한 마리가 손바닥 위로 내려앉는가 싶더니순식간에 작은 물방울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이 눈도 쌓이지 않겠구나. 그해 겨울은 내내 진눈깨비뿐이었다.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혹시 하며 받았지만 재이였다. 재이의 목소리가 바로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능청스러웠다. 짤막하게 안부를 묻더니 다짜고짜 일자리를 제안했다. 혹시 벌써 구했으면 어쩔 수 없고요. 자신 없는 듯 말끝을 흐리면서. 아니, 아직 구하지 못했어요. 재이는 들뜬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럼, 여기서 같이 일할래요?”
“거기가 어딘데요?”
“그게 대리님이 보기엔 이상해 보일 수도 있는데 잠시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돈 번다 생각하면 될 거 같아요.”
“그래요? 뭐하는 곳인데요?”
“일단 만나요. 만나서 얘기해요. 우리.”
재이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뭔가를 숨기는 듯한 그의 태도가 께름칙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을 거 같았다. 어차피 지원서를 넣은 곳 중연락이온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거리로 나서자 갓난애의 울음처럼 끝이 무른 하늘이 어느새 파랗게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잠시 전까지 내리던 눈은 아무런 자취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어디에도 하루살이의 무덤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무엇이든 세상에 태어난 이상 흔적이라도남기길 원하지 않을까?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을 거야. 허깨비 같은 자신을 도저히 사랑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처음부터 비와 섞여 내리는 진눈깨비는 땅 위에 잠시도 쌓일 수가 없다. 존재하지만 살아 있음을 증명할 수가 없다. 허깨비 같은 사람들은질식할 것 무료 카지노 게임 가벼움을어떻게 견디며 살아가는 걸까.
재이는 밝은 감색 코트를 입은 위에 커다란 머플러를 칭칭 두르고 카페에 앉아 있었다. 몸집이 작은 재이는 멀리서 보면 톰보이 같기도 했다. 너는 겨우내 입고 다니던 검정 패딩에 부연 먼지가 앉아 있는 걸 발견하고는 손바닥으로 툭툭 때려 털었다. 재이가 카페로 들어오는 너를 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 개월만이었다. 회사가 망하고 직원들과 뿔뿔이 흩어진 후 재이의 얼굴을 다시 보는 것은. 재이는 말을 놓으라고 했다. 다섯 살이나 어리고 이젠 회사에서도 나왔으니 동생처럼 편히 대해도 된다면서. 그래서 너도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다.
“재이 씨가 일하는 데는 어떤 곳이야?”
“일단 누나가 좋아하는 아인슈페너 시켜놨으니까 한 잔 마시고 함께 가봐요.”
재이와 함께 커피를 마신 기억이 없었다. 회식 자리에서였을까? 아인슈페너를 좋아한다고 말한 것은? 재이 앞엔 얼음이 가득 담긴 블루레모네이드가 놓여 있었다. 어린아이들이나 마시는 싸구려 맛이 나는 음료라고 생각하던 거였다. 도무지 사랑할 수는 없는, 인공적인 향과 색으로 범벅된 그것을 재이는 음미하듯이 천천히 빨아 마시고 있었다. 너는 커피를 한 모금씩 홀짝거리며 한참은 덜 자란 듯한 재이의 작은 어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무실은 낡은 4층 건물의 2층에 있었다. 밖에는 아무 간판도 걸려 있지 않았다. 짓궂은 도깨비의 장난에 휘말려 알쏭달쏭한 수수께끼를 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재이의 뒤를 따라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벽면에 피어난 곰팡이꽃에서 매캐하고 쿰쿰한 악취가 풍겼다. JH 컴퍼니? 손바닥 만한 작은 간판이 사무실 문에 붙어 있었다. 너는 풍선처럼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눈동자로 재이를 쳐다보았다. 재이는 말없이 피식 웃더니 대뜸 사무실 문부터 열었다. 넓지 않은 공간에 소파와 책장, 책상 3개가 오밀조밀하게 놓여 있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키더니 재이에게 인사를 했다. 왔어? 남자는 너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재이가 문을 열고 손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너는 주춤거리면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소파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특별할 게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무실이었다. 그래서 더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여기가 직장이야?”
“네, 저랑 이 형이 동업하고 있는 곳이에요. 직원을구해야지 하는데 누나 얼굴이 딱 떠오르지 뭐예요."
“뭘 하는 곳인데?”
“무료 카지노 게임을 찾아줘요.”
“혹시 흥신소나 탐정 사무소 무료 카지노 게임 거야?”
“비슷하지만 달라요. 저희는 의뢰인이 원한다고 해서 아무나 찾아주진 않거든요. 나쁜 의도로 누군가의 뒤를 캐는 일도 절대 하지 않아요. 순수하게 그리워하는 무료 카지노 게임만 찾아줘요.”
“그런 게 사업이 돼?”
“그럼요. 지금 의뢰인들이 대기까지 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고요.”
남자가 갑자기 끼어들면서 자랑하듯이 말했다. 너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할 말을 잃은 채 두 남자를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었다. 재이는 자기들이 하는 일을 옆에서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주로 전화와 컴퓨터로 하는 일이고 예전에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면서. 너는 생기 넘치는 젊은 두 남자의 허황한 이야기에 홀려 잠시 넋이 나가 있었다. 천진해 보이는 그들에게 호기심이 발동한 것일지도 몰랐다.
진눈깨비가 종일 오락가락하던 그날 오후, 두 남자와 한 여자는 살얼음이 얼기 시작한 강물 위로 썰매를 타고 달려 나가는 철부지 어린아이들 같았다. 얼음이 깨지는 일 따위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면서 마냥 신나 웃음을 사방으로 흩뿌리는 아이들. 새뜻한 겨울바람이 콧속을 파고 들어와 심장까지 찌르르 번져나갔다. 비를 품은 진눈깨비들은 얼굴 위에 닿자마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고 있었다. 너는무턱대고그들의 손을 잡았다.발밑으로는 미세한 균열과 돌이킬 수 없는 추락의 예감이 느껴졌지만, 날아오르는눈송이들을 따라 너의 몸도 하늘로 붕 떠오르는 것만 같아 왠지 안심할 수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공연한 가벼움이었다. 그런 거짓말 같은 기분이 왠지 싫지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