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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듯한 바람 Apr 19. 2025

밥 대신 카지노 게임



남편이 샐러드를 들고 집에 왔다. 회사에서 점심 메뉴를고를 수 있었는데 그 중 샐러드를 골랐다고 했다. 샐러드조차 먹을 시간이 없을 만큼 바빴는지 안먹고 가져왔다. 그냥 들고 온 건 줄 알았는데, “혹시 집에 가져오고 싶어서 안 먹은 거야?” 하고 물었더니 "그렇기도 해"라고 답했다. 회사 점심 메뉴인샐러드가 맛있어서 가져온 것 같은데, 매번 한식 위주로 먹는 우리집 메뉴에 할 말이 있었나 궁금해졌다.


남편의 취미 중 하나는 맛집 찾기이다.스트레스를 받으면 맛집을 찾아가고, 입맛 도는 메뉴를 먹으며 기분을 푼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재미있는 드라마를 골라 본다. 고등학생 아이가 있어서 집에서 소리를 크게 틀 수 없으니 이어폰을 끼고 조용히, 그리고 맛난 음식을 곁들여 본다. 그게 남편만의 휴식 방식이다. 남편이 사오는 야식은 치킨, 빵, 피자, 단 과일을 좋아한다.


그런 남편에 비해 나는 늘 한식을 차린다. 학교에 일찍 가는 아이를 위해 아침에 밥과 국을 해서 차려주는데, 아침에 만든 반찬과 국으로 저녁 보온 도시락을 싸둔다. 학원이 없는 날엔 내 퇴근 시간보다 먼저 집에 오는 아이가 배고플까 아침에 미리 준비해두었었다. 처음엔 아침에 정말 조금만 먹고 간 밥과 국, 반찬이 아까워서 보온도시락을 싸두었는데 생각보다 아이가 좋아해줘서 아이의 저녁 식사는 도시락으로 정착되었다. 엄마 아빠가 퇴근하기 전에 혼자서 도시락을 까먹으며 핸드폰을 보는 걸 생각보다 즐겨한다. 그러다보니 저녁을 다 같이 먹지 않고 아침에 만든 한식을 저녁에 먹는 메뉴가 남편에게는 아쉬운 것 같다. 아이가 좋아하는 꽃게탕은 종종 끓여도 남편이 좋아하는 메뉴는 정말 마음을 잡고 해야한다. 솔직히 말하면 남편의 식사 취향을 정확히 잘 모르겠다. 이십년을 살았는데 모르겠다니!


그래서일까? 남편이 밥대신 가져온 카지노 게임는 생각보다 맛있어서 솔직히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이 정말 좋아하는 음식을 잘 모르는구나. 그래서 내가 차리는 것을 늘 맛있다고 먹기는 하지만 정말 맛있는 건 엄청 빨리 많이 먹는데, 맛없는 건 맛있다고 하면서 배부르다고 하면서 딱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확실히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나물 비빔밥은 그냥 내가 좋아하니 같이 먹어주는 것 같다. 그런데 한식을 안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비듬나물이나 봄동을 무쳐놓으면 그땐 또 많이 잘 먹기도 한다. 그냥 남편은 맛있으면 먹는 것 같다.


카지노 게임은 생각보다 내 취향을 잘 알아서내가 좋아할만한게 있으면 사오기도 한다. 그런데 난 남편의 취향을 잘 모르겠다. 솔직히 남편은 중식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얼마 전 중식을 좋아한다고 하니까, 정색을 하며 느끼하지 않은 중식을 좋아하는거라고 했다. 거기에 왜 정색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하자.


연재를 약속한 브런치글을 뭘 쓸까 고민하다가 그냥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사실 이렇게까지남편 이야기, 식사 이야기 같은 걸 자세히 쓸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이야기가 자꾸 샛길로 새고 있다. 처음엔 단순히 남편이 들고 온 샐러드가 생각보다 맛있었다는 얘기를 하려고 했다. 점심에 밥 대신 카지노 게임를 골랐다는데, 그 안에 오리고기랑 밥도 들어 있었고 맛의 조화가 은근 괜찮아서 '이런 건 식사로도 충분하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이 이런 걸 해달라고 말 대신 보여준 건 아닐까?’ ‘나도 가끔은 한식 말고 샐러드 같은 식사도 해볼까?’ 이런 이야기로 정리하려 했는데… 결국 결론은 '나는 남편의 식사 취향을 잘 모른다' 이렇게 되어버렸다. 같이 산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좋아하는 메뉴들이 특별하게기억나는 게 별로 없고, 늘 맛있다고 해주긴 하는데 그 말이 진심인지, 예의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래서 카지노 게임 한 팩이 이렇게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아이가 조금만 배고파해도 이것저것 챙겨주면서, 남편에게는 좀 무심했나 싶다. 실은, 아이도 그저 내가 해주는 밥을 잘 먹어줘서 고마운 마음이 크다. 집안살림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게 요리인 것 같다. 맛있게 차리는 건 물론, 그걸 매일 하는 건 은근히 끈기와 체력이 필요하다. 메뉴를 새로 생각해내는 건 창의력이 필요하고, 맛을 잘 내려면 섬세함도 필요하다. 아침마다 정신없이 시간을 쪼개며 여러 일을 하다 보면불을 제대로 못 지켜서 태우거나, 너무 익히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라면을 끓일 때도 그렇다.


요리를 하는 나는 라면이 종종 불게 만드는데, 요리를 하지 않는 카지노 게임은 라면을 정말 잘 끓인다.진짜 맛있다.그럴 때마다 남편은 “그냥 포장지에 나온 조리법대로 끓이면 돼”라고 말한다. 그래서 계량컵을 꼭 사용한다. 요리할 때도 계량컵을 안 쓰고 늘 대충 손으로 맞추는 나, 라면을 끓일 때도 정석대로 계량하는 남편. 생각해보니 요리책대로 만든 음식은 잘 먹고, 내가 감으로 한 요리는 맛있다고 하면서도 손이 덜 간다. 이렇게 쓰다 보니 남편의 취향이 조금은 보인다. 남편은 정성이 들어간 ‘정찬’ 같은 음식을 좋아한다. 나는 국 하나 맛있으면 밥 되는, 간소한 밥상을 좋아한다. 이제는 가끔, 남편을 위한 메뉴를 생각해봐야겠다. 아이도 곧 자라 독립할 테고, 그 뒤로는 남편과 나, 둘이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어질 테니까. 지금부터라도 그 시간을 위해 마음을 조금 더 써봐야겠다. 가끔은 매운 걸 잘 못먹는 남편에게 샐러드라도 만들어줘야겠다!

아직도 앞으로도 카지노 게임의 취향을 배워가는 중이라니!

결혼은 정말이지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하나보다.


글감을 찾기 위해 일상을 돌아보다 보니놓치고 스쳐갈 뻔한 마음들도 다시 보게 된다.글감을 찾으려고 일상을 눈씻고 보지 않았다면 만나기 어려웠을 이런 마음들.그저 카지노 게임과 나는 식성이 참 달라! 정말 달라서 불편해! 라고 불평으로 갈뻔한 이야기,시시콜콜해서 망설였던 이야기에서 이런 소중한 마음을 만나게 되는구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쓰길 잘 했다' 생각과 함께 어려서부터 그저 끄적이는 것을 좋아했구나 인정하게 된다. 좋아하는 것은 하지 말라고 해도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갱년기가 되어서도여전히 쓰고 싶었나보다.


이런 소소한 글에도 라이킷을 남겨주는 분들 마음에 기대어,오늘도 여전히, 쓰길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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