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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Mar 17. 2025

옷 입기의 어려움 1

대학에도 교복이 있었더라면



대학에는 교복이 없는 게 불만이었다. 6년 동안 입은 교복이 마음에 쏙 든 적은 없었지만, 매일 아침 고민 없이 입을 옷이 있는 삶이 편안했다. 오리엔테이션과 새터, 입학식까지 입을 만한 옷이 마땅치 않았지만, 겨우내 입던 빨간 점퍼로 대충 때웠다. 성장환경에 드리워진 가난이 정점에 달할 무렵, 나의 입학 준비에는 선물도 용돈도 없었다. 3월 중순이 되자 학과 카페에 신입생 환영회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입고 오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맥락 없이 해내야 할 장기 자랑에는 같이 고통을 나누는 동기들이 있겠지만, 내 옷차림은 나 혼자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아르바이트도 구하지 못했던 나는 엄마를 조르고 졸라 돈을 받았다. "선배들이 무조건 온라인 카지노 게임 입고 오라고 했어! 다른 애들은 다 제대로 입고 올 텐데!"


엄마가 몇 번이나 한숨을 쉬며 쥐여준 4만 원과 아껴둔 세뱃돈을 들고 친구와 시내에 갔다.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정장, 어떤 옷을 사야 한단 말인가? 성공적인 쇼핑을 위해 시내 옷 가게를 샅샅이 훑어야 마땅했지만, 나를 언니라 부르는 옷 가게 언니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정찰제가 아닌 매장에서 내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아이템이 어떤 건지 알 수 없어서 발 끝에 들어간 힘이 풀리지 않았다. 그럴 리 없지만 ‘얼마예요?’라고 물으면 ‘네 돈으로는 안 돼.’라는 답이 돌아올 것 같았다. 쭈뼛거리면 쭈뼛거릴수록 무시당할 테고, 입어본 옷을 사지 않고 매장을 나오는 일은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한눈에 정장 한 벌을 골라서 꼬불꼬불하게 늘어선 옷 사이를 빠져나오고 싶었다.


본래 제 일에는 좀처럼 나서지 못하는 사람이 친구 일에는 용기를 내는 법이라 소심하기로는 나보다 더한 친구가 나 대신 입을 열어주었다. ‘저거 좀 볼 수 있을까요?’, ‘한 사이즈 큰 걸로 할까?’, ‘이게 낫겠어?’ 친구의 도움에도 쇼핑에 대한 의욕을 얻지 못한 나는 아무 특징이 없는 검은색 바지와 재킷 정장을 샀다. 신축성이 없고 얇은 교복 질감이라 움직임이 편하지 않았지만, 검은 정장은 아무튼 필수 아이템이니까 두고두고 잘 입을 수 있으리라. 단추를 잠그면 딱 맞게 조이는 윗옷 안에는 무엇을 입을지도 고민이었지만 셔츠나 블라우스까지 살 여윳돈이 없었다. 이런 정장에 책가방을 메고 갈 수는 없으니, 핸드백을 사야 한다고 판단했다. 갖고 싶은 디자인은 없었다. 검은 정장처럼 하나는 있어야 하는 의무감으로 사는 아이템은 저렴하고 단정하기만 하면 되었다. 2만 몇천 원을 주고 까만 사다리꼴의 빳빳한 핸드백을 샀다. 롯데리아에 앉아 다시 꺼내보니 자석 단추 위에 있는 은색 동그라미 장식이 뱀 모양이었다. (그 해는 뱀의 해였다) 당장 핸드백을 바꾸러 가고 싶었지만, 그냥 쓰기로 했다. 돈이 아까웠지만 남들 다 준비한다는 정장이 대학교 준비물이려니 싶었다.


정장은 1.2 환영회와 신입생 복학생 환영회, 딱 두 번 입었다. 3월 말에 눈이 내리기도 한 그해 봄은 추웠다. 덜덜 떨면서 정장을 입고 환영회에 갔더니 여자 선배들과 동기들은 하나같이 예쁘게 차려입고 왔는데 남자 선배들은 동네 아저씨처럼 아무 옷이나 입고 와 있었다. 언니들과 동기들의 걸리시하고 러블리한 스타일(여성스럽다, 사랑스럽다로는 채우지 못하는 패션잡지 여대생 룩은 조신하면서도 귀엽고, 단정하면서도 화사함)이 부러웠다. 여자애들이 입은 블라우스와 카디건, 하늘거리는 원피스와 똑 떨어지는 라인의 스커트는 모두 새 옷처럼 보였다. 절반 이상 동기들은 나처럼 정장 차림에 뚝딱거리며 어색함을 숨기지 못했는데, 내가 저 예쁘장한 여학생 무리가 아닌 어설픈 정장 무리에 속한다는 자각에 시무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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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티와 환영회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예쁜 아이들과 무리 지어 다니게 되었다. 곧 절친이 된 지나는 옷을 잘 입는 말라깽이였고, 아담한 체격에 짝눈이 귀여운 아영이는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어도 눈길을 끌었다. 반머리를 묶고 프레피룩의 정석대로 단정한 정은과 역시 빳빳한 셔츠가 잘 어울리는 은수, 그리고 다음 해에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언젠가 쓰겠지) 지효와 내가 있었다. 각각 성격과 취향이 다르고 개성도 강한 아이들이었지만, 나는 단순하게 우리를 나눠 묶었다. 예쁜 애들과 그저 그런 나. 가만히 있어도 관심을 받는 애들과 매력 발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나. 까르르 잘 웃는 애들과 심드렁한 나.


옷을 잘 입어본 적이 없었다. ‘잘’은커녕 나에게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어울리는 건 차치하고라도 내가 좋아하는 옷은? 아, 무엇보다도 우선 내가 가질 수 있는 옷은? 옷은 늘 없었다. 친척 집에서 얻어 온 옷으로 나름대로 최선의 코디를 해내고, 매대에 옷이 마구 깔린 가게에서 산 짝퉁 티셔츠(썰스데이 아일랜드의 짝퉁 튜즈데이 아일랜드라고 쓰인 짙은 빨강 티셔츠는 짝퉁인걸 알기 전까지 최애 옷이었다)를 입었다. 내가 가진 티셔츠와 바지를 낱낱이 알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교복도 있었지만, 그 나물에 그 밥으로 고만고만 형편이 별로인 동네에서 쭉 살았기 때문에 괜찮았다는 걸 깨달았다. 결핍이나 박탈감은 잡지나 텔레비전을 볼 때나 느끼면 되었으니까. 매일 만나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일은 차원이 다른 피로감을 안겨주었다. 친구들의 쇼핑에 따라가면 한두 발짝 떨어져서 두리번거렸다. 여름방학에 유럽 여행을 간다는 은수가 ABC마트에 신발을 고르러 갔을 때, 지나가 백화점에서 산 원피스를 입고 왔을 때, 아영의 남자 친구가 MLB에서 비싼 청바지를 살 때, 4만 원짜리 청바지는 실패해도 아깝지 않다는 말에 나 빼고 모두 맞장구를 칠 때, 집에는 가기 싫고 친구들이 좋았던 나는 웃는 얼굴로 쉬지 않고 농담을 던지며 따라다녔다. 한 가지 생각만을 하면서. ‘너희는 아무렇지 않게 옷을 살 수 있는 사람이고 나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야.’


주눅 들 필요 없다. 풀 죽을 이유 없다. 아무리 자신을 달래려 해도 어깨는 펴지지 않았다. 뜀틀 앞까지 뛰어가는 동안 ‘두렵지 않다. 넘을 수 있다.’라고 아무리 외어도 손을 뜀틀에 올리고 구름판에서 멈춰서던 때와 다를 바 없이, 효용 없는 자기 암시였다. 질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열등감이 새어 나오는 틈이 눈에 띄지 않도록, 나는 재미있는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자아이들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삐딱한 농담을 멈추지 않았다. 천성이 그러한 것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웃기고 싶었다. 웃을 일이 별로 없었던지 애들은 잘 웃었다. 곱게 자란 애들은 불평불만 많고 과격한 나의 말을 재미있게 들어주었다.


과외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간간이 하면서 친구들이 모일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가려고 노력했다. 낮에는 여자 친구들과 시내를 돌아다니고, 밤에는 술친구들과는 학교 앞을 돌아다녔다. 그러느라 버는 돈은 족족 다 써버렸다. 용돈벌이한 돈으로 예쁜 옷을 사 입을 수도 있었겠지만, 술의 힘이 너무 강했다. 다음 해쯤 인터넷 쇼핑몰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드디어 나도 쇼핑을 시작했지만, 1학년 때는 남자 선배에게 놀림당한 베이지색 카고바지와 분홍색 티셔츠, 엄마 친구에게 얻은 니트와 고등학교 때부터 입던 청바지, 밀리오레에서 산 갈색 반바지와 구슬이 달린 황토색 티셔츠, 베이지색 스트라이프 셔츠를 교복처럼 입고 다녔다. 잠깐 사귄 남자 친구조차 ‘또 그 옷이야?’ 라고 물었던 갈색 여름옷들은 내 마음에 쏙 들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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