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인생의 열 번째 봄을 강릉에서
내가 다녔던 00 여고 교정에는 목련 나무가 있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눈을 비비며 나오던 하굣길, 말갛게 피어있던 목련 꽃에 발길을 멈추었다. 친구와 나무 가까이 다가가한참을올려다보았다. 하얗게 빛을 발하는 꽃을 홀린 듯 쳐다보는데 바람결에 은은한 향까지 더해지자 정신이 혼미해지는 듯카지노 쿠폰.
순간 눈물 한 방울이 관자놀이를 지나 귀 뒤로 굴러갔다. 눈치 없이 따라 나온 콧물에 친구가 나를 쳐다보았다. “너 울어?” “아냐, 눈 부셔서. 눈 부셔서 그래.” 아무렇지 않은 척, 잡고 있던 친구의 손을 앞뒤로 힘차게 흔들었다.
눈물은 여고생의 감수성이었을까?
만개한 목련이 봄을 알려도 카지노 쿠폰할 여유가 없는 고3 현실에 서글펐나?
그도 아니었으면 '애증의 학창 시절, 마지막 봄.' 문장의 마침표를 눈물로 찍었던 건지도...
당시의 감정은 기억나지 않지만 찬 기운이 수그러든 봄날, 까만 밤하늘에 눈 부시게 빛났던 하얀 목련은 뚜렷하게 떠오른다. 그것이 달빛에 빛났던 가로등 불빛에 빛났던, 그건 중요치 않다.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전에 기업에서 입사 통보를 받았다. 입사 3년 후 '신의 직장'이라 불리던 공기업으로 이직도 했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기에 나 역시 그쪽으로 달렸다. 어디를 향해 달리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뛰었다.
계절의 변화는 주로 달력의 숫자나 옷차림으로인지했다. 기억 속 그날처럼 간혹 꽃이 나를 홀릴지라도 카지노 쿠폰할 마음의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젊고 귀하고 건강했던 나의 2-30대를 빠르게 흘려보냈다.
2015년 초, 공기업 지방이전이라는 정부정책으로 내가 다니던 회사도 낯선 지방 도시로 이전하였다.
낮에는 새 가구들로 단장한 새 건물에서 업무를 보고, 저녁에는 사택이었던 새 아파트로 퇴근을 했다. 새것들이 내뿜는 물질에 두통이 오고 눈이 시렸으나 창을 열어 환기도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곳은 혁신도시라는 이름으로 사방이 공사 중이라 창을 열면 하얀 창틀에 누런 먼지가 금세 두텁게 쌓이곤 했다.
그 해 여름, 원하던 대로 해외지사 발령이 났다. 그런데 몸이 이상했다. 어지러움과 피곤함이 심했고, 다친 기억이 없는데 팔다리에 점상출혈과 멍이 생겼다. 여성들에게 흔한 가벼운 빈혈인 줄 알았다. 출국 이틀 전, 떠나기 전에 약을 타가려고들른 병원에서, 의사는 골수검사와 긴급 입원을 지시했다.
......
......
퇴원하던 날은 눈발이 날렸다.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약 타서 어서 가야 해. 출국이 낼모렌데, 시간이 없다.’며 뛰다시피 들어선 병원이었는데, 몸무게가10kg가량빠진 앙상한 몸에 목도리를 칭칭두르고휠체어에 앉혀져 그곳을 빠져나왔다.
퇴원 후 통증이 덜 했던 어느 봄날, 창밖을 바라보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밖에 나가고 싶었다. 집 바로 앞에 탄천이 있었는데, 천을 사이에 두고 양옆 길가에 꽃이 어찌나 예쁘게 피었던지 나도 그 길을 걷고 싶었다.
롱 패딩의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휠체어 대신 남편 손을 꼭 잡고 꽃길을 걸었다. 노란 개나리가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고, 머리 위로는 연분홍 벚꽃가지가 터널을 만들어 주었다. 천에는 다이아몬드를 던져 놓은 듯윤슬이반짝였다. 봄날 바깥세상의 아름다움에 현기증이 일었다.
카지노 쿠폰이 잠시 내 손을 놓고 사진을 찍는 사이,그의 뒷모습을 보다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조용히 떨어지던 눈물이 어느새 다문 입술 사이로 으흑, 으흐흑 소리를 내며 터져 나왔다. 남편이 놀라서 달려왔다. “왜 울어?” “아냐, 예뻐서. 너무 예뻐서 그래” 아무렇지 않은 척,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입만 씩 웃었다.
이토록 찬란한 계절을 왜 이제야 보았나 하는 후회와 봄의 아름다움을 처음 알았는데 이게 마지막 봄이 되면 어떡하나싶은 두려움, 내년 봄 남편 옆에 내가 있어주지 못할까 봐 미안하고 서러워 눈물이 쉬이 그치지 않았다. 상춘객들 사이에 나는 결국 쪼그려 앉아 오열하고 남편은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했다.
2016년 눈물의 카지노 쿠폰, 그 후에도 봄은 계속 찾아왔다(감사하게도!).
올해로 어느덧 10번 째다.
특별히 올봄은 한달살이 중인 강릉에서 맞이하고 있다. 지금 강릉은목련꽃이 막바지이고,벚꽃은이제 막피기 시작하였다. 길에 나서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하얀 꽃과 연두 잎에환호성을 내지른다. 모질고 추운 겨울을 버티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얼굴을 내민 녀석들이 그렇게 대견하고 고마울 수가 없다. 보는 나무마다끌어안고 토닥여 주고 싶은 마음이다.
찬 기운이 수그러든 봄밤, 남편의 손을 잡고 경포호를 걸어야겠다. 까만 밤하늘에 하얗게 빛나는 꽃을 홀린 듯 바라보다 또 눈물을 흘릴지라도 그것은 눈이 부신 탓으로 돌릴 것이다. 그 빛이 달빛이건 가로등 불빛이건 간에.
두 번째 인생의 열 번째 봄을,
다시 찾아온 우리의 봄을
진심으로 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